철강업계가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수소환원제철을 연구하는 가운데 환경 규제 속도가 빨라지면서 당장 탄소를 감축할 수 있는 '징검다리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11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포스코와 현대제철(004020) 모두 탄소 감축을 위해 전기로 고도화에 주목하고 있다. 고로에선 조강(쇳물) 1톤(t)을 생산할 때 평균 2t의 탄소가 배출되는 반면, 전기로는 4분의 1 수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기로는 자동차 강판이나 선박용 후판과 같은 고급강을 생산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철강사 관계자는 "전기로는 원료로 고철을 사용하는데 '잔류 원소 함유량'이 높아 고온에서 변형할 때 표면이 균질하지 못한 문제가 있다"며 "미국 전기로 업체 등이 자동차 외판을 생산하지 못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전기로를 활용해 탄소배출량을 줄이면서 고급강을 만들기 위해서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국내 최대 전기로 운영사인 현대제철은 '하이큐브(Hy-Cube)' 생산체제를 구축해 2030년부터 전기로에서 고급강을 생산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원료를 녹이는 것부터 불순물을 제거하거나 성분도 추가할 수 있는 새로운 전기로 '하이아크(Hy-Acr)'를 개발하는 것이 핵심이다. 전기로에 고로-전로(Converter)의 기능을 융합한 개념이다. 하이아크에 스크랩 외에 저탄소 용선 등의 원료를 투입, 잔류 원소 함유량을 낮추면 고급강도 생산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현대제철의 설명이다.
포스코는 '저(低) HMR(Hot Metal Ratio)' 조업 기술을 고도화하고 있다. 고로에서 생산한 용선과 전기로에서 만든 용강을 섞는 '전기로 합탕'이 한 축이다. 그만큼 탄소배출량이 많은 용선 사용량을 줄일 수 있다. 포스코는 용선과 용강의 비율을 85대 15에서 80대 20으 비율로 조정해나가고 있다. 또 2025년까지 광양제철소에 대형 전기로를 신설해 저 HMR 조업을 강화할 계획이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저탄소 원료도 연구하고 있다. HBI(Hot Briquetted Iron)가 대표적이다. HBI는 철광석에서 산소를 제거(환원)한 직접환원철(DRI)을 다시 고온에서 압착해 조개탄 모양으로 만든 것이다. HBI를 고로에 넣으면 석탄 사용량을 줄일 수 있고, 그만큼 탄소배출량도 감축할 수 있다. 보통 조강 1톤을 생산할 때 HBI를 100㎏ 넣으면 탄소배출량도 100㎏ 줄어든다. 이밖에 CCUS(탄소 포집·활용·저장)나 천연가스·수소 등 연료 사용량을 늘리는 기술도 탄소 감축을 위한 주요 징검다리 기술로 꼽힌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탄소 감축에 투자하는 가장 큰 이유는 주요국들이 탄소배출량이 많은 수입품에 세금을 부과하는 '탄소국경세'를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의 경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추진하고 있다. EU 역내로 수입하는 제품의 탄소 직접 배출량에 따라 CBAM 인증서를 구매하는 것이 골자로, 2027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연구기관마다 차이는 있지만, CBAM이 본격 시행될 때까지 국내 철강업계가 탄소 직접 배출량을 줄이지 못하면 수출을 위한 CBAM 인증서 구매에만 연간 3000억원 안팎이 들 것으로 추산된다.
철강업계에선 탄소 감축을 위한 기술 개발과 함께 저탄소 철강재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도 만들어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철강사 관계자는 "저탄소 강재를 생산하려면 대규모 설비 투자와 생산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철강재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며 "수요산업은 물론 일반 국민이 오르는 비용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설득하는 것도 과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