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원·달러 환율로 산업계의 고충이 가중되는 가운데, 수출 비중이 높거나 원자잿값 상승분을 판매 가격에 반영할 수 있는 일부 업종은 오히려 영업이익이 늘어나는 효과를 보고 있다. 다만 이는 수요가 탄탄한 분야라는 전제가 필요하다. 수출기업 중에서도 수요 위축이 우려되는 곳들은 환율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8일 하나은행에 따르면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이날 오전 1380원을 기준으로 오르내리고 있다. 전날 1386원으로 거래를 마감한 것과 비교하면 소폭 내려갔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1일 1358.5원으로 전일 대비 14원 오른 것을 시작으로, 지난 7일까지 5거래일 연속 올랐다. 이 기간에만 41.5원이 올랐다. 환율이 1380원을 넘어선 것은 2009년 금융위기 이후 13년 5개월 만이다.
달러 부채가 많은 업종은 환율이 오르면 직격탄을 맞지만, 반도체는 고환율 덕을 보고 있다. SK하이닉스(000660)는 지난 2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 콜에서 "올해 2분기 원·달러 평균 환율이 전분기 대비 5%포인트(P) 상승했는데, SK하이닉스는 100% 미국 달러 결제 기관이기 때문에 약 5000억원의 매출 증가 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는 2분기 환차익으로 각각 1조3000억원, 400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 증가 효과를 봤다.
선박 건조대금을 달러로 받는 조선사 역시 강달러 수혜 업종이다. 첫 주문을 받았을 때보다 달러 가치가 오른 만큼 매출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특히 새로 짓는 선박의 평균 가격이 21개월 연속 상승하고 있는 상황과 맞물려 시너지가 나고 있다. 국내 조선업계의 효자 선종인 17만4000m³급 액화천연가스(LNG)선 가격은 올해 1월 2억1000만달러에서 지난달 2억4000만달러로 14.3% 올랐다. 이 기간에 오른 환율을 고려하면 원화 환산 가격 상승률은 26.2%에 달한다.
한국조선해양은 지난 2분기 실적 발표 후 컨퍼런스 콜에서 환율 상승에 힘입어 올해 3분기에 흑자 전환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계약금의 일부만 선수금으로 받는 점을 고려해도 환율 상승이 당장 수익성에 도움이 되는 것은 맞는다"라고 말했다.
수출과 판매 대금의 달러 비중이 높은 완성차 업계도 고환율은 호재다. 현대차는 2분기에 연결 기준 2조9798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는데, 이에 대해 서강현 현대차 기획재경본부장은 "판매 믹스 개선 및 인센티브 축소, 우호적인 환율 환경 등의 영향으로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모두 큰 폭으로 증가한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현대차(005380)와 기아차는 환율 상승에 따라 2분기 영업이익이 각각 6410억원, 5090억원 늘어나는 효과를 봤다.
최근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태양광 관련 기업들도 강달러 수혜가 기대된다. 태양광용 폴리실리콘 제조 업체인 OCI(456040)는 판매 대금을 달러로 받아 환율 효과를 누릴 수 있다며 반기는 분위기다. 태양광 모듈을 제작하는 한화솔루션(009830) 큐셀 관계자도 "환율이 오르면 수입해서 제조하는 부분에 있어 원가 상승의 우려가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환율이 오르면 수출할 때 유리하다"라고 말했다.
이 외의 업종들은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다. 항공업은 달러로 유류비와 항공기 리스료 등을 지급해야 해 비용 부담이 커진다. 대한항공(003490)과 아시아나항공(020560)은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각각 350억원, 284억원의 장부상 손실이 발생한다. 달러값이 비싸질수록 해외여행 수요가 줄어든다는 문제도 있다. 석유화학업 역시 글로벌 수요 위축으로 환율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수출 비중이 큰 철강도 경기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더 크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국내 철강사들은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철강재 총 1537만3000톤(t)을 수출했다. 전년 동기보다 4.3% 감소한 수치다. 최근 수요가 줄면서 철강재 가격도 내림세다. 수출 철강재 가격은 올해 1월 평균 t당 1371.1달러였으나, 7월 1287.6달러로 6.1% 하락했다.
철강사 관계자는 "환율이 오르면 수입하는 철광석이나 스크랩(고철) 등의 원재료 가격도 오르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큰 의미가 없다"며 "적정 제품 가격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데, 강달러 현상이 오히려 수요에 부담으로 작용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해운업계 역시 마찬가지다. 운임을 달러로 받아 수혜업종으로 평가받지만, 경기 둔화 우려로 운임이 내림세여서 걱정이 더 많다. 컨테이너선 운임지표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 2일 기준 연초보다 44% 하락했고, 같은 기간 드라이벌크선(건화물선) 운임지표인 발틱운임지수(BDI)는 반토막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