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이 경영에 복귀하면서 그를 보좌할 컨트롤타워 조직이 재건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삼성은 2017년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 5년 넘게 컨트롤타워 부재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데, 신사업 전략을 수립하고 대내외 위기에 대응하려면 그룹 경영을 총괄할 조직 신설이 시급하다는 분석이다. 컨트롤타워 조직이 부활할 경우 과거 미전실이 받았던 '권한만 있고 책임은 없다'는 비판에 대한 대비책이 함께 나올지도 주목된다.

5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이 부회장이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된 이후 삼성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과 준법위는 이 부회장이 지난 2020년 5월 '4세 승계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로 지배구조 개선 문제를 검토해왔다. 이 부회장이 연내 회장으로 승진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지분구조 변화까지 아우르는 대규모 개편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회계 부정과 부당 합병 혐의 관련 속행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재계는 이 과정에서 삼성의 컨트롤타워가 복원될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삼성은 2017년 2월 말 국정농단 사태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던 미전실을 폐지했다. 이후 계열사 간 원활한 협력을 위해 삼성전자에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를 만들었다. 이 TF에는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 삼성전기(009150) 등 전자 계열사가 참여한다. 이어 금융 경쟁력 제고·EPC(설계·조달·시공) 경쟁력 강화 TF를 각각 삼성생명(032830), 삼성물산(028260) 중심으로 설립했다.

그러나 이같은 소그룹 체제는 과거 미전실에 비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유사 성격의 계열사별로 최소한의 업무 조율 체계를 만든 것일 뿐, 그룹의 중장기 전략 수립에 대한 결정권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사 결정이 제각각 진행되다보니 계열사 간 시너지가 발현되지 않았고, 전략의 일관성 역시 떨어진다는 반응이 많았다. 글로벌 IT 기업들이 급변하는 산업 환경에 맞춰 활발하게 사업 재편에 나서고 있지만, 삼성은 2016년 미국 전장 기업 하만을 약 10조원에 인수한 후 대형 인수·합병(M&A) 소식이 없다. 이 부회장의 리더십 공백이 크긴 했지만 컨트롤타워의 부재에 따른 영향 역시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재계에서는 미전실의 막강한 권한으로 인해 폐단이 생겼던 것은 사실이지만, 삼성을 지금의 자리로 올려둔 데에는 미전실의 역할이 지대했다고 본다. 1959년 창업주인 이병철 선대 회장의 삼성물산 비서실에서 출발해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 업무추진실, 미래전략실 등 여러 번 이름이 바뀌었지만 삼성 내에서는 항상 '실(室)'로 불렸다. 전 계열사의 경영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것은 물론, 인사와 감사 등을 통해 그룹 계열사 경영 전반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사령탑' 역할을 수행했다.

삼성SDI(006400), 삼성코닝, 삼성중공업(010140), 삼성전자, 호텔신라(008770) 등을 설립하거나 인수한 것은 비서실의 결정이었다. 1991년 액정표시장치(LCD) 사업을 어느 계열사에서 담당할지를 둘러싸고 삼성전자와 삼성전관(현 삼성SDI)이 경쟁할 때 삼성전자로 정리하며 사업을 키우기도 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구조조정본부로 개편된 비서실은 삼성자동차 매각 등을 주도했고,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밑그림을 그렸다. 그룹 공개채용 등 인재 관리 역시 이들의 담당이었다.

삼성물산 내 비서실을 꾸릴 때까지만 해도 인원은 20명 규모에 불과했지만, 2017년 해체 당시엔 250여명까지 불어났다. 각 계열사에서 우수한 인사고과를 받은 이른바 '에이스'들만 모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견된 인력은 통상 5년가량 근무한 이후 대부분 원래의 계열사로 복귀했는데, 미전실 출신들은 능력을 인정받은 만큼 초고속 승진가도를 달렸다. 정현호 삼성전자 사업지원 TF장(부회장)과 최윤호 삼성SDI 사장, 박학규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사장), 이인용 삼성전자 CR(대외협력) 사장, 김대환 삼성카드 대표 등이 미전실 출신이다.

컨트롤타워 수립 시나리오로는 현재 TF 조직을 확대·개편하거나 과거 미전실처럼 별도의 조직 설립 등 다양한 방안이 제기된다. 다만 삼성이 어떤 형태로든 컨트롤타워를 재건한다면 권한과 책임을 일치시켜야 한다는 외부 비판에 대한 대응책이 수반될 것으로 보인다. 김상조 전 공정위원장은 2016년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미래전략실은 막강한 권한에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며 "무리한 판단, 불법행위로 이어지는 경우도 없지 않다"고 지적했고, 이에 이 부회장이 "국민에게 부정적 인식이 있다면 없애겠다"고 약속하면서 해체로 이어졌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직접 미전실을 해체한 만큼 컨트롤타워를 복원하려면 충분한 명분과 부작용을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