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지역들은 이런 기업이 없어서 난리라는데, 여기 사람들에겐 아주 고마운 일인 거죠. 지역 경제에 도움이 엄청 많이 됩니다”

지난 25일 오전 9시쯤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외북동에 있는 SK하이닉스(000660) M15공장에서는 페이즈2(2단계) 클린룸과 스마트에너지센터(SEC) 건설을 위한 설비 공사가 한창이었다. 수십 미터(m)가 족히 넘는 거대한 크레인은 건물 위로 각종 자재를 부지런히 옮겼다. 현장 인부들은 안전에 유의하며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오전 11시, 점심시간이 되자 공장 입구로 수천 명의 인부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들은 약 500m 떨어진 ‘함바집’(건설현장 식당)으로 분주히 걸음을 옮겼다. 인기가 가장 많다는 한 식당 앞에는 이른 시간임에도 이미 30~40m쯤 되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이곳 주인은 “끼니마다 1000명은 족히 찾아오는 것 같다”며 “이 많은 사람이 여기 와서 밥만 먹겠는가. 다른 곳에 가서 커피도 마시고, 퇴근 후에는 술도 한 잔씩 할 테니 청주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어마어마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5일 오전 11시쯤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외북동에 위치한 SK하이닉스 M15공장에서 건설현장 인부들이 점심식사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정재훤 기자

청주에서 태어나 올해로 27년째 택시를 운전하고 있는 이상훈(57)씨는 “매일 아침 하이닉스 공장이 있는 흥덕구로 가 달라는 콜이 있다. 아침에는 흥덕구를 벗어나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대기업의 투자 전후로 청주가 많이 바뀐 것을 체감한다는 이씨는 “청주에는 유명한 관광지도 없는데, 이렇게 사람이 많아진 것은 다 SK(034730), LG(003550)같은 대기업이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지역 부동산 역시 건설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공사를 위해 외지에서 유입된 인부들이 방을 찾기 시작하면서, 지난해까지만 해도 공실이 많았던 청주 원룸 임대 시장은 이제 ‘없어서 못 판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원룸 가격도 올랐다. 보증금 200만~300만원, 월세 25만원이면 구할 수 있던 15㎡(약 4.5평) 크기의 원룸은 현재 35만원까지 월세가 올랐다. 하이닉스 공장 인근 복대동에서 19년째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운영하는 김용식(60)씨는 “송절동, 봉명동, 복대동 등 공장 인근 지역의 원룸은 이미 몇 개월 전부터 씨가 말랐다. 가끔 매물이 나와도 그날 바로 나간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청주시의 인구 역시 꾸준히 상승세를 그리고 있다. 행정안전부의 주민등록인구통계에 따르면 청주시의 인구는 청원군과 통합한 이후인 지난 2015년 1월 83만1389명에서 지난달 기준 84만9083명으로 1만7694명이 늘었다.

지난 25일 오후 4시쯤 삼성디스플레이 공장이 위치한 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에서 도시형 생활주택과 지식산업센터가 새로 지어지고 있다./아산=정재훤 기자

◇ 삼성디스플레이 들어선 아산시, 인구 10만명 늘어… 관광 효과도 쏠쏠

삼성디스플레이 1·2공장이 위치한 충남 아산시 역시 ‘기업 낙수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삼성은 면내에만 21개 작목반이 있었을 정도로 큰 포도밭이 있던 아산시 탕정면 일대 부지를 매입, 2000년대 초부터 30조원을 쏟아부어 총 140만평(462만8100㎡) 규모의 디스플레이 공업단지를 조성했다.

대기업의 과감한 투자는 급격한 인구 증가로 이어졌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아산시 인구는 33만1190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행안부가 관련 통계를 제공하기 시작한 지난 2008년 1월과 비교해 10만6809명 증가한 수치다.

지금도 삼성디스플레이 공장 주변에는 2023년 완공을 목표로 지식산업센터, 오피스텔, 도시형 생활주택 등을 짓는 대규모 공사가 진행 중이다. 인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33㎡(10평) 규모의 신축 오피스텔단지의 분양가는 1억7000만~1억8000만원 수준인데, 인기가 많다. 부동산 중개업자 김모(40)씨는 “모든 시설이 사실상 삼성만을 보고 지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향후 삼성디스플레이 공장 증설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외부 투자자들이 몰리고 있다”라고 말했다.

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에 위치한 지중해마을 전경./아산=정재훤 기자

삼성의 투자는 아산시의 관광 상권도 활성화했다. 삼성디스플레이 공장이 들어서며 원주민 중 상당수가 이주해 만든 ‘지중해마을’이 대표적이다. 그리스 도서 지역을 본떠 만든 이곳은 이국적인 분위기로 주말마다 관광객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들은 지난 2년간 코로나로 손님이 줄어 지중해마을 상가의 공실률이 높아졌지만, 최근 상권 활성화를 기대하고 다시 입주한 상가들이 많아 지금은 공실이 거의 없다. 이곳 주변도 8000세대에 가까운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이 내년 완공을 목표로 한창 건설 중이었다. 1년 전부터 공실이었던 상가에 입주해 샐러드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이완이(32)씨는 “임대료가 비싼 편이지만 전망이 좋을 것 같아 입주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지난 26일 오전 10시 30분쯤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에 위치한 SK하이닉스 공장 정문. 뒤로 보이는 건물이 M16 공장./정재훤 기자

◇ ‘청년층 비중 30%’ 젊은 도시 이천시… 취업자 비율 전국 1위

SK하이닉스 본사가 위치한 경기도 이천시도 대규모 투자 덕분에 지역 경제가 활성화됐다. 2018년 11월부터 2021년 2월까지 공사가 진행된 M16 공장에는 총 3조5000억원, 연 334만명의 인력이 투입됐다. 건축면적은 5만7000㎡(축구장 8개 규모)에 달한다. 향후에도 EUV(극자외선) 노광장비 등을 추가로 들여오는 것까지 고려하면 총 20조원 규모의 투자가 이뤄질 예정이다.

26일 오전에 찾은 SK하이닉스 M16 공장에는 아직도 수백 명의 인부가 눈에 띄었다. 건물의 전체적인 뼈대는 이미 완성됐지만, 배관·보드 시공 등 마무리 작업이 남아있다는 것이 인부들의 설명이었다.

다른 지역의 상권이 전반적으로 침체기를 겪은 반면, 이 주변 상인들은 전국 각지에서 일자리를 찾아 이천으로 온 수천 명의 인부들 덕분에 충격이 덜했다. 한 식당 사장은 “올해 4월까지만 해도 점심에 400~500명이 찾았다. 지금도 100명 정도씩은 오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6일 오전 11시쯤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에 위치한 SK하이닉스 M16 공장 현장 인부들이 식사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정재훤 기자

SK하이닉스 본사 인근에는 건축·재건축이 이뤄지고 있는 현장이 곳곳에 있다. 정문에서 100m가량 떨어진 곳에는 주상복합 아파트와 오피스텔이 들어서기 위해 상가건물을 허무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새 공장이 들어서며 추가될 인력 규모를 3000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이 인원을 유치하려고 주거지역 건설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사실상 이천 경제는 하이닉스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이천시 인구도 과거와 비교해 크게 늘었다.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이천시 인구수는 22만4603명을 기록했다. 이는 SK하이닉스가 SK그룹에 인수되기 이전인 지난 2011년(20만4566명)보다 2만명 이상 늘어난 수치다.

특히 일자리를 찾아 유입되는 젊은 인구로 인해 20~39세 청년 비율이 높다. 7월 기준 이천시의 20~39세 인구 비율은 27.39%(6만1536명)로 전국(25.55%)보다 2%포인트(P)가량 높다. 통계청의 ‘2022년 상반기 지역별 고용조사’ 자료에 따르면, 전국 9개 도 내 시 지역(77개) 중 근무지 기준 취업자(15세 이상) 비중이 가장 높은 지역도 이천시(83.7%)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