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주목받던 바이오산업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뜨거웠던 기업공개(IPO) 열풍은 검증을 철저히 하려는 분위기와 함께 찬바람이 불고 있고 급증하던 바이오·의료 벤처 투자 규모 역시 주춤하고 있다. 그러나 바이오산업 인프라가 잘 갖춰진 바이오 클러스터는 검증된 바이오 벤처 산업을 일으킬 여건을 제공한다. 정부 역시 제약·바이오 기업에 투자하는 5000억 원 규모의 민간 합동 ‘K-바이오·백신 펀드’를 조성하고, 각종 세액지원을 아끼지 않을 예정이다. ‘이코노미조선’은 혹한기 속 바이오산업의 돌파구가 될 수 있는 바이오 클러스터의 성공 열쇠를 취재했다. [편집자주]
“전국 시·도에 20개가 넘는 바이오 클러스터가 형성돼 있지만, 독자적인 운영으로 시너지 효과가 떨어지고 있다. 우수 인력과 연구 시설, 바이오 기업들의 수도권 집중으로 수도권과 지방 바이오 클러스터 간 양극화 현상도 커진 상황이다. 광역권 협력 활성화를 통한 보완책이 필요하다.”
이상원 성균관대 약대 교수와 조용래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연구위원은 7월 29일과 8월 9일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에서 국내 바이오 클러스터 현황에 대해 이 같은 분석을 내놓았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연구원 출신인 이 교수는 2010년 ‘세계 각국의 바이오 클러스터’라는 연구 보고서를 발간했고, 2008년부터 2010년까지 국내 첨단의료복합단지 지정 및 계획 수립에 대한 정부 과제 연구를 주도한 바이오 클러스터 전문가다. 조 연구위원은 2021년 ‘바이오 클러스터 정책 진단과 지역주도 혁신성장 방향’이라는 정책 보고서를 통해, 국내 바이오 클러스터 성장을 위한 국가 정책 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바이오 클러스터의 성공 조건은.
이상원 “우수한 인재 유치다. 세계 최대 바이오 클러스터인 보스턴의 경우 하버드대나 매사추세츠공과대(MIT), 보스턴대 같은 명문 대학이 인접해 있기 때문에 우수 인재들과 협업과 경쟁이 가능하다. 특히 기업가 정신이 투철하기로 유명한 MIT 출신들이 보스턴에서 많은 바이오 벤처 기업을 창업했고, 이를 통해 자연스레 바이오 투자 생태계가 발전했다. 우수한 인재들이 모인 곳에선 연구가 활성화하고, 연구 질이 올라간다는 특성이 있다. 이에 기반해 바이오 벤처 기업 수가 늘고, 바이오 신기술 개발도 함께 증가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벤처 투자 생태계가 발전하고, 바이오 클러스터가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
조용래 “사전적 의미의 클러스터는 ‘함께 성장하고, 집중하고, 발생하는 다수의 것들’ 또는 ‘함께 그룹을 이룬 다수의 사람이나 사물’로 정의된다. 이러한 사전적 정의를 기준으로 보면, 바이오 클러스터에는 다양한 혁신 주체가 같은 물리적 공간에 존재하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 그 물리적 공간에는 연구소, 대학 등 연구 기반의 비전을 제시하는 혁신 주체가 있어야 한다. 성공한 모델 기업도 있어야 하고, 연구 혁신 주체와 기업 간 협력처럼 빈번한 교류와 대면 접촉을 통한 신뢰가 구축돼야 한다. 바이오⋅생명공학은 바이오 벤처나 소규모 기업들이 지식을 창출하는 산업 분야다. 바이오 벤처 등 소규모 기업이 혁신을 주도해야 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협력 파트너 관계가 유지되는 한편, 대기업 간에는 협력과 경쟁 메커니즘이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
성공한 해외 바이오 클러스터를 꼽는다면.
이상원 “보스턴이다. 이곳은 정부가 주도한 게 아니라, 좋은 인재가 모여 새로운 혁신이 만들어졌고, 이를 토대로 투자가 활성화했다. 명문 대학과 연구 시설, 병원이 모여 있는 덕에 이러한 선순환 구조가 자연 발생적으로 만들어지면서 클러스터화했다. 보스턴처럼 자연 발생적으로 클러스터화하려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각국에선 정부 주도 클러스터화가 추진됐다. 대학이나 연구 시설, 벤처 창업 생태계 등 성공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클러스터를 추진해 어려움을 겪는 클러스터도 많다.”
조용래 “보스턴의 바이오 클러스터는 바이오 업계에서 가장 모범적이고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1977년 미국 케임브리지 시의회에서 DNA 재조합 실험을 합법화하면서 MIT와 하버드대 출신 과학자들이 바이오젠(Biogen)을 설립, 보스턴 바이오산업 기반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보스턴 바이오 클러스터의 시발점이 됐다. 국가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보스턴 바이오 클러스터의 성공요인은 크게 세 가지 조건으로 압축된다. 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설립된 많은 연구 시설과 병원이 있었다는 점, 하버드대 등 지역 명문 대학으로부터 최고의 인적 자원 공급이 가능했다는 점, 이로 인해 많은 바이오 기업이 해당 지역으로 진출하고, 다시 확장하는 선순환 구조가 가능했다는 점이다.”
한국에도 보스턴의 성공 조건이 적용될 수 있을까.
조용래 “보스턴 바이오 클러스터의 시발점에서 보면, 시의회가 재조합 DNA 실험을 합법화하면서 다양한 혁신 주체가 모이고 지금의 보스턴 바이오 생태계가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 한국 상황에 적용하면,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바이오 특화 규제샌드박스를 국내 바이오 클러스터 성장의 디딤돌로 작용하도록 정책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국내 바이오 클러스터의 수도권 집중 현상이 심하다. 지방 바이오 클러스터의 생존 전략은.
이상원 “지방의 바이오 클러스터 생존 문제는 수도권 집중 현상이라는 본질적인 문제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지역 현실에 맞게 할 수 있는 부분에 좀 더 집중하고 연구 시설과 기업을 유치하는 게 가장 좋은 전략이다. 안동 경북바이오산업단지의 경우 지리적 측면에선 수도권과 멀다는 한계가 있지만, 백신 클러스터로 특화한 점은 선택과 집중을 잘한 사례다. 어떻게 보면 특성화 전략이 지리적 여건을 극복할 대안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특성화 분야의 기업이나 정부 연구소를 유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조용래 “바이오 클러스터의 성공 조건과 특징을 고려했을 때 이를 충족할 수 있는 요소들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앞으로도 한국의 바이오 클러스터 성공을 위해선 자원이 수도권으로 집중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가 전체 관점에서도 바이오 클러스터 성공 조건을 분석해 다양한 지역 권역에 집적시키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수도권과 지방 간 양극화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는 산업과 기업의 생존을 위한 활동 과정에서 불가피한 현상이다. 균형 발전도 중요하지만, 지방 역시 특화된 경쟁력을 확보하고, 타 지역과의 협력 강화에 나서야 한다.”
지방에 바이오 클러스터가 많이 생겼지만, 규모도 작은 데다 독립적 운영으로 시너지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다.
이상원 “전국 시·도에 20개가 넘는 바이오 클러스터가 생겼다. 국내 시장 규모를 고려하면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다고 본다. 지금 와서 이걸 하나로 통합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급진적인 통합을 통한 효율화 정책이 큰 효과를 보기 어려울 것이다. 성과를 내지 못하는 곳은 점진적으로 도태될 수밖에 없어, 시간이 지나면 바이오 클러스터 수가 자연 감소할 것이다. 그러나 거리상 가까운 인근 바이오 클러스터 간 협력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높일 순 있다고 본다. 전국을 몇 개의 큰 광역 클러스터로 묶어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연구 인력이나 축적된 데이터 등 기술 자원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에 광역 클러스터는 수도권에 자원이 집중돼 경쟁력이 약해진 지방 클러스터의 생존을 위한 대안이 될 수 있다.”
바이오 클러스터가 성공하려면 대기업 유치가 꼭 필요한가.
조용래 “대기업 유치 효과는 분명히 있다. 신규 채용을 통한 일자리 창출 효과뿐 아니라, 최첨단 시설 장비나 새로운 인프라 구축 등을 통해 그 지역은 성장의 발판과 기회를 제공받게 된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대기업 주도 성공 공식이다. 그러나 바이오 클러스터의 성공 조건은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대기업 유치 기반 성공 모델에만 집착해선 안 된다. 바이오 중소기업이나 벤처 기업들도 성공 모델을 만드는 사례가 있다. 이들 성공 전략이 유용할 수도 있다. 일례로, 대전 바이오 클러스터의 알테오젠이라는 바이오 벤처 기업은 2020년 4조7000억원의 기술 이전 수출을 이뤄낸 바 있다. 국내 바이오 벤처 기업의 기술 수출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다른 산업과의 협력 발전 가능성은.
조용래 “최근 디지털 데이터가 중요해지면서 정보통신 기술이 바이오산업과 협력을 통해 또 다른 시너지를 창출하고 있다. 최근 바이오밸리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실리콘밸리가 바이오산업의 미래 방향성을 제시하는 좋은 사례다. 바이오 기술이 이종(異種) 산업 기술과 접목을 통해 기존의 성과를 뛰어넘는 획기적인 신기술과 신시장 창출을 가속화할 것이다.”
-더 많은 기사는 이코노미조선에서 볼 수 있습니다.
Part 1. 바이오 클러스터, 혹한기 돌파구 만들까
① 우후죽순 생겨나는 K바이오 클러스터
② [Infographic] 국내외 바이오 클러스터 현주소
Part 2. 바이오 클러스터 이끄는 사람들
③ [Interview] 美 랩센트럴 최고브랜드경영자(CBO) 마이크 라렛
④ [Interview]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차상훈 이사장
⑤ [Interview] 경상북도 이철우 도지사
Part 3. 전문가 제언
⑥ [Interview] 국내 바이오 클러스터 전문가 2인
⑦ [Interview] 김종성 미국 보스턴대 퀘스트롬경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