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the Inflation Reduction Act·IRA)'이 태양광 등 신재생 에너지 외에 원자력 발전산업에도 세금 혜택을 주기로 하면서 두산에너빌리티(034020)와 SK(034730) 등 국내 기업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미국은 과거 34년 동안 원전 건설을 하지 않아 시공 능력이 거의 없다. 비교적 최근에 건설 허가를 받은 원전은 모두 한국 기업이 참여했기 때문에 현지 신규 원전 건설이 증가하면 한국 기업도 수혜가 예상된다.
26일 미국 현지 언론과 원전 업계에 따르면 IRA에는 2024~2032년 동안 원전에서 생산된 전기에 메가와트시(MWh) 당 15달러 상당의 세액 공제를 제공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신규 원전을 건설할 경우 설비투자 금액의 30%에 대한 투자 세액 공제도 받을 수 있다. 기존 석탄발전소 부지에 원전을 건설하면 추가 10% 세액 공제를 받는다. 미국 원자력협회(NEI·Nuclear Energy Institute)는 원전에서 생산되는 전력 1MWh당 최대 44달러의 세제 혜택이 지속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전 업계 관계자는 "워낙 친환경 에너지에 관심이 많아 원전이 덜 부각된 측면이 있지만, IRA에 원전 사업을 육성하겠다는 바이든 정부의 의지가 담겨있다고 현지 업계는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에서 완공돼 가동된 원전은 2016년 테네시주의 와츠바 원전 2호기가 유일하다. 이밖에 2000년대 이후 건설에 착수한 원전은 예산이나 기술력 문제로 공사가 중단됐다.
현지에선 폐쇄를 검토 중인 12기의 원전이 가동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 친환경에너지을 보완하기 위해 신규 원전 발주도 진행될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에서 노후 원전 수명 연장이나 신규 원전이 발주될 경우 최대 수혜자로는 두산에너빌리티(옛 두산중공업)가 거론된다. 미국은 1979년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 원전 사고로 34년간 새 원전 건설을 중단했다. 이후 원전 산업 생태계가 붕괴하고 독자적 건설 능력을 상실했다. 한때 세계 최고 원전 기업이었던 미국 웨스팅하우스는 1999년 영국 BNFL에 매각됐다가 2006년 일본 도시바가 인수했고, 2017년 파산 보호 신청을 거쳐 2018년 캐나다의 사모펀드(PEF) 브룩필드에 팔렸다. 브룩필드 역시 수익성 문제로 웨스팅하우스를 매물로 내놓았다.
2000년대 이후 미국이 신규로 건설했던 원전에는 모두 두산에너빌리티가 참여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서머원전 2, 3호기와 조지아주 보글원전 3·4호기에 원자로를 공급했다. 서머원전은 예산과 기술력 문제로 건설이 중단됐고, 보글 원전 역시 준공이 지연되면서 공사 중단 위기에 놓였다. IRA가 시행되면 가장 먼저 이들 원전에 대한 공사가 재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에서 신규 원전 발주가 진행될 경우 '미국 기업 설계-한국 기업 시공'의 협업이 유력할 것으로 국내 원전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현재 한·미 공조로 추진하는 해외 원전 수출 전략과 같은 모델이다. 미국은 원전 시공 능력이 없는 만큼 한국 기업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 노후 원전의 수명이 연장되면 현지에 부품을 납품했던 한국 기업들도 수혜를 입을 전망이다.
국내 기업이 대거 참여한 미국 SMR 프로젝트도 주목된다. SMR은 전기 출력 300㎿급 이하 차세대 원자로를 뜻한다. 기존 대형 원전인 1000~1400㎿급보다 출력이 작지만, 원자로와 냉각재를 하나의 용기에 설치하기 때문에 건설 기간이 짧고 비용이 적게 든다. 발전 효율과 안전성도 기존 원전에 비해 획기적으로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IRA에는 2026년까지 고순도저농축우라늄(HALEU) 연료의 연구개발에 7억달러(한화 약 9350억원) 지원이 포함돼있다. HALEU는 차세대 원전으로 꼽히는 SMR의 원료로 사용된다. SMR이 건설되면 기존 원전과 마찬가지로 IRA에 따른 세액 공제를 받게 된다.
SK그룹이 투자한 테라파워는 이번 IRA 원자력 부문에서 최대 수혜 기업으로 꼽힌다. SK그룹은 최근 테라파워에 2억5000만달러(약 3000억원)를 투자했다. 테라파워는 2008년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게이츠가 설립한 차세대 원자로(소듐냉각고속로·SFR) 설계기업이다. 미국의 외교정책 싱크탱크 대서양위원회(Atlantic Council)는 이번 IRA 최대 수혜자로 테라파워를 선정하기도 했다.
두산에너빌리티, GS(078930)그룹, 삼성물산(028260) 등이 참여한 뉴스케일파워의 SMR 프로젝트도 주목받는다. 두산에너빌리티는 국내 투자사들과 함께 뉴스케일파워에 1억380만달러(한화 약 1740억원)의 지분을 투자하며 수조원 규모의 기자재 공급권을 확보한 바 있다. 2019년에 뉴스케일파워로부터 SMR 제작성 검토 용역을 수주 받아 지난해 1월 완료했다. 삼성물산 역시 뉴스케일파워사에 7000만달러(약 930억원)를 투자했다. 양사는 2029년 아이다호주에서 상업 운전 예정인 SMR 프로젝트 등에서 협업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