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조선사 저가수주의 주범으로 지목되던 초대형 유조선(VLCC) 신조 주문이 지난 13개월 동안 단 한 건도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VLCC 시장을 주도해온 한국 조선사들이 수익성이 높은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건조에 집중하면서, 선주들이 배 만들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국 조선사들은 수주 잔고 중 VLCC 비중이 줄면서 수익성이 개선될 전망이다.

23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지난 2021년 6월 유럽 선사 유로나브가 한국조선해양의 자회사 현대삼호중공업에 발주한 VLCC 1척을 마지막으로 전 세계 조선업계의 VLCC 계약은 맥이 끊겼다. 중국과 일본의 조선사도 2021년 1분기를 마지막으로 해당 선종을 수주하지 못했다.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제작 중인 30만톤급 초대형원유운반선(VLCC)의 모습. /뉴스1

이에 따라 한국조선해양, 삼성중공업(010140), 대우조선해양이 현재 제작중인 물량을 2023년 3분기까지 모두 인도하면 2024년에는 VLCC가 1척도 인도되지 않을 전망이다. 통상 설계부터 건조까지 18개월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25년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현재 운항중인 전 세계 VLCC 중 가장 낡은 배의 제작년도는 1996년인데, 이후 새 VLCC가 단 해도 거르지 않고 시장에 공급됐다. 인도량이 가장 적었던 2006년에도 18척의 VLCC가 새로 운항을 시작했다.

VLCC 건조 계약이 중단된 이유는 원자재 가격 상승과 LNG운반선의 인기 때문이다. 중국과 일본 조선사들은 가격 및 품질 등의 이유로 VLCC 신조 시장에서 비중이 작다. 그런데 한국 조선사들은 최근 부가가치가 높은 LNG 운반선을 한 척이라도 더 만들기 위해 원자재는 더 많이 들어가면서도 선가는 싼 VLCC의 수주를 꺼리고 있다.

최근 한국 대형 조선 3사에는 수익성이 더 좋은 LNG 운반선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 17만4000㎥급 LNG 운반선 선가는 1척당 2억~2억4000만 달러 수준이지만, 제작에 필요한 후판은 VLCC보다 오히려 적게 들어간다. 32만DWT급 VLCC는 길이가 330m 안팎인데 비해, 가장 많이 제작되는 17만4000㎥급 LNG 운반선 길이는 270m 안팎이다. 게다가 LNG운반선의 건조 기간은 약 30개월로, VLCC의 2배가 안 된다. 한국조선해양은 최근 2분기 실적 발표후 컨퍼런스콜에서 "VLCC 선가를 1억3000만 달러 이하로는 내릴 생각이 전혀 없다"고 호언하기도 했다.

마지막 VLCC 계약이 집중된 작년 1분기 한국 조선사의 거래 조건을 보면, 1척당 선가가 9000만~1억430만달러 수준이었다. 조선소를 놀릴 수 없어 '울며 겨자먹기'로 VLCC를 수주하던 시기다. 하청 노조의 파업으로 저가 수주 논란이 재개된 대우조선은 지난해 1분기에 척당 9600만 달러에 수준으로 VLCC 10척을 한꺼번에 수주한 바 있다. 이후 수익성이 더 좋은 컨테이너선과 LNG 운반선 시장이 차례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대우조선은 내년 9월 인도분을 마지막으로 VLCC 수주 잔고가 사라지고, 지난해 이후 수주가 급증한 LNG 운반선 건조를 본격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