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이 복권 후 경영 일선에 공식 복귀하며 2028년까지 20조원 규모 첨단 연구단지 조성 계획을 발표했다. 과감하고 선제적인 투자로 차별화된 반도체 기술력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지속성장역량을 갖춰야 한다는 주문이다.

이 부회장은 19일 오후 경기도 용인 삼성전자 기흥캠퍼스에서 열린 차세대 반도체 연구·개발(R&D) 단지 기공식에 참석했다. 이 부회장의 첫 현장 경영지로 선택된 기흥캠퍼스는 1983년 삼성의 반도체 사업이 태동한 곳이다. 1992년 세계 최초 64M D램 개발, 1992년 D램 시장 1위 달성, 1993년 메모리반도체 분야 1위 달성 등 ‘반도체 초격차’의 초석을 다진 곳이다. 삼성전자가 국내에 새로운 R&D 센터를 설립하는 것은 2014년 화성캠퍼스 디바이스솔루션리서치(DSR) 이후 8년 만이다.

이날 행사에는 이 부회장을 비롯해 경계현 DS부문장, 정은승 DS부문 CTO, 진교영 삼성종합기술원장, 이정배 메모리사업부장, 최시영 파운드리사업부장, 박용인 시스템LSI사업부장 등 임직원 100여명이 참석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9일 기흥캠퍼스에서 열린 R&D단지 기공식에서 직원들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삼성전자 제공

이 자리에서 이 부회장은 ‘세상에 없는 기술로 미래를 만든다’는 슬로건 아래 “기술 리더십을 바탕으로 혁신을 주도해 반도체 사업에서 또 한번의 큰 도약을 이뤄내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반도체 산업은 시장성이 클 뿐만 아니라 타 산업에 파급효과가 큰 고부가가치 산업’이라는 고(故) 이병철 선대회장의 말을 되새기며, 위기에 흔들리지 않고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초격차’ 기술력 확보를 당부했다.

이 부회장은 “40년 전 반도체 공장을 짓기 위해 첫 삽을 뜬 기흥사업장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면서 “차세대뿐만 아니라 차차세대 제품에 대한 과감한 R&D 투자가 없었다면 오늘의 삼성 반도체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기술 중시, 선행 투자의 전통을 이어 나가자. 세상에 없는 기술로 미래를 만들자”고 했다.

이 부회장은 최근 기회가 될 때마다 기술 경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업계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대만 TSMC는 더욱 빨리 달아나고 있고, 중국 반도체 기업은 거세게 추격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 6월 18일 유럽 출장을 마치고 돌아와 “첫째도 기술, 둘째도 기술, 셋째도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첫 대외 행보로 R&D 단지 기공식을 선택한 것도 이 부회장의 기술 경영을 향한 의지를 드러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기흥 반도체 R&D 단지는 약 10만9000㎡(약 3만3000평) 규모로 건설된다. 삼성전자는 2025년 중순 가동 예정인 반도체 R&D 전용 라인을 포함해 2028년까지 연구단지 조성에 약 20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과감하고 선제적인 투자로 차별화된 반도체 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R&D 단지는 ▲메모리 ▲팹리스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 등 반도체 R&D 분야의 핵심 연구기지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삼성전자 측은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기흥 R&D 단지 건설을 통해 국내외 소재·장비·부품 분야 협력회사들과의 R&D 협력도 더욱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협력회사들과의 R&D 협력은 양질의 일자리 확대와 우수 반도체 연구개발 인재 육성으로 이어져 국내 반도체 산업 생태계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회사 측은 보고 있다.

경 부문장은 반도체 기술 경쟁력 확보 전략을 보고하며 “우수한 연구개발 인력들이 스스로 모이고 성장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 기회를 통해 조직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9일 기흥캠퍼스 구내식당에서 식사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이날 기흥캠퍼스에서 열린 R&D단지 기공식에 참석했다./삼성전자 제공

이 부회장은 오후 1시쯤 행사가 끝난 직후 화성캠퍼스로 이동했다. 먼저 임직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직원들의 건의사항을 수렴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도전과 혁신을 촉진하기 위한 조직문화 개선방안 등 다양한 의견을 교환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임직원들과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눈 것은 지난 2020년 8월 수원사업장에서 워킹맘 직원들과의 간담회 이후 만 2년 만이다. 이날 이 부회장은 직접 소통 기회를 점차 늘려나가겠다고 약속하며, ‘어떠한 변화에도 대처할 수 있는 유연한 사고를 갖추기 위해 노력해 달라’고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회장은 이어 반도체연구소에서 DS부문 사장단 회의를 개최했다. ▲글로벌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주요 현안 및 리스크 ▲차세대 반도체 기술 연구개발 진척 현황 ▲초격차 달성을 위한 기술력 확보 방안 등이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이 부회장이 R&D 단지 기공식에 참석하며 경영 일선에 공식 복귀한 만큼, 향후 경영 보폭이 더욱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안팎에서는 이 부회장이 연내 회장으로 승진해 책임 경영을 강화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