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친환경 에너지 공급망 강화에 480조원을 투자하는 내용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곧 하원 표결을 앞둔 가운데, 국내 재생에너지 기업들이 이 법안의 큰 수혜를 받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온다. 오바마 행정부의 ‘그린뉴딜’과는 비교가 불가능할 만큼 큰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전망되는 이번 법안은 친환경 산업의 고속 성장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 재생에너지 업계는 시장 주도권 확보를 위한 최적의 투자 시기를 포착하기 위해 분주히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안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로이터

◇ 인플레 감축법으로 재생에너지 고속성장… “2030년 美 전력 40% 차지”

11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하원은 오는 12일(현지시각) 전후로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대한 표결을 실시한다. 앞서 지난 7일 미국 상원이 50대 51로 법안을 통과시켰고, 하원은 법안의 미세 조정 작업을 진행해 왔다. 하원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소속된 민주당이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무난한 통과가 예상된다. 이후 바이든 대통령의 서명까지 마치면 법 실행을 위한 절차가 모두 마무리된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내년부터 10년간 에너지 안보와 기후변화 대응, 의료비 지원 등을 위해 4300억달러(약 560조원)를 투입하는 것이 골자다. 이 중에서 3690억달러(480조원)는 친환경 에너지 공급망을 강화하는 데 쓰인다. 태양광·풍력 발전에 대규모 세액공제를 제공하는 것이다. 재생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세액공제는 세금을 깎아준다는 것이고, 결국 현금을 지급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재생에너지 선진국으로 유럽과 미국이 꼽히는데, 이번 법안으로 미국이 명실상부한 재생에너지 최강국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미국 내 재생에너지 시장을 고속 성장 궤도에 올려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청정에너지협회(ACP)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미국에 설치된 태양광·풍력·에너지저장장치(ESS) 용량은 28기가와트(GW) 수준이지만,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따라 2030년 97GW로 3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측됐다. ACP는 “2030년 국가 전력의 약 40%까 태양광, 풍력, ESS에서 나오게 될 것”이라고 했다.

지난 2009년 오바마 행정부가 시행한 ‘그린뉴딜’ 정책과는 영향력 측면에서 비교 불가능하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오바마의 그린뉴딜이 900억달러였던 것에 반해 바이든의 그린부양안은 3690억달러로 예산 규모가 다르다”며 “더 중요한 것은 그 당시 대비 풍력, 태양광 등 그린산업 전반의 제조원가가 급락해 실질적인 정책지원 효과가 오바마 때보다 월등히 크다”고 말했다. 재생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이번 법안은 중국과의 분쟁으로 자국 내 생산 시설에 혜택을 준다는 것이 오바마 정책과의 차이점”이라고 말했다.

◇ 한화솔루션·씨에스윈드 수혜주… “추가 투자는 시기 조절 필요”

미국 시장에 진출했거나 진출을 앞두고 있는 국내 재생에너지 기업들은 큰 수혜를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태양광 발전 분야에서 가장 직접적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은 미국에서 태양광 모듈을 생산하고 있는 한화솔루션(009830) 큐셀부문이다. 강동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한화솔루션은 미국에 1.7GW 태양광 모듈 설비를 보유하고 있고, 내년 상반기중 1.4GW를 추가적으로 증설해 태양광 밸류체인을 확장할 계획”이라며 “IRA의 최대 수혜 기업”이라고 분석했다.

풍력 발전 분야에선 씨에스윈드(112610)가 최대 수혜 기업으로 꼽힌다. 풍력타워 제조기업인 씨에스윈드는 작년 6월 미국 내 풍력타워 공장을 보유하고 있는 베스타스타워아메리카 지분 100%를 1665억원에 인수하며 현지 직접 생산에 뛰어들었다. 씨에스윈드의 올해 미국 매출은 4500억~5000억원으로 전망되고 있는데, 이번 법안에 포함된 풍력 생산 세액공제(PTC) 등을 발판 삼아 향후 1조원까지 매출 규모를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미국에서 직접 생산하지 않는 기업들도 시장 규모가 성장함에 따라 간접적 수혜를 입을 것으로 보인다. OCI(456040)와 현대에너지솔루션 등 태양광 업체와 동국S&C(100130), 삼강엠앤티, 유니슨(018000) 등 풍력 업체 등이 그 대상으로 꼽힌다. 재생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미국 내 재생에너지 발전 설치량 자체가 확대되면 밸류체인 앞단에 있는 회사들의 제품 수요도 늘어날 수 있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재생에너지 업계는 미국 시장 내 생산시설 확대와 신규 진출 등을 위한 최적의 발판이 마련됐다고 평가하면서도, 그 시기에 대해선 다소 신중해야 한다는 분위기다. 재생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개발사 입장에선 원자재 가격과 운송비가 상승하고 있고 이를 잡기 위해 금리도 오르고 있어 부담이 큰 상황”이라며 “고객사 역시 같은 고충을 겪고 있기 때문에 시장이 아무리 커진다 해도 수요가 어느정도의 속도로 따라와줄 수 있을지 지켜보면서 투자 계획을 집행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