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 탄소중립’을 목표로 세계 각국이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탄소 포집·저장·활용 기술(CCUS·Carbon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에 대한 투자도 계속되고 있다. 탄소를 포집해 저장할 곳이 마땅하지 않은 우리나라와 화석연료 의존도가 큰 동남아시아 간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협력이 확대되는 모양새다.
3일 재계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국영 에너지기업 페트로나스(Petronas)와 삼성중공업(010140), 삼성엔지니어링, 롯데케미칼(011170), GS에너지, SK에너지, SK어스온 등 6개 우리 기업은 ‘셰퍼드CCS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했다. 한국에서 발생한 탄소를 모은 뒤 말레이시아로 옮겨 저장하는 것이 골자다. 말레이시아 사라왁주(州) 지역에 저장 장소를 탐색해 사업성을 검토한 뒤 본격적인 개발에 나설 예정이다.
앞서 포스코인터내셔널(047050)과 포스코건설도 페트로나스와 탄소 저장과 활용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포스코그룹이 개발하고 있는 CCUS 기술을 토대로 말레이시아를 탄소 저장 솔루션의 허브(hub)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SK E&S는 인도네시아 국영 가스기업 PGN과 MOU를 체결해 CCS 분야의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CCUS는 산업 현장이나 발전 과정에서 나온 이산화탄소를 포집한 뒤 압축해 땅 아래 저장하거나, 다시 활용하는 기술이다. 탄소를 저장하는 기술을 CCS, 탄소를 생산 설비에 활용하는 기술을 CCU로 구분해 부르기도 한다. 전 세계적으로 탄소중립 움직임이 일면서 주목받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총 감축량의 18%를 CCUS가 담당할 것으로 전망했다. 단일 기술로는 가장 큰 비중이다.
동남아시아 국가들 역시 CCUS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IEA는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부르나이, 싱가포르 등 7개국이 CCUS 사업을 추진하는 중이라고 평가했다. 이들 나라는 화석연료 의존도가 크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연간 전력 생산량의 80% 이상을 석탄과 석유, 천연가스에 의존하고 있다. CCUS 기술을 적용해 화석연료 발전 시설에서 나오는 탄소를 줄이면 단기간에 시설을 폐쇄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 기업에도 동남아시아가 유리한 협력 대상이다. 국내는 탄소를 포집해 매장할 공간이 마땅치 않아 해외로 옮겨야 한다. 동남아시아는 CCUS 사업이 활발한 유럽·미주는 물론 중동·호주보다 지리적으로 가까워 탄소 운반 비용이 적게 든다.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그동안 시추가 끝난 원유나 천연가스 광구의 빈 곳을 탄소 저장에 활용하기도 용이하다.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꼽히는 수소 사업과도 연계할 수 있다. 재생 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그린수소가 최종 목표이지만, 중간 단계에서 액화천연가스(LNG)를 개질해 만드는 블루수소가 쓰일 전망이다. LNG를 활용해 수소를 만들면 탄소가 발생하기 때문에 CCS 기술이 뒷받침돼야 한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등에서 진행하거나 추진하는 LNG 사업과 연계해 개발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CCUS가 탄소 배출 자체를 줄이는 기술이 아니어서 반대 여론이 적지 않다. 화석연료를 계속 사용하도록 하는 그린워싱(Green Washing·위장 환경주의)이란 비판도 있다. CCUS 사업의 성과가 나오기까지 확장성 등을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진윤정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최근 ‘CCUS를 바라보는 두가지 시각’ 보고서에서 “최적의 탄소 감축 수단을 조합하는 측면에서 CCUS의 기여도를 어디까지로 볼지가 문제”라며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를 이어 나가는 동시에 기술의 현실적인 적용 가능성이나 유용성도 잘 평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