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루페인트 등을 보유한 노루그룹의 한영재(67) 회장이 최근 장남 한원석(36) 노루홀딩스(000320) 전무에게 지분을 대량으로 넘기면서 승계 작업이 본격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장남 소유 회사가 한 회장의 지분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지분 승계가 이뤄졌는데, 지분을 인수할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그간 내부거래로 매출을 키워왔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이런 가운데 장녀 한경원(38) 노루서울디자인스튜디오(NSDS) 실장은 최근 거의 매일 노루홀딩스 주식을 사고 있어 승계 구도에 변화가 생기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노루그룹은 고(故) 한정대 창업주가 1945년에 세운 대한잉크에서 시작했다. 2세 한영재 회장이 1988년 사장으로 취임한 뒤 34년째 이끌고 있다. 지주사 노루홀딩스 아래로 핵심 계열사인 노루페인트(090350)를 비롯해 총 20개의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는 구조다. 한 회장은 노루홀딩스 회장직과 노루페인트와 노루코일코팅, 노루케미칼, 더기반, 노루로지넷 등 총 5개 계열사 회장직을 겸하고 있다.

그래픽=손민균

◇ 장남, 그룹 내 최다 겸직… 승계 준비해온 노루그룹

노루홀딩스의 지분 구조를 살펴 보면 7월 29일 기준, 한영재 회장이 30.15%를 가져 최대주주로 있고, 계열사 디아이티가 4.45%, 한원석 전무 3.70%, 한경원 실장 1.13%다. 이 밖의 친인척 한인성, 한봉주, 한명순, 한진수씨가 총 5.67%를 보유 중으로, 특수관계인 지분은 총 45.13%다.

이같은 지분 구조 때문에 업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한 전무가 한 회장을 이어 노루그룹을 물려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계열사 겸직 현황만 봐도 그렇다. 미국 센터너리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2014년 28세 나이로 노루로지넷 이사회에 첫 입성한 한 전무는 올해 3월 말 기준 국내 계열사 8곳에 임원으로 올라있다.

한 전무는 노루그룹이 미래 먹거리로 점찍은 농생명 계열 자회사 더기반과 더불어 노루알앤씨와 디아이티(DIT)의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노루페인트·노루코일코팅·두꺼비선생 상근 이사, 노루오토코팅·노루로지넷 비상근 이사도 겸하며 핵심 계열사 경영 전반에 관여하고 있다.

◇ 장남 소유 ‘알짜 계열사’ 키워 회장 지분 대량 인수

최근엔 한 회장이 정보기술(IT) 계열사 디아이티를 이용해 한 전무에게 노루홀딩스 지분을 넘기기도 했다. 현재 노루홀딩스의 2대 주주는 4.45%를 가진 디아이티다. 디아이티는 한 전무가 지분 97.7%를 가진 개인 회사다. 노루그룹의 실질적인 2대 주주는 한 전무인 셈이다. 디아이티 지분과 개인 지분을 합치면 한 전무의 지분율은 누나인 한 실장의 7배나 된다.

디아이티는 1994년 노루그룹 전산실에서 분리된 IT 회사다. 노루그룹 계열사를 비롯한 여러 기업의 전산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 86억원·영업이익 23억원을 냈다. 그룹 차원에서 보면 매출 기여도는 미미하지만, 영업이익률이 27%가 넘고 당기순이익도 43%에 달하는 ‘알짜’ 회사다.

디아이티가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데엔 노루그룹의 공이 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노루홀딩스는 지난해 재고 매입 명분으로 디아이티에 1억2000만원가량을 지급했고, 수수료 명분의 ‘기타 지출’도 48억7000만원에 달했다. 지난해 매출액 86억원 중에 50억원이 노루홀딩스에서 나왔다. 노루그룹은 대기업 집단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공정거래위원회의 내부거래 감시 대상이 아니다.

디아이티를 고수익 기업으로 키워낸 노루그룹은 이를 지분 승계의 도구로 사용했다. 한 회장은 지난 5월 17일 자신의 노루홀딩스 주식 69만주를 디아이티에게 시간 외 대량매매했다. 금액은 70억원가량으로 알려졌다. 덕분에 한 전무는 자기 자본을 들이지 않고 단숨에 노루홀딩스 지분 4.45%를 얻었다.

◇ 거의 매일 주식 사들이는 장녀… “지배력 확대 목적 아냐”

최근 한 전무가 8%대 지분을 확보하면서 장남 승계가 확실시되는 상황이었으나, 장녀 한 실장이 6월 초순부터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이면서 일각에서는 승계 판도가 흔들리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한 실장은 현재 노루페인트의 노루서울디자인스튜디오(NSDS)를 총괄하고 있다. 계열사 겸직은 하고 있지 않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그는 2016년 노루홀딩스 주주명부에 처음 이름을 올렸다. 5000주를 보유해 지분율 0.04%였다. 이후 지난해 8~10월 주식을 대량으로 매수해 지분을 0.04%에서 0.11%로 끌어올렸다.

그러다 지난 6월 10일 3000주 매수를 시작으로 7월 28일까지 거의 모든 거래일마다 주식을 취득했다. 7월 28일까지 적게는 300여주에서 많게는 1만주씩 꾸준히 주식을 사들여 총 13만8920주를 취득했다. 이 기간 노루홀딩스 주가는 9750원~1만1000원대로 주식 취득에 14억원가량이 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 실장 지분은 0.11%에서 1.13%로 10배 넘게 상승했다.

노루그룹은 지배력 확대 목적이 아닌 통상적인 자사주 취득이었다고 설명했다. 노루그룹 관계자는 “오너가(家) 일원으로서 최근 노루홀딩스 주가가 떨어지면서 매수한 것으로 보인다”며 “회사 내부에서는 장남 승계에 이견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오너 일가가 내부거래를 통해 디아이티를 키워 승계 도구로 이용했다는 지적에 대해선 “내부에서도 우려가 일부 나왔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