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가 경찰에 이스타항공의 허위회계 자료 제출 의혹에 대해 수사를 의뢰했다. 국토부는 이스타항공이 고의로 자본잠식을 숨기기 위해 허위 자료를 제출했다고 주장하지만, 이스타항공은 오해가 있으며 충분히 국토부에 해명했다고 반박했다. 크게 다섯 가지 사안을 두고 양측의 입장 차가 큰 상황인데, 공을 넘겨 받은 수사 기관에서 밝혀질 전망이다.
① 이스타항공은 고의로 허위 자료를 제출했나
국토부는 이스타항공이 대표이사 변경에 따라 작년 11월 국제항공운송사업 면허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제출한 회계 자료와 올해 5월 금융감독원에 공시된 작년도 연간 회계 자료가 다른 점을 발견했다.
이스타항공이 국토부에 제출한 자료에는 결손금이 1993억원으로 기재돼 있는데, 금감원에 공시된 자료에는 결손금이 4851억원으로 2857억원가량 더 많았다는 것이다. 이를 반영할 경우 자본총계는 마이너스(-) 402억원으로 완전자본잠식으로 전환하게 된다. 국토부는 이스타항공이 최신 자료가 아닌 2020년 5월 자료를 고의로 제출해 자본잠식을 숨겼다는 입장이다.
이스타항공은 2020년 5월 자료가 당시 국토부에 제출할 수 있었던 가장 정확한 최신 회계 자료였다고 주장한다. 2020년 경영난에 시달리던 이스타항공은 임대료는 물론 서버비조차 내지 못해 같은해 7월 회사의 ERP(자원관리) 회계시스템이 전면 폐쇄됐다. 회계 담당 직원들도 모두 회사를 그만두면서 정상적으로 회계 자료를 입력하거나 보관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나마 당시 인수를 추진했던 제주항공(089590)이 실사를 위해 회계법인을 통해 공식적으로 받은 자료가 있었는데, 이게 2020년 5월 자료라고 한다. 이스타항공은 이러한 사정을 사전에 국토부에 알렸다는 입장이다. 회계 시스템이 복구된 것은 올해 2월이다.
법원에서도 이러한 사정을 인정한 바 있다. 서울회생법원이 회계법인을 통해 2021년 2월부터 4월까지 이스타항공을 실사한 뒤 작성한 ‘조사보고서’에도 “ERP회계시스템 폐쇄로 인해 조사 기준일인 2021년 2월 4일의 재무제표와 동 부속명세서를 제시받지 못했다. 이에 회사가 제시한 2020년 5월 31일 기준 재무제표와 등을 기초로 회사의 자산과 부채를 조사했다”고 기재됐다.
② 결손금 항목만 2020년 5월로 기록한 이유는
국토부는 이스타항공이 2021년 11월에 제출한 자료에서 자본금, 자본잉여금, 자본총계는 2021년 11월 기준 수치이고, 이익잉여금은 2020년 5월 수치를 넣어 자본잠식이 없는 것처럼 조작했다고 봤다. 특히 이 과정에서 작성기준일을 표기하지 않고 제대로 된 설명도 없었다는 게 국토부의 주장이다.
이스타항공은 국토부가 보도자료를 통해 공개한 회계자료(사진) 양식은 국토부가 임의로 만든 양식이라는 입장이다. 당초 국토부는 전체적인 회계 자료가 아니라 ‘채권 변동 현황 내역’만 요구했다고 한다. 당시 성정의 인수 대금을 반영한 ‘자본금’과 회생 채권이 확정된 상태이기 때문에 추정이 가능했던 ‘자본잉여금’을 2021년 11월 기준으로 작성해 제출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후 국토부가 ‘이익잉여금’ 관련 자료 제출을 추가로 요구했고, 이익잉여금은 결산이 안 되면 추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2020년 5월 자료를 제출했다. 그러면서 이메일을 통해 2020년 5월 자료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설명했다는 게 이스타항공의 주장이다. 국토부가 공개한 회계 자료는, 수차례에 걸쳐 이스타항공이 제출한 자료를 국토부가 조합했다는 의미가 된다.
③ 이스타항공은 2021년에 작성한 조사보고서를 왜 제출하지 않았나
국토부는 이스타항공이 2020년 5월 당시 회계 자료만 있다고 주장한 데 대해 서울회생법원에서 선정한 회계법인이 2021년 4월에 작성한 ‘조사보고서’ 상의 회계 내용을 제출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회계 전문가들은 회생법원의 조사보고서는 기업을 청산한다는 전제로 작성하기 때문에 기업의 재무 건전성을 판단하는 자료로 사용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통상적인 기업의 이익잉여금은 기업이 앞으로도 영업을 이어갈 것이라는 가정(계속 기업 가정)을 바탕으로 도출된다. 예를 들면 이스타항공이 과거 1000만원에 사온 비행기(유형 자산)의 자산 가치는 감가상각을 거쳐 500만원으로 측정된다.
반면 청산 가치를 전제로 하는 조사보고서는 감가 상각에 필요한 비행기의 구매 시점이 중요하지 않다. 당장 이 비행기를 매각할 경우 얼마를 받을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자산 가치를 측정한다. 이럴 경우 자산 가치가 대폭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게 회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국내 대형 회계법인의 한 회계사는 “회생법원의 조사보고서는 일반 기업의 장부와 조사 목적뿐 아니라 방법과 기준이 다르다”며 “청산 가치로 이스타항공의 이익잉여금을 추산할 수 있다는 발상은 잘못됐다”고 말했다.
또 국토부는 2021년 4월에 이미 이 조사보고서를 이스타항공으로부터 제출받은 바 있다.
④ 항공 면허 발급 기준에 자본잠식도 해당되나
국토부는 항공사업법 시행령에 따라 항공사의 운항 개시일로부터 3년 동안 운영비 등을 충당할 수 있는 재무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데, 이스타항공처럼 완전 자본 잠식인 회사의 경우 은행이 기존 대출을 조속히 회수하려 하고 추가 대출을 거부하는 등 현금 융통이 곤란할 우려가 높다고 판단했다. 이는 곧 소비자 보호와 항공기 안전 투자에 필수인 운영자금 조달능력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스타항공은 당시 회생 절차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재무 악화에 따라 면허 기준에 미달하더라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항공사업법 제 28조에 따르면 법원의 회생 절차가 진행 중인 경우 항공사가 등록 기준에 미달해도 면허 취소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돼 있다는 것이다. 이는 회생 절차 중인 기업은 보유 채권을 대부분 변제받기 때문에 당시의 재무 건전성 여부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스타항공이 국토부에 변경 면허를 신청했던 작년 11월에는 아직 기업 회생 절차가 진행 중인 상태였다. 이스타항공의 회생 절차가 종결된 것은 올해 3월 22일이다.
⑤ 국토부 책임은 없나
국토부의 항공 면허 발급 절차가 부실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스타항공이 결손금 기준일을 고의로 숨겼더라도 국토부가 확인 절차 없이 회계 자료만 보고 변경 면허를 발급했다는 점에서 심사를 부실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국토부 직원들도 참고인으로 다 조사를 받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명명백백히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