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대북 억제력 강화를 위해 F-35A 스텔스 전투기 도입을 추진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역점 사업이었던 한국형 경항모 사업에 빨간불이 켜졌다. 경항모 사업이 순항하기 위해선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F-35B 전투기가 필수인데, F-35A부터 도입하면 예산 문제상 경항모 사업은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

19일 방위사업청에 따르면 고성능 스텔스 전투기를 국외구매로 확보하는 ‘F-X(차세대전투기) 2차 사업추진기본전략안’이 최근 방위사업추진위원회 심의를 통과했다. 구체적인 기종과 도입 대수는 확정되지 않았으나, 군의 요구사항을 충족하는 스텔스 전투기로 5세대 전투기인 F-35A 20대 도입이 유력하다.

수직이착륙형 전투기가 항모에 착륙하는 모습을 표현한 컴퓨터그래픽(CG) 장면. /해군 제공

방산업계는 F-35A 도입이 확정될 경우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온 한국형 경항모 사업이 잠정 중단될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해군은 올해 중 경항모 기본 설계를 추진하겠다는 방침인데, 함재기로 낙점된 F-35B의 도입 없이는 경항모 사업을 단독으로 추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모든 사업을 동시에 진행하기에는 정부의 예산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미국 록히드마틴사가 제작하는 F-35 전투기는 용도에 따라 크게 A, B, C 세 종류로 나뉜다. 공군용인 A형·해군용인 C형과 달리, 해병대용인 B형만 유일하게 수직 이착륙 기능을 탑재하고 있다. 한국형 경항모처럼 활주로가 짧고 캐터펄트(사출기)가 없는 경항모엔 사실상 F-35B만 함재기로 쓸 수 있다. 가격은 F-35B가 F-35A보다 30~40% 비싼 것으로 알려졌다.

군 전문가들은 F-35A 도입은 정권 교체와 함께 예견된 일이었다고 평가했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전문연구위원은 “이전 정부에서 함정 탑재용 전투기(F-35B) 도입 사업을 우선 추진하면서, 원래 60대를 도입하기로 한 F-35A가 40대까지만 도입이 확정되고 나머지 20대의 도입 계획은 미뤄졌었다”며 “1개 대대에 전투기 20대씩 총 3개 대대가 있어야 정상적으로 운영이 가능한 만큼, 현 정부에서 기존 계획을 예정대로 추진한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F-35A 도입으로 결국 경항모 사업이 백지화되거나 후순위로 밀릴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미 공군의 F-35A '라이트닝2' 스텔스 전투기. /주한미군사령부 제공

해군 항공모함 건조 연구 용역을 수행했던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도 F-35A 도입에 대해 “한정된 국가 자원을 고려할 때 경항모와 함재기(F-35B) 도입보다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할 최선의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북한의 지하 갱도를 무력화하기 위해선 벙커버스터(지하시설 파괴용 폭탄)를 탑재할 수 있는 전투기가 필수인데, F-35B는 내부 무장창이 작아 1000파운드 폭탄 2발만 장착할 수 있다. 이는 F-35A의 절반 수준으로 2000파운드급 벙커버스터를 탑재할 수 없다는 뜻이다. 여기에 현 안보 상황에 경항모가 필요한지도 의문이란 게 신 대표의 설명이다.

방위사업청은 F-X 2차 사업과 경항모 사업은 별개라는 입장이다. 현재 경항모 기본 설계 착수를 위한 준비 작업이 진행 중이고, 함재기에 대한 소요검증 작업도 이뤄지고 있어 사업이 중단된 것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방산업계 관계자는 “인수위원회 단계부터 이전 정부가 추진해온 경항모 사업을 이어가는 데 부담을 느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현 정부가 경항모의 기본 설계 사업은 추진할 수 있어도 실제 건조까지 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