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부터 이어진 고유가로 정유업계와 주유업계의 희비가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정유업계는 대표적인 수익성 지표인 정제마진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2개 분기 연속 역대급 실적을 달성할 것으로 보이지만, 주유업계는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폐업하는 곳이 늘고 있다.
15일 한국주유소협회에 따르면 올해 6월말 기준 전국 주유소 개수는 1만1042개로 집계됐다. 작년 12월 말 1만1186개였던 것과 비교하면 반년 만에 144개가 문을 닫았다. 작년에는 213개 주유소가 폐업했는데, 올해 들어서는 폐업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이대로면 연말까지 300개 가까운 주유소가 폐업할 것으로 전망된다.
폐업하는 주유소가 늘어나는 것은 고유가 영향이 크다. 주유업계 관계자는 “최근 유류세 인하 효과가 제대로 체감되지 않는다며 주유소가 이익을 취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지만, 주유소 업황은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며 “이전보다 기름값에 민감한 소비자가 늘어나다보니 10원이라도 저렴한 주유소로 고객이 몰리고, 이 때문에 주유소의 경쟁이 더 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주유업계에 따르면 전국 주유소의 평균 판매 마진율은 5~6% 수준이지만 카드 수수료와 인건비, 각종 세금 등을 떼면 실제 주유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의 영업이익률은 1%대 수준으로 추산된다.
주유업계의 ‘공공의 적’으로 꼽히는 알뜰주유소 역시 폐업을 앞당기는 원인으로 꼽힌다. 이전부터 주유업계는 알뜰주유소가 촉발한 과잉경쟁으로 일반 자영 주유소의 폐업이 늘어나고 있다며 지원 중단을 주장해왔다. 알뜰주유소는 한국석유공사와 농협중앙회가 입찰을 통해 저렴하게 구매한 기름을 공급받기 때문에 휘발유가 일반 주유소보다 리터(ℓ)당 30~40원 저렴하다. 주유업계 관계자는 “알뜰주유소는 기름을 공급받는 구조 자체가 달라 일반 주유소는 그 가격을 쫓아갈 수가 없다”며 “일반 주유소는 파리만 날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금리가 오르는 추세도 주유소 경영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주유소들은 정유사에서 기름을 공급할 때 모두 현금으로 구매한다. 주유소는 보통 2만ℓ, 5만ℓ짜리 저장탱크를 이용하는데, 이를 채우려면 휘발유 기준(2000원 기준)으로 각각 4000만원, 1억원이 필요하다. 주유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는 기름을 구매할 때 대부분 카드로 결제하는데, 카드사에서 현금을 정산받는 데 시간이 소요되다보니 대부분의 주유소 자영업자들은 대출을 받아 정유사에 대금을 결제한다”며 “금리 인상으로 이자 부담이 크게 늘어난 상황”이라고 말했다.
주유소에 기름을 공급하는 정유사는 지난 1분기에 이어 2분기에도 역대급 실적을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SK이노베이션(096770)은 올해 1분기에 분기 기준 사상 최대인 1조6491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2분기에도 1조원 중반대 영업이익이 예상된다. 에쓰오일(S-Oil(010950)) 역시 1분기 1조332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린 데 이어, 2분기에도 1조1283억원의 영업이익이 예상된다. 증권가는 정유사들이 2분기에 ‘깜짝 실적’을 거둘 것으로 보고 있다.
박한샘 SK증권 연구원은 “정유 제품은 원유 이상의 수급 강세가 예상되며, 재고도 적은 수준”이라며 “러시아에 대한 제재가 이어지고 하반기에도 실적이 좋을 전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