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환경규제가 강화되자 열기관에 의존한 대형 상선의 동력원이 풍력까지 확대되고 있다. 이에 돛(바람을 받아 배를 가게 하는 장비)이 새로운 소재와 형태로 돌아오고 있는 모습이다.
5일 조선·해운업계에 따르면, 싱가포르 해운사 버지벌크(Berge Bulk)는 21만DWT급 벌크선 버지올림푸스(Berge Olympus)호에 유럽계 바(BAR Technologies)·야라 마린(Yara Marine Technologies)의 풍력 추진용 돛 4기를 장착하기로 지난달 29일 결정했다.
앞서 지난 6월 21일에는 일본 미쓰비시상사가 소유하고 카길이 운용중인 8만DWT급 벌크선 픽시스오션(Pyxis Ocean)도 바와 야라의 풍력 추진용 돛 2기를 달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윈드윙스(WindWings)라는 제품명을 갖고 있는 해당 돛은 높이 50미터, 무게 100t(톤)의 금속 등을 소재로 한 구조물이다. 제조사들은 부착 전과 비교해 연료 사용량과 탄소 배출량을 30%까지 줄일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카길과 미쓰비시의 경우 내년 초, 버지벌크사는 내년 2분기를 각각 개조 완료 시점으로 잡고 있다.
바·야라의 윈드윙스가 픽시스오션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하면 카길은 자사가 운용 중인 선대 중 5~10척을 추가로 개조할 계획이다. 돛 형식 외에 선수에 부착하는 낙하산으로 풍력 추진 활용 실험을 하기도 했던 버지벌크 선대 내 80척도 추가 개조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해양환경규제가 강화되면서 풍력으로 대형 상선의 추진력을 보조해 연비를 향상시키는 기술은 전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연구중이다. 현재 개발중인 풍력 추진 시스템은 크게 윙 세일(Wing Sail) 형태와 로터 세일(Rotor Sail) 형태로 나뉜다. 윈드윙스 같은 유형인 윙 세일은 고전적인 사각돛의 형태에 가깝다. 로터 세일은 대형 원기둥형 구조물을 이용하지만, 이 구조물을 둘러싼 공기 흐름의 압력차에서 발생하는 힘(양력)을 이용한다는 점에서는 삼각돛의 원리와 같다.
지금까지는 설치가 상대적으로 쉬운 로터 세일 개발이 활발한 상태였다. 영국 아네모이 마린(anemoi marine Technologies)의 경우 2018년 6만4000DWT급 벌크선 아프로스(MV Afros)호에 로터 세일 4기를 설치하며 상용화에 성공했다. 이후 독일 해운사 올덴도르프(Oldendorff Carriers) 등 제휴사를 확보하며 2025년까지 50척에 이르는 선박이 로터 세일을 달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독일 에너콘(enercon)과 핀란드 노스파워(Norsepower)사 역시 로터 세일을 상용화해 사업을 전개 중이다.
국내 조선·해양업계도 이 같은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 팬오션(028670)은 국내 최초로 지난해 5월 브라질 발레(Vale)사와 협업해 광탄선 시 저우샨(SEA ZHOUSHAN)호에 높이 24m, 지름 4m 규모의 노스파워사 로터 세일 5기를 설치했다. 팬오션은 로터 세일을 통해 6~8%의 연료 절감 및 탄소 배출 감축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한국조선해양,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010140) 등 국내 대형 조선사들도 풍력 보조 추진 장치를 추가한 선박 개념 설계 기본승인(AIP)을 해외 선급으로부터 확보한 상태다.
일각에서는 풍력 추진 보조 기술이 LNG, 메탄올 등 대체 연료 도입에 비해 수요가 적어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기존 선박을 개조하기에는 해당 구조물의 크기와 중량이 만만치 않다는 난제도 있다. 로터 세일의 경우 10%가 되지 않는 연료 저감 효과를 개선해야 하고, 윙 세일은 대형 구조물이 전방 시야를 가리는 문제도 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