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 등에 따른 경기침체로 스타트업 투자가 얼어붙고 있다. 매달 1조원 이상 규모를 이어갈 것으로 기대됐던 시리즈 투자가 흔들리고 있고, 인수합병(M&A)과 기업공개(IPO)도 지난해에 비해 크게 줄었다.
3일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 따르면 6월 스타트업 신규 투자는 총 164건으로, 투자 금액은 1조8555억원으로 조사됐다. 전 달 대비 투자 금액은 늘었지만 투자 건수는 줄었다. 상반기 최대 규모였던 투자금도 전체 금액의 42%인 7800억원가량이 한 기업에 쏠린 것이라 이를 제외하면 1조원을 겨우 넘겼다.
7800억원의 투자를 유치한 기업은 가상자산 핀테크 전문 스타트업 ‘델리오’다. 델리오가 유치한 대규모 투자는 일반적인 시리즈 투자와는 성격이 다르다. 글로벌 가상자산 전문 투자기관인 쓰리애로우즈캐피탈과 블록파이로부터 6억달러(약 7790억원) 규모의 비트코인, 이더리움, 테더를 공급받는 계약을 맺은 것인데, 델리오는 자사 서비스에 이 가상자산을 활용할 수 있다. 일반적인 투자 개념보다는 협업을 위한 공급계약에 가깝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집계한 올 상반기 스타트업 투자 규모는 ▲1월 136건 1조2552억원 ▲2월 110건 1조1347억원 ▲3월 114건 7625억원 ▲4월 153건 1조2489억원 ▲5월 171건 7577억원이다. 지난해 스타트업 연간 투자액이 12조원에 육박하면서 사상 최대 기록을 세운 뒤, ‘1조원 시대’가 열렸다며 매달 1조원 이상 투자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기대와 달리 투자가 주춤하고 있는 모습이다. 시장 조사기관 CB인사이츠는 올해 1분기 글로벌 벤처투자가 직전 분기 대비 20.7% 감소했다면서 2분기에는 이보다 19% 더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스타트업 엑시트(exit)도 얼어붙었다. 스타트업 엑시트는 투자받은 스타트업이 M&A나 기업공개(IPO) 등을 통해 투자자들에게 투자금을 회수시켜주는 과정을 말한다. 창업→엑시트→재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위해 필요하다.
스타트업 투자 정보 플랫폼 ‘더브이씨(THE VC)’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스타트업 M&A는 총 82건으로, 금액 미공개 건을 제외하면 총 1조1528억원이 투입됐다. 지난해 상반기(56건)보다 건수는 늘었지만 금액은 크게 줄었다. 지난해 상반기 M&A 투자금액은 총 5조680억원으로 집계됐다. 하이퍼커넥트가 미국 매치그룹에 1조9000억원대에 인수된 데 이어 수천억원대 M&A도 활발했다.
증시 상장을 통해 투자금을 확보하는 IPO도 벽이 높다. IPO 직전 투자 단계인 프리IPO의 경우 지난해 상반기에는 22개 기업이 1조616억원을 확보했지만 올해 들어서는 20개 기업이 7304억원을 받는 데 그쳤다. IPO 시장도 지난해 상반기엔 쿠팡, 제주맥주(276730) 등 5개 기업이 상장에 성공해 5조2000억원대 자금을 확보했지만, 올해 상반기엔 현대차(005380)그룹 사내 스타트업 오토앤(353590)만 상장했다.
투자 위축 분위기 속에서 IPO를 준비하던 스타트업들은 속속 일정을 미루고 있다. 당초 지난 5월에 상장할 예정이었지만 내년 초로 일정을 미뤘다는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상장하는 것이 더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침체기 땐 목표한 기업가치를 받기 어려울 뿐더러 상장 직후 반응이 좋지 않을 경우 받는 타격이 더 크다”며 “최근엔 IPO를 예정대로 강행하겠다는 기업이 극소수”라고 말했다.
다만 투자 침체가 오히려 그간의 거품을 꺼뜨리고 스타트업 생태계의 내실을 다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고 이 관계자는 말했다. 그는 “그동안엔 시장에 투자금이 너무 풀리다 보니 옥석이 가려지지 않고 너도나도 수백억원대 투자를 받기도 했다”며 “사업에 자신이 있다면 거품이 꺼진 뒤 탄탄해진 시장에서 투자를 받아 사업하는 것이 더 유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