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 이어진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사태는 ‘혼술(혼자 마시는 술)’과 ‘홈술(집에서 마시는 술)’ 문화를 만들어 냈다. 유흥 시장이 타격을 입으면서, 자연스레 소주와 기성 맥주 판매가 줄었고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를 중심으로 다양한 취향에 따른 와인과 수제맥주, 위스키, 프리미엄 소주, 논알코올(비알코올) 맥주 등 수요가 늘었다. 그리고 유흥 시장 대신 편의점과 대형마트가 주요 주류 구매 창구로 급부상했다. 취향이 다양해지고 다양한 술 구매가 가능하게 접근성이 좋아진 것도 ‘다양한 술 시대’를 열었다. ‘이코노미조선’은 다양한 술 소비 문화를 관찰하고 앞으로의 술 산업을 내다보는 ‘술(酒) 소비 개성시대’를 기획했다.[편집자주]
그야말로 ‘술의 개성시대’가 열렸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을 계기로 홈 파티 문화가 자리 잡고 소비자들은 일종의 놀이처럼 개성에 따라 술을 선택하고 마신다. 공급자 측면에선 다양해진 소비자들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고급술로 인식되던 와인은 중저가 수입 와인이 늘어나면서 소비자층 확대를 노렸고, ‘아저씨의 술’로 인식되던 전통주는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를 중심으로 소셜미디어(SNS)에 사진을 찍어 올리기 좋은 ‘젊은 술’로 바뀌고 있다.
위스키 부문에서는 자신의 취향에 맞게 직접 술을 섞고 만들어 즐기는 ‘믹솔로지(Mixology)’ 트렌드와 집에서 직접 술을 제조해 마시는 홈텐딩(홈+바텐딩) 현상도 눈에 띈다. 맥주는 쓴맛을 싫어하는 소비자들을 겨냥해 IPA 맥주, 과일 맥주, 논알코올 맥주 등 신제품이 쏟아지고 있고 소량 생산하는 수제맥주(크래프트 맥주)는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다.
술의 소비 방식이 이전보다 다양해진 현실을 반영하듯, 조선비즈 주류대상 출품 주종도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431종에서 2022년 812종으로 88% 급증했다. 세부 항목별로 살펴보면 전통주는 56종에서 160종으로 3배 가까이 늘었고, 맥주 역시 79종에서 126종으로 급증했다. 와인의 경우는 230종에서 434개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올해 전문 평가단의 사랑을 받은 ‘베스트 오브 2022 수상작’ 중 눈에 띄는 제품은 무엇일까. 일반 맥주 부문에선 벨기에 스타일 밀맥주이자 부드러운 풍미와 오렌지, 레몬, 파인애플 향이 고수 향과 어우러지는 산뜻한 맛의 맥주인 ‘파타고니아 바이세(오비맥주)’가 수상했다. 크래프트 맥주 부문에선 아메리칸 스타일 스타우트로, 다크 초콜릿과 커피의 로스팅 향이 조화로운 ‘대포항 스타우트(속초맥주)’가 상을 받았다. 한국와인 부문에선 문경산 오미자를 원료로 만든 스파클링와인인 ‘오미로제 연(농업회사법인 제이엘)’과 청포도와 풋사과 향과 씁쓸한 허브가 조화로운 ‘꽃(264청포도와인)’이 꼽혔다. 이 밖에 1933년 탄생한 태국 최초의 프리미엄 수입 맥주인 ‘싱하(하이트진로)’, 로마의 라치오 지역 화산암 지대의 풍부한 미네랄을 머금고 있는 ‘로마 로쏘(베스트바이앤베버리지)’도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스피릿 부문에선 고품질의 신선한 아이리시 유제 크림과 위스키, 초콜릿 풍미가 섞인 완벽한 레시피의 제품인 ‘베일리스 오리지날(디아지오코리아)’이 호평을 받았다.
그렇다면 현재 주류 소비 트렌드를 전문가 심사단은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 ‘이코노미조선’은 6월 중순 조선비즈 주류대상 심사단인 권경민 한국지식문화원 대표(맥주 부문), 김상미 와인21닷컴 칼럼니스트(와인 부문), 이대형 경기도농업기술원 박사(전통주 부문), 유성운 한국양조증류아카데미 사무국장(위스키 부문)을 서면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최근 각 분야 주류 소비 트렌드는.
권경민 “코로나19를 계기로 혼술, 홈술 문화가 더 빠르고 깊게 자리 잡았다. 맥주 시장에서는 본연의 맛과 향에 중점을 둔 고급 맥주를 선호하는 패턴이 보인다. 기존에는 회식이나 단체 모임의 술자리에서 한식 스타일의 안주, 매운 음식, 고기 요리와 기본 라거를 매칭하는 게 전형적이었지만 이제는 집에서 다양한 맥주를 조금씩 맛보거나 고급 맥주를 소비하는 패턴도 늘었다.”
김상미 “중저가 와인의 출품이 많아졌다는 특징이 있다. 그만큼 와인 소비층이 애호가로부터 일반 소비자로 확대됐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출품작 중에 신규 와인이 많아지는 것도 다양한 와인을 즐기고자 하는 소비자의 욕구에 맞춰 새로운 와인들이 많이 수입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새로 수입된 와인 중 수상작도 다수 눈에 띈다. 와인의 지명도보다는 품질을 따질 수 있을 정도로 우리 입맛과 시장이 성숙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대형 “최근 몇 년간의 출품작들을 보면 지역 농산물을 써서 생산하는 일명 ‘지역특산주’들이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또 쌀과 누룩만을 이용해서 단맛을 내는 방식의 전통주들이 많아지고 있고 소비자들의 반응도 좋다. 전통주가 과거에는 고도주의 술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저도주(6% 내외)의 술도 많이 찾고 있다.”
유성운 “홈 파티 문화로 인해서 기존에 많이 마시던 ‘소주+맥주’ 조합보다 더욱 다양한 주종을 함께 먹는 분위기가 생겼다. 기존에는 전통적인 위스키 브랜드 위주로 신제품이 출품됐는데, 현재는 기존의 블렌디드 스카치위스키를 비롯해 싱글몰트 스카치위스키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생산된 보드카, 진도 새롭게 출품되고 있다.”
수입 주류 비중도 크게 늘고 있다.
김상미 “지난 2년간 코로나19가 와인 시장을 크게 성장시켰다. 소비자들이 집에서 술을 즐기기 위해 와인을 더 많이 선택한 결과, 수입 물량도 크게 늘었고, 이제는 와인이 더 이상 특별한 술로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시장의 저변 확대가 이루어졌다. 한편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고가의 와인을 더 찾는 경향이 생겼다. 여행이나 문화 활동에 대한 지출이 제한되면서 이왕이면 더 좋은 와인을 즐기려는 욕구가 커진 것이다. 이런 트렌드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19가 완전히 종식되고 나면 시장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지만, 와인 소비가 줄어들 것 같지는 않다.”
권경민 “다양한 맛, 풍부한 향, 독특함, 색다른 분위기, 고급스러운 느낌에 대한 호기심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한 결과다. 취하기 위해서 마시던 음주 문화에서 개성을 찾고 맛을 즐기는 음주 문화로 바뀐 것도 한몫했다. 다만 특징적인 부분이 있다면, 맥주 시장에서는 ‘노(NO) 재팬’의 영향으로 일본 수입 맥주의 실적은 부진했다. 또 편의점에서 수입 맥주의 물가 상승으로 ‘1만원에 4캔 시대’도 저물면서 변수가 있었다. 하지만 수제맥주는 가파른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유성운 “기존에 유행하던 ‘블렌디드 스카치위스키’ 외에도 싱글몰트 스카치위스키 등 다양하다. 특이한 점은 국내에서 생산된 보드카, 진에 대한 수요도 있고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다.”
최근 주목받는 주류의 특징은 무엇인가.
이대형 “과거에 획일화됐던 주류 시장은 조금씩 다양성을 추구하는 입맛과 새로운 술에 대한 젊은 층의 관심이 결합되면서 다변화되고 있다. 특히, 전통주 업계에 젊은 양조인들이 들어오면서 과거와 다른 형태의 술들이 만들어지고, 라벨도 신선해졌다. MZ 세대들을 포함한 젊은 소비자들은 젊은 양조인들이 만든 새로운 전통주를 마시면서, 전통주가 ‘아저씨들이 마시던 술’에서 젊은 사람들이 마시는 감각적인 술로 변하고 있다. 과거 전통주들은 가격이 비싸고 도수가 높아서 쉽게 마시기가 어려웠다면, 최근 나오는 전통주들은 가격도 합리적이고 도수도 낮아졌으며 무엇보다 구매 방법이 쉽다. 온라인 또는 보틀숍 등을 통해서 내가 필요할 때 원하는 전통주를 살 수 있게 되면서 소비도 늘었다.”
김상미 “건강한 와인을 마시고 싶어 하는 소비자 중 내추럴 와인을 선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맛의 보정 없이 순수하게 포도로만 만들기 때문에 일반 와인과는 맛이 조금 다른데, 오히려 그런 방식을 선호하는 소비자가 많다. 다양한 맛을 원하는 소비자의 욕구가 이 시장을 성장시킨 동력인 것이다.”
유성운 “최근 들어 20대 중심의 MZ 세대를 공략한 하이볼용 위스키들이 주목받고 있다. 마트에서 700mL 한 병에 1만원대의 저렴한 가격으로 출시돼 젊은 소비자들 입장에서도 부담 없이 선택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다만 이 제품의 특징은 숙성 기간이 길지 않아 가벼운 풍미를 지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담 없는 가격이라 누구나 접근하기 쉽다.”
권경민 “한때는 맥아 함량이 맥주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 됐지만, 이제는 맥주 풍미에서 맥아의 캐릭터보다 홉의 캐릭터가 더 중시되고 있다. 단순한 쓴맛을 싫어하는 소비자들로부터 IPA 맥주, 과일 맥주, 논알코올 맥주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젊은 MZ 세대의 주류 소비 특징은 무엇인가.
권경민 “맥주의 맛과 향뿐만 아니라 맥주 이름, 감각적인 라벨 디자인, 비하인드 스토리 등 외적인 요소가 중요해졌다.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는 레트로 감성이 제품 선택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김상미 “대학에서도 와인을 가르치고 있는데, 학생들의 경우 진하고 묵직한 레드 와인보다 가볍고 상큼한 화이트 와인과 스파클링 와인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와인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 많은 세대인 만큼 쉽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와인을 선택한 결과다. 와인과 음식의 궁합도 중요하다. 가급적이면 치킨, 떡볶이 등 MZ 세대가 주로 먹는 음식과의 페어링 정보를 소셜미디어에 인증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이대형 “MZ 세대에게 전통주는 더 이상 올드한 느낌보다는 오히려 유행을 선도하고 개성 있는 술로 인식이 되고 있다. 색다른 전통주를 마셔본 MZ 세대 사이에서 소셜미디어에 인증하는 분위기가 생기는 것이다. 공급자 측면에서도 리미티드 에디션(한정판)을 만들기도 하고 기존에 사용하지 않았던 독특한 재료를 사용한 전통주를 선보이고 있다. 쌀과 누룩을 이용한 순곡주 형태의 단맛을 내는 술이 있는가 하면, 최근에는 역으로 쌀과 누룩 대신 노간주나무 열매나 건포도, 샤인머스캣 등이 들어간 이색적인 막걸리들을 찾는 수요도 있다.
MZ 세대를 공략하기 위한 또 다른 변화도 있다. 과거 전통주의 라벨은 매우 올드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유명 화가의 그림을 라벨에 사용하거나 또는 재미있는 그림을 직접 그리기도 하고 자신의 어릴 적 사진을 사용하는 등 라벨 자체가 엄청 재미있다. 분위기나 외관도 제품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젊은층에 접근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유성운 “최근 핫한 박재범의 ‘원소주’만 보더라도 MZ 세대는 술맛보다는 디자인이라든지, 술이 탄생하기 전까지의 스토리텔링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공감되는 스토리와 맛이라면 조용한 뒷골목에 자리 잡은 작은 술집에서 판매하기 딱 좋은 아이템이다.”
주류대상 수상을 인증한 마케팅도 늘어나고 있다.
김상미 “와인이 다른 술에 비해 종류가 무척 다양하고 레이블 읽는 것도 쉽지 않다. 때문에 수상 경력이 소비자의 선택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올해 초 일본 와인 숍 체인인 에노테카가 영국 와인 잡지인 디캔터 어워드 수상 와인들을 프로모션한 경우도 비슷하다.”
이대형 “과거 우리나라 술에 상을 주는 것은 정부의 ‘우리 술 품평회’ 입상작뿐이었다. 마트 등에서 관련 마케팅을 했지만, 소비자들이 크게 인식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주류대상이 해를 거듭하면서 수상작에 대한 노출이 지속되고 관심도 생기기 시작했다. 술은 기호식품이어서 마셔보지 않고서는 선택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입상작은 소비자의 입장에서 술을 선택하는 기준을 제시했다고 본다.”
유성운 “주류 숍에 들어가는 순간 최소 300가지의 주류를 보게 되고 그중에 평균적으로 30가지를 살피게 되는데, 이 중 수상 레이블이 붙어있는 주류를 선택할 확률이 30% 이상 된다. 유명한 국제증류주 심사대회 중 ‘스피릿셀렉션’에서 골든 메달을 받은 업체는 무려 6년 뒤에도 자랑스럽게 라벨을 붙이는 경우가 있다.”
권경민 “결국 맥주의 본질은 맛, 향, 품질이다. 주류대상 수상을 인증하는 것은 단지 이슈 마케팅이 아니라 맥주 전문가들에게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품질을 인정받은 맥주라는 증거다. 권위 있는 대회, 공인된 전문가들의 선택을 받은 맥주라는 것은 품질을 중시하는 소비자를 향한 ‘정공법’이 될 수 있다. 동시에 유통 채널을 확보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도 활용된다. 중소 브루어리의 신제품 맥주의 경우, 다양한 유통 채널을 확보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는데, 주류대상 수상 인증을 통해 맥주 품질에 대한 공인된 검증과 마케팅 포인트를 부각할 수 있다.”
전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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