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의 원료로 쓰이는 펄프 가격이 또다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제지산업에서 펄프값 인상은 비용 증가와 영업이익 하락을 유발하는 악재로 여겨지지만, 우려와 달리 2분기를 비롯한 하반기 실적은 지난해보다 크게 늘 것으로 전망된다.

30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이달 미국 남부산혼합활엽수펄프(SBHK)의 1톤(t)당 가격은 970달러로 지난달에 이어 또다시 역대 최고를 찍었다. 펄프값은 지난해 같은 기간 925달러로 역대 최고를 기록한 뒤 다섯 달 만에 675달러로 24% 급락했다. 이후 올 1월부터 이달까지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6개월 동안에만 44%가 올랐다.

그래픽=이은현

펄프값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탓에 한솔과 무림 등 국내 제지기업들은 올 상반기 국내 인쇄용지 판매가를 두 차례 올렸다. 수출용 제품들도 수차례에 걸쳐 가격을 인상했다. 생산단가의 절반 이상을 펄프값이 차지하고 있고, 부재료인 옥수수와 라텍스 등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영향으로 가격이 오른데다 해상운임도 불안정하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2분기를 비롯한 하반기 실적은 예년보다 좋을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064850)에 따르면 증권사들이 예상한 한솔제지(213500)의 2분기 매출액 전망치는 5264억원으로 전년 동기(4344억원) 대비 20% 많았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69억원으로 15%가량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연간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2조1882억원, 1122억원으로 지난해보다 각각 19%, 85% 늘 것으로 예상된다.

무림P&P(009580)의 2분기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28% 늘어난 2070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영업이익은 11.5% 줄 것으로 보이는데, 지난해 같은 기간 10%대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한 기저효과를 감안하면 양호한 수준으로 평가된다. 연간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7580억원, 56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24%, 90%가량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그래픽=이은현

제지업계는 상반기에 제품 판매가격 인상 효과를 톡톡히 봤다. 한솔과 무림은 국내 인쇄용지 가격을 올해 1월 7% 올린 데 이어 5월에도 15% 올렸다. 수출용 제품에 대해서도 지종별로 5~18% 판매가격을 올렸다. 특히 한솔의 경우 판가 인상 영향으로 특수지와 인쇄용지 부문은 흑자 전환에 성공했을 것으로 증권가는 분석하고 있다.

산업용지 중심의 수익구조도 펄프값 인상 타격을 줄이는 데 한몫했다. 펄프값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지종은 인쇄용지다. 산업용지나 특수지와 다르게 펄프만을 주원료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인쇄용지 수익 비중이 높을수록 펄프값 등락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국내 제지기업들은 인쇄용지 생산을 줄여가고 있는 상황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를 계기로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인쇄용지 시장 규모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인쇄용지의 연간 생산 규모는 2014년까지만 해도 300만톤(t) 이상을 유지하다 2019년 260만t, 지난해 240만t으로 계속 감소하고 있다. 여기에다 여름철은 대표적인 인쇄용지 비수기로 꼽힌다.

제지업계 관계자는 "펄프값이 오르면 인쇄용지 부문의 영업이익 악화는 자명하지만, 여러 외부 요인 때문에 인쇄용지 생산 자체가 줄고 있어 이 영향도 덜 받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무림P&P(009580)의 경우 업계에서 유일하게 펄프 생산도 같이 하고 있어 펄프값 상승이 호재로 작용하기도 한다. 무림P&P는 자체 생산한 펄프 가운데 절반가량은 국내 다른 제지기업에 판매하고 있어, 펄프 수입가격이 오를수록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된다.

유일한 중대 변수는 해상운임이지만 이 역시도 이미 고점을 지났다는 것이 업계 관측이다. 해운업계에 따르면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이달 24일 기준 4216.13으로 최근 2주 연속 하락했다. 연초엔 역대 최고치인 5109.6까지 올랐으나 지난달 중순까지 17주 연속 하락했다. 이후 소폭 오르다 다시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제지업계 관계자는 "펄프값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만큼 인쇄용지 생산에는 당분간 애로사항이 클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업계가 인쇄용지보다는 산업용지 비중을 키워가고 있기 때문에 하반기로 갈수록 실적이 좋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