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015760)공사가 발행하는 회사채(한전채) 금리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인 연 4.5% 수준으로 치솟았다. 한국전력의 신용등급은 초우량에 해당하는 AAA인데, 이와 비슷한 등급의 회사채는 연 4% 초반대 금리다. 올해 20조원에 달하는 적자가 예상되는 한전이 자금 조달을 위해 한전채 발행을 대폭 늘리면서 신용등급 대비 높은 금리를 감수하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한전채의 높은 금리가 자금조달 시장 전체를 왜곡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6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한전은 이달 1일부터 23일까지 1조1900억원어치의 한전채를 발행했다. 이달 초 한전채 금리는 연 3% 중후반을 오갔으나 지난 17일 발행한 5년물은 연 4.43%, 22일 발행한 5년물은 연 4.48%를 기록했다. 한전채 금리가 연 4.5%에 육박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계속됐던 2011년 이후 11년 만이다. 이달 2일 발행한 5년물 금리는 3.90%였는데, 20일 사이 0.58%포인트(P) 상승한 것이다.

한전채 2년물 금리는 이달 2일 연 3.4%였으나 22일 연 4.1%로 0.7%P 올랐다. 세계 경기침체 우려로 투자자들이 단기물을 선호하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한전채 2년물 금리가 대폭 상승했다. 같은 기간 3년물 금리는 연 3.9%에서 연 4.3%로 0.4%P 올랐다. 지난 1월 4일 발행된 3년물, 5년물 한전채 발행금리가 각각 연 2.33%, 연 2.53%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5개월만에 2%P 가량 금리가 오른 것이다. 지난 15일 미국 연방준비위원회가 28년 만에 처음으로 자이언트 스텝(금리를 한 번에 0.75%P 인상)을 밟으면서 시장 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영향이 있지만, 한전채는 다른 대기업 회사채보다 높은 수준이다.

한국전력의 전라남도 나주 본사 전경.

LG유플러스(032640)는 신용등급이 한전보다 두단계 낮은 AA0지만, 지난 22일 5년물 회사채를 연 4.38% 금리에 발행했다. 한전과 같은 AAA등급인 KT(030200)는 지난 21일 3년물을 연 4.098%에, 5년물을 연 4.123%의 금리로 발행했다. 한전이 회사채 발행을 급격하게 늘리면서 매력이 떨어지다 보니 'AA'나 'AA-' 회사채보다 금리를 높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올 들어 현재까지 한전채 발행 규모는 약 13조원으로 지난해 연간 발행 규모(10조원)를 이미 넘어섰다.

한전이 고금리 한전채를 대량으로 발행하면서 다른 회사채나 금융채 금리까지 끌어올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전채보다 금리가 낮은 대기업 회사채는 수요예측에서 미달돼 발행에 실패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달 들어 공모시장에서 회사채 발행에 성공한 기업은 KT와 LG유플러스가 유일하다.

한전채가 은행 대출 금리에 영향을 준다는 분석도 있다. 최근 회사채 투자 수요가 한전채로 몰리다보니 은행 대출 금리의 기준이 되는 금융채 금리가 덩달아 치솟고 있다는 것이다. 은행채 5년물 금리는 올해 초 연 2.239%에서 지난 23일 연 4.0685%로 2배 가까이 올랐다. 은행채 5년물은 혼합형(5년 고정 후 변동금리로 전환) 주택담보대출 금리의 기준이 된다.

IB업계 관계자는 "은행들이 서둘러 자금을 조달하려 최근 은행채 발행을 대폭 늘린 이유도 있지만, 한전채 금리가 오르면서 전체 회사채 금리가 올라가는 것은 사실"이라며 "연초부터 기업과 금융사, 공기업에 투자될 자금을 한전이 모두 흡수하고 있다는 지적이 채권 시장에서 꾸준히 제기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