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찾은 충북 충주시 인등산은 SK그룹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출발점으로 꼽힌다. 고(故)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은 1970년대 무분별한 벌목으로 민둥산이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직접 667m 높이의 인등산에 가래나무와 자작나무, 흑호두나무 등 고급 원목 자재로 쓰이는 활엽수 수백만그루를 촘촘히 심었다. 그 결과 민둥산이었던 이 곳은 이제 울창한 숲으로 바뀌었다.

SK그룹이 ESG 경영 발원지인 인등산에 넷제로(탄소중립) 경영 의지를 담은 디지털 전시관 ‘그린 포레스트 파빌리온’을 열었다고 16일 밝혔다. 앞서 SK그룹은 2030년 기준 전 세계 탄소감축 목표량인 210억톤(t)의 1%인 2억t을 SK그룹이 책임지고 줄이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SK그룹은 이번에 개관한 전시관에 그 구체적 실행방안을 공개했다.

SK그룹은 친환경 기술 생태계를 구축, 탄소를 감축한다는 계획이다. 먼저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와 에너지저장시스템(ESS)으로 친환경 에너지 생태계를 구축해 2030년까지 3730만t의 탄소를 감축하기로 했다. 또 저전력 반도체 등으로 인공지능(AI)과 반도체 생태계를 조성해 1650만t의 탄소를 줄이고, 차세대 배터리와 플라스틱을 재활용해 기름을 뽑아내는 도시유전사업 등으로 각각 750만t, 650만t의 탄소를 줄이기로 했다.

SK그룹의 '그린 포레스트 파빌리온'에서 모바일 도슨트로 키오스크의 특정 아이콘을 촬영한 모습. SK가 구축한 친환경 기술 생태계와 탄소절감 효과를 증강현실로 볼 수 있다./이윤정 기자

직접 찾은 전시관은 인등산과 자작나무 숲처럼 내부가 꾸며져 있었다. 전시관 중앙에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뜻하는 ‘생명의 나무’가 자리잡고 있었고, 나무 주변에는 넷제로 달성 방법론이 담긴 키오스크(무인정보단말기)가 각각 배치돼 있었다. 전시관이 제공하는 스마트폰으로 벽면의 각 아이콘을 촬영하면 SK그룹과 협업사들이 각 기술 생태계를 구축해 줄일 수 있는 탄소의 양이 증강현실로 나타난다.

SK그룹이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이 나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은 최종현 선대회장의 유훈 때문이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1972년 서해개발주식회사(현 SK임업)을 설립하고 최초로 기업형 조림사업에 착수했다. 그는 인등산을 비롯해 천안 광덕산, 영동 시항산 등 총 4500헥타르(ha)의 황무지를 사들여 400만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이는 여의도(290ha)의 약 16배에 달하는 면적이다. 그는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 나무를 심는다”며 조림 사업용 임지 확보에 적극 나섰다.

이렇게 심은 나무를 키워 벌채해 올린 수익은 현재 EBS에서 방송되는 장학퀴즈와 한국고등교육재단의 지원비로 쓰였다. 이 재단은 최종현 선대회장이 직접 사재를 출연해 설립한 곳이다. SK그룹 관계자는 “조림으로 환경을 보전하고 우수인재를 양성해 사회에 기여했다는 측면에서 SK ESG 경영의 효시로 간주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충주 조림단지를 포함한 300만그루 규모의 산림은 차량 1만5400대의 탄소를 흡수하고 있다.

SK그룹이 충주 인등산 SK수펙스센터에 개관한 그린 포레스트 파빌리온 내부에 지속가능한 성장을 상징하는 생명의 나무가 서 있다. /SK제공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선대회장의 조림사업을 진화·발전시키고 있다. 2012년 SK건설(현 SK에코플랜트) 산하에 있던 SK임업을 지주회사인 SK(034730)㈜에 편입시킨 뒤, 탄소배출권을 확보하고 해외에서 조림사업을 시행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바꿨다. 2012년 SK는 강원 고성군의 축구장 70배 크기 황폐지에 자작나무 등 25만그루를 심어 조림 청정개발체제(CDM) 사업을 시작했다. CDM은 조림사업으로 복구된 숲이 흡수한 온실가스를 측정, 탄소배출권을 인정받는 사업이다. SK는 2013년 유엔기후변화협약의 최종 인가를 받아 국내 최초로 탄소배출권을 확보한 기업이 되기도 했다.

SK그룹은 현재 운영중인 탄소중립 산림협력 사업 프로젝트로 향후 30년간 매년 4만3000t의 탄소를 흡수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탄소배출권을 거래하는 플랫폼을 구축해 환경보전과 부가가치 창출을 동시에 추구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이 외에도 우즈베키스탄 나보이 지역 조림사업과 튀니지 코르크 참나무숲 복원사업, 베트남 꽝찌성 농촌공동체 개발사업 등 황폐화된 산림을 복구하고 사막화 방지 작업을 진행 중이다.

SK그룹 관계자는 “기업이익은 처음부터 사회의 것이라는 시각으로 나무와 인재를 키우는 일에 매진했던 최종현 선대회장의 경영철학이 오늘날 SK의 ESG 경영을 비옥하게 만드는 토양이 됐다”며 “숲을 소재로 글로벌 무대에서 더 많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