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이 7일 유럽 출장길에 올랐다. 11박 12일동안 유럽 각지에서 주요 거래처 관계자를 만나고, 삼성전자 경영진·해외 법인장들과 현지 사업을 점검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부회장이 출국한 이날은 이 회장의 부친 고(故) 이건희 회장이 29년 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신경영 선언을 한 날이기도 하다.
이날 오전 11시 45분쯤 김포공항에 도착한 이 부회장은 전세기편을 이용해 유럽으로 출국했다. 이번 출장에서 이 부회장은 네덜란드와 독일, 프랑스 등 3개국을 방문할 예정으로 전해졌다. 출장 기간은 이날부터 18일까지다. 취재진이 구체적 출장 일정과 인수합병(M&A) 계획 등을 물었지만 별다른 답을 내놓지 않았다. 최윤호 삼성SDI(006400) 사장도 이 부회장과 같은 비행기를 탔지만, 이 부회장의 일정 전체에 동행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있는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업체 ASML 본사를 찾아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수급 문제를 논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ASML은 반도체 미세공정에 필수적인 EUV 노광장비를 독점 생산하는 글로벌 업체다.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에서 후발 주자인 삼성전자가 1위인 대만의 TSMC를 따라잡으려면 EUV 장비 확보가 우선 과제로 꼽힌다. 이 부회장은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와의 회동도 조율 중으로 알려졌다.
재계는 이 부회장이 출장을 떠나는 날로 부친의 신경영 선언이 나온 날을 선택한 데 대해 주목하고 있다. 이 회장은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켐핀스키 호텔에서 삼성 임직원 200여 명을 모아놓고 "바꾸려면 철저히 다 바꿔야 한다. 극단적으로 말해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며 대대적 혁신을 요구했다. 이 부회장은 이번에 프랑스에서 전략회의를 갖고 삼성의 미래 비전을 논의할 계획으로 전해졌다.
이 부회장의 이번 출장에서 삼성전자의 인수합병(M&A) 소식이 들려올지도 관심사다. 삼성의 유력 M&A 대상으로 꼽혀온 차량용 반도체 기업 NXP(네덜란드), 인피니온(독일),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스위스) 등이 모두 유럽에 있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 등도 이른 시일 내 유럽을 찾을 것으로 알려졌는데, 한 부회장은 올해 1월 M&A 가능성을 언급하며 "조만간 좋은 소식이 나올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