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대형 액화천연가스 운반선(LNGC) 시장에서 한국의 조선 3사를 무서운 속도로 쫓아오고 있다. 과거에는 중국 국영기업이 주로 중국 조선소에 LNGC를 발주했지만, 최근엔 일본과 중동 선주들도 주문을 넣고 있다. 기술적으로 어려운 LNGC를 제작할 수 있는 조선소도 과거에는 후둥중화조선 1곳에 불과했지만 올해 들어 2곳이 추가되면서 총 3곳으로 늘었다.

5일 조선업계 따르면, 중국 국영 중국선박공업그룹(CSG) 소속 쟝난조선소는 지난달 하순 아부다비 국영 에너지 기업 애드녹의 자회사 애드녹L&S(ADNOC Logistics & Services)로부터 17만5000㎥급 LNGC 4척을 수주했다. 애드녹L&S는 지난 3월에도 LNGC 2척을 쟝난조선소에 발주해 총 6척을 주문한 상태가 됐다. 같은 CSG 소속이며 중국 내 LNGC 선두 주자인 후둥중화조선은 지난해 10월 일본 해운사 MOL로부터 17만4000㎥급 LNGC 4척을 수주했다.

액화석유가스(LNG) 운반선 모형이 중국 국기 앞에 놓인 모습. /로이터

이는 후둥중화조선이 제작한 LNGC 글래드스톤호 때문에 겪었던 2018년 6월 당시 ‘굴욕’과 비교하면 괄목상대한 모습이다. 글래드스톤호는 당시 호주 글래드스톤에서 출발해 중국 베이하이로 향하던 중 엔진 고장으로 움직일 수 없게 돼 파푸아뉴기니 뉴브리튼섬 인근 항구로 견인됐다. 당시 사고는 중국산 LNGC에 대한 불신을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 덕분에 한국산 LNGC는 비싸도 믿을 수 있다는 반사 이익을 얻었다.

중국은 이후에도 LNGC 산업을 꾸준히 지원했다. 중국해양석유(CNOOC), 중국원양운수(COSCO) 등 중국 해운업계는 후둥중화조선에 꾸준히 LNGC 신조 일감을 발주했다. 이에 후둥중화조선은 지난 4월말 기준으로 17만4000㎥급 LNGC 수주 잔고 24척 중 20척을 중국 회사들의 주문으로 확보했다.

중국에서 LNGC 건조가 가능한 조선소는 1곳에서 3곳으로 늘었다. 대형 LNGC 건조 경험은 없지만 항공모함 등을 만들던 대형 국영 조선사에 국영 해운사가 주문을 냈다. 지난 3월 CSG 소속 다롄조선은 중국상업운송(China Merchants Shipping)으로부터 17만5000㎥급 LNGC 2척을 수주하며, 첫 LNGC 건조에 나섰다. 애드녹과 계약한 쟝난조선소도 지금까지 대형 LNGC 건조 경험이 없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조선소이고 각종 군함을 만드는 대형 조선소이지만, LNGC는 중국 내 물량을 수주한 경험도 없다.

중국 조선사의 핵심 경쟁력은 가격이다. 한국의 한국조선해양,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010140)등은 한 척당 약 2억2000만~2억3000만달러를 받고 있는데, 중국은 척당 2억달러를 조금 넘는 수준에서 계약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당국이 2015년 이후 체계적으로 LNGC 산업을 육성해온 것도 큰 힘이 됐다. 2015년 ‘중국제조 2025′ , 2020년 ‘제14차5개년 계획과 2035년 비전’ 등의 정책을 바탕으로 추진된 LNGC 산업 지원에 따라, 후둥중화조선을 중심으로 중국 내 LNGC 제작과 관련한 공급망이 자리잡았다. 또 자국 내 경쟁을 줄이기 위해 국영 1, 2위였던 남부의 중국선박공업그룹(CSSC)과 북부의 중국선박중공업그룹(CSIC)을 합병해 효율성도 높였다. 합병 전이었다면 CSSC 소속의 후둥중화조선에서 CSIC 산하의 다롄조선으로 기술 이전이 지금보다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은 ‘최대 LNG 수입국’으로 부상한 기회도 놓치지 않고 활용하고 있다. LNG는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등 동북아 국가들이 최대 수입국으로 전체 수입 물량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중국은 2017년 한국의 수입물량을 추월해 세계 2위 수입국으로 올라섰고, 2021년엔 일본마저 추월해 세계 1위 수입국으로 올라섰다.

한국 조선사들이 LNG 수입 물량에 따른 ‘바잉파워’를 활용해 LNGC 시장을 석권하는 모습을 지켜본 중국이 이 같은 기회를 활용하기 위해 고부가가치 선종인 LNGC를 정책적으로 육성한 것이다.

액화석유가스 운반선이 지난 2018년 7월 16일 중국 다롄항의 페트로차이나 터미널을 떠나고 있는 모습. /로이터·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