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선박의 '징검다리' 연료로 액화천연가스(LNG)가 대세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탄소 배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LNG의 입지가 예상보다 빠르게 좁아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3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전 세계에서 LNG를 연료로 쓰는 선박(LNG 추진선) 30척이 발주됐다. 지난 4월에도 51척의 LNG 추진선이 건조계약을 맺었다. 올해 2분기가 한달가량 남았지만 이미 LNG 추진선 발주량은 역대 분기 최대치를 경신했다. 올해 발주된 선박 10척 가운데 6척(59%)은 LNG 추진선으로, 기존의 벙커C유를 대체할 선박 연료로 LNG를 선호하는 추세가 뚜렷하다. LNG는 벙커C유보다 탄소 배출량이 30%가량 적고, 황산화물(SOx)도 거의 배출되지 않아 현행 환경 규제에서 자유롭다.

유럽연합(EU) 깃발 앞에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모형이 놓여 있다. /로이터·뉴스1

하지만 EU를 중심으로 선박 연료에 대한 환경 규제를 강화하면서, 본질이 탄소 연료인 LNG 대세론이 길게 이어지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유럽의회는 오는 6일(현지 시각) 본회의를 열고 해운산업에 대한 유럽탄소배출권거래제(EU ETS) 적용안을 표결할 예정이다. 지난해 7월 EU 집행위가 발표한 입법안보다 더 강화한 수정안으로 대상선박을 2000GT(총톤수) 이상에서 400GT 이상으로 확대했고, 역내 탄소 배출량뿐만 아니라 역외 배출량도 100%를 적용하기로 했다. 본회의 통과가 유력한 상황에서 EU 이사회 검토와 승인을 거쳐 이르면 올해 말 최종 확정될 전망이다.

2024년부터 법안이 시행되면 해운사는 탄소 배출량만큼 EU ETS의 탄소 배출권을 구매해야 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EU 내 항만 입항이 거부될 수 있다. LNG 추진선 역시 탄소를 배출하는 만큼 탄소 배출권을 사야 한다. EU ETS의 탄소 배출권 가격은 올해 톤(t)당 80유로(약 10만7000원)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다. 1년 새 2배가량 뛰었다. 앞으로 탄소 배출권 가격이 고공행진 할수록 LNG 추진선의 운영비용이 커지게 된다.

유럽의회 환경위원회는 또 선박연료 규제 입법안 초안을 지난달 발표했는데 '2035년 이후 EU 역내에서 LNG 추진선 운항 금지'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해운사 입장에서는 올해 LNG 추진선을 발주해 2년 뒤에 인도받으면 유럽 노선에선 앞으로 10년 정도만 선박을 운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선박은 보통 20년 이상 운용한다.

국제해사기구(IMO)가 2023년부터 도입하는 탄소집약도지수(CII) 규제도 고민거리다. CII는 선박의 탄소 배출량에 따라 5개 등급을 부여해 3년 연속 D등급을 받거나, 한번이라도 E등급을 받으면 시정 조치를 마련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이후 승인을 받지 못하면 운항할 수 없다. 특히 CII의 2019년 대비 탄소 감축 계수는 2023년 5%를 시작으로 2026년 11%로 오른다. 탄소 배출량 제한이 더 강화된다는 의미다. 2027년 이후 감축 계수는 정해지지 않았으나, 2030년쯤 LNG 추진선이 CII 규제 제한을 받지 않는 C등급 이상 받을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문제는 아직 LNG 외에 수소, 배터리, 암모니아 등의 대체 연료가 상용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에 선사들의 행보도 엇갈리고 있다. 스위스 MSC와 프랑스 CMA CGM, 독인 하팍로이드(Hapag-Lloyd) 등은 LNG 추진선을 발주하고 있다. 덴마크 머스크(Maersk Line)는 LNG 대신 메탄올 추진선을 선택했다. 현대중공업에서 2024년까지 1만6000TEU(1TEU=20피트 컨테이너)급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 8척을 2024년까지 건조할 예정이다.

국내 최대 해운사인 HMM(011200)은 2030년 예상 탄소 배출량보다 21.5%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그 일환으로 2030년까지 저탄소·무탄소 선박을 추가로 발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어떤 대체 연료를 선택할지는 결정하지 않았다. HMM 관계자는 "LNG를 포함해 다양한 옵션을 열어두고 논의 중이다"라고 말했다.

해운업계에선 탄소 규제 관련 민관 협력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해운사 고위 관계자는 "개별 해운사가 탄소 규제에 대응하고, 선박을 발주하기에는 국적 선사 대부분이 영세하다"며 "정부와 해운사가 함께 공조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