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여름철 무더위가 시작되기 전부터 추가로 공급할 수 있는 여유 전력을 뜻하는 전력 예비율이 12%대까지 떨어졌다. 통상 전력 업계에서는 예비율이 10% 이상 유지돼야 일부 발전소가 고장 등으로 멈춰서더라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여름을 앞두고 발전소가 대거 정비에 돌입한 가운데 기온까지 올라가면서 예비율이 위협을 받고 있다.

27일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전체 전력 공급 능력에서 최대 전력 수요를 뺀 공급 예비력은 지난 23일 8953㎿로 올 들어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에 따른 공급 예비율 역시 12.4%로 연간 최저치다. 1년 전 같은 날 예비력과 예비율이 각각 2만1962㎿, 38.7%를 보였던 것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작년 5월 23일엔 우리나라에서 생산할 수 있는 전력의 약 60%만 사용했는데, 올해 같은 날엔 90% 가까이 사용했다는 뜻이다. 지난 24일과 25일에도 예비율이 각각 12.8%, 14.3%에 불과했다.

그래픽=이은현

국내 전력 업계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의 마지노선으로 예비력 1만㎿, 예비율 10%를 꼽는다. 정부가 전력수급 비상단계를 발령하는 것은 예비력이 5500㎿ 밑으로 내려갈 때부터지만, 이보다는 보수적으로 전력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통상 전력 사용이 많은 여름, 겨울에는 일시적으로 예비력이 1만㎿를 밑돌기도 하지만, 올해 들어선 예년보다 훨씬 일찍 경고등이 켜진 셈이다.

예비율이 낮아진 이유는 발전소 정비와 때 이른 더위가 겹친 탓이다. 발전소들은 보통 전력 수요가 상대적으로 적은 봄, 가을에 정비를 시행한다. 이 때문에 여름, 겨울철에 비해 예비율이 반드시 높지는 않다는 것이 전력거래소 측 설명이다. 이날 15시 기준 정비 중인 발전소는 405대 중 107대로 집계됐다. 전체 설비용량(12만6677㎿)에서 107대(2만8577㎿)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23%다.

올해는 여름 전부터 전력 수요가 몰리기 시작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23일 서울의 낮 최고 온도는 30.7도로 올 들어 가장 더웠다. 대구도 최고 온도가 23일 32.3도, 24~25일 33.2도 등 이미 여름에 접어들었다. 이에 따라 최대 전력 수요는 이달 1일 5만7624㎿에서 23일 7만2122㎿로 25%가량 증가했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과거 정비철보다 올해 특히 예비력이 다소 축소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올 여름에는 폭염이 예고돼 있어 전력 수요가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기상청은 6월 기온은 평년과 비슷하거나 높은 정도겠지만, 7~8월은 평년을 웃도는 강한 폭염이 올 수 있다는 예보를 내놨다. 작년 7월에도 무더위로 인해 전력 예비율이 한 자릿수까지 떨어지며 전력 수급에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지난 5년간 전력 수요를 낮게 책정하고 원전이나 석탄 등 기저전원 상당수의 문이 닫혔다”며 “전력수요가 점차 증가하는 가운데 발전 설비의 추가는 없었던 만큼, 상당 기간 여름과 겨울마다 전력 부족 사태를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력 설비를 늘리는 일은 윤석열 정부에서도 꾸준히 진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전력 업계에서 나온다. 특히 가격이 저렴한 원자력 발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유류와 LNG는 ㎾h당 336.5원, 145.87원을 기록하며 올 들어 크게 뛰었지만, 원자력은 6.36원으로 변동이 거의 없는 편이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작년 12월 원전 이용률은 91.8%로 2017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업계에서는 윤석열 정부가 탈원전 정책의 폐기를 외치고 있는 만큼 원전 이용률이 앞으로 높은 수준을 보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4월 원전 이용률은 76.8%였다.

전력당국은 아직 전력 수급에 큰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전력거래소 관계자는 “적정한 예비력은 연중 1만300㎿ 정도로 보고 있지만, 반드시 1만300㎿ 이상의 예비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라며 “예비력이 1만300㎿ 아래로 내려간다고 해도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고, 현재 정비를 하고 있는 발전기들이 하나 둘 정비를 마치고 복귀하면 발전 공급능력은 계속해서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