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국내 휘발유 소비량이 3년 6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이동이 쉽지 않았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기보다도 휘발유를 쓰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유류세 인하분을 뛰어넘을 만큼 국제유가가 큰 폭으로 오르면서 소비자들의 기름값 부담이 최고조에 달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작년 말부터 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 생산량을 늘리던 정유업계는 다시 공장 가동률을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25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 4월 국내 휘발유 소비량은 563만9000배럴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4월(714만1000배럴) 대비 21% 감소한 수준이며 2018년 10월(559만4000배럴) 이후 3년 6개월 만의 최저치다. 휘발유 소비량은 코로나19가 국내에서 본격 확산된 2020년 2~3월(591만5000·575만1000배럴) 잠시 줄었다가 이후 600~700만배럴선을 계속 유지해왔다. 작년 12월 812만2000배럴로 관련 통계가 시작된 1997년 1월 이후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뒤 4개월 연속 감소하고 있다.

그래픽=손민균

경유 소비도 위축되고 있다. 4월 경유 소비량은 전년 동기(1410만6000배럴) 대비 17% 감소한 1171만5000배럴로 집계됐다. 2019년 9월(1085만7000배럴) 이후 2년 7개월 만의 최저치다. 경유 소비량도 작년 12월 1629만2000배럴로 2019년 8월(1646만5000배럴)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이후 매달 소비가 줄었다. 이 추세라면 1000만배럴선도 깨질 전망이다. 월간 경유 소비량이 1000만배럴에 못미쳤던 때는 2013년 2월(988만9000배럴)이 마지막이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2021년보다 휘발유·경유 소비량이 줄어들자 소비자의 고유가 부담이 극에 달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제유가는 두바이유 기준 23일 배럴당 109.47달러를 기록했다. 올해 1월 3일 76.88달러로 출발한 두바이유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던 2월 말부터 급격히 오르기 시작해 3월 9일 127.86달러로 연중 최고치를 찍었다. 이때와 비교하면 최근엔 다소 낮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100달러대로 연초 대비 높은 수준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5월 들어 정부가 유류세 인하폭을 20%에서 30%로 확대했지만, 국제유가 오름폭이 워낙 크다보니 가격 하락 효과를 체감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정유업계는 고유가 흐름이 장기화될 경우 수요 위축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는데, 그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또다른 정유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일정 수준의 이동 수요는 유지됐는데, 지금 코로나19 확산세가 끝을 보이고 있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됐는데도 가격 부담에 자동차를 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소비 위축 흐름이 더욱 뚜렷해질 경우 정유업계는 공장 가동률을 낮출 수밖에 없고, 이는 실적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SK에너지·GS칼텍스·현대오일뱅크·에쓰오일(S-Oil(010950)) 등 국내 정유 4사의 4월 평균 가동률은 78.7%로 집계됐다. 올해 1월 81.6%에 비하면 2.9%포인트(P) 낮아졌다. 다만 4월의 경유 일부 정유사가 정기보수를 실시하면서 가동률이 낮아진 측면이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수요에 맞춰 제품을 생산해야 하는 만큼 조만간 가동률을 낮추는 방안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휘발유와 경유의 국내 재고는 점차 쌓여가고 있다. 4월 기준 휘발유 재고는 667만배럴로 2020년 1월(686만8000배럴)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경유 재고는 3월 1210만3000배럴로 작년 9월(1106만배럴) 이후 6개월 만에 1000만배럴대를 넘겼고, 4월엔 1156만4000배럴로 집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