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015760)이 전기요금·공사비 계산 착오, 자재 관리 부실 등으로 지난 5년간 낭비한 돈이 2조5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를 통해 지적받는 사항은 매년 비슷한데, 낭비하는 돈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어 경영 효율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전은 올해 1분기에만 8조원에 가까운 영업손실을 낸 뒤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 상황이다.

23일 공공기관 경영정보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2017~2021년 5년간 한전이 내부 감사와 감사원·산업통상자원부 등 외부 감사를 통해 재정상 조치를 취한 금액은 총 2조5263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감사 후 추징·회수, 변상, 감액, 예산절감, 환불 등을 모두 합쳐둔 것인데, 이중 예산절감은 해당 감사로 드러난 문제 시정 후 예상되는 경제적 효과를 뜻한다. 작년 기준 예산절감은 전체 재정상 조치 중 77%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한전의 재정상 조치 금액은 매년 감사를 받아도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작년의 경우 내부 감사로 6956억원, 외부 감사로 40억원 등 총 6996억원의 재정상 조치가 취해졌는데, 이는 최근 5년 새 최대 규모다. 회수할 수 없는 예산절감 금액만 보면 2017년 4113억원에서 작년 5389억원으로 31% 늘었다.

그래픽=손민균

작년 감사에서 적발된 사례를 살펴보면, 전기요금 장기 체납을 방치하거나 할인 항목을 제대로 살펴보지 않아 덜 받는 경우가 흔하게 나타났다. 예를 들어 만 3세 미만인 영아가 1인 이상 포함된 출산가구는 출생일로부터 3년간 전기요금을 깎아주는데, 경기본부는 2018년 4월부터 2020년 12월까지 해당 지역에서 이사한 출산 가구 2902호의 할인 혜택을 그대로 유지했다.

충북본부는 신재생에너지 전기요금 특례할인 적용 대상이 아님에도 대상 여부 검토를 소홀히 해 할인 대상으로 잘못 접수했다. 남서울본부에서는 10개월 이상 고액 장기 체납자 126명 중 법적조치를 취한 14명 외에는 적극적인 수금활동을 하지 않는 등 사실상 방치해 문제가 됐다.

공사비를 잘못 산정하거나 자재의 재고, 구입 단가 등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돈이 새어나가는 경우도 많았다. 경기북부본부의 경우 2020년부터 작년 3분기 감사일까지 공사업체를 통해 689개 품목을 구입했는데, 같은 품목인데도 구입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다.

당시 감사 보고서는 “구입 실적이 많고 단가 차이가 큰 품목의 구입 실적을 확인했더니, 저가 대비 고가 구매 실적이 약 12배까지 차이나는 것이 확인됐다”고 했다. 담당자가 자재 구매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어 실거래가를 몰랐고, 같은 자재인데도 회사와 현장에서 사용하는 명칭이 달라 이같은 문제가 생긴 것이다. 대전세종충남본부에서는 공사비를 잘못 산출해 9100만원을 덜 받기도 했다.

공사비와 공사 과정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작년 4분기 한전은 ‘장기 미준공 배전공사 관리실태 특정감사’를 통해 자재 청구 물량이 설계내역보다 1500만원을 초과하는 배전공사 2600여건을 확인했는데, 출고된 자재를 다른 공사에서 사용하고도 이관 처리를 하지 않거나 사용하지도 않고 보관 중인 자재가 확인됐다.

시스템상 재고와 실제 보유재고가 불일치할 경우, 많은 공사가 준공되지 못하고 지연될 수밖에 없다. 공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도 미리 비용을 지불하고, 이후 각종 문제 발생으로 공사가 마무리되지 못하는 경우도 잦았다.

한전은 지난 1분기에만 7조7869억원의 사상 최대 규모 영업손실을 기록하자 곧바로 비상경영체제를 가동했다. 한전을 비롯한 전력그룹사는 출자지분과 부동산, 해외 석탄발전소를 매각하는 것은 물론 투자사업 시기 조정, 경상경비 30% 긴축 등 비용절감을 통해 6조원을 마련하기로 했다.

발전업계 관계자는 “한전이 최근 대규모 영업손실을 낸 것은 전기요금 인상이 제한된 가운데 국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한 데 따른 것이지만, 한전 내부적으로도 비효율적인 부분이 많았다”며 “위기 해소를 위해 경영 전반을 혁신하겠다고 밝힌 만큼, 잘못된 관행과 제도 등을 뿌리뽑는 기회로 활용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