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034730)그룹의 지주사인 SK㈜가 투자자로부터 최근 잇단 자사주 소각 요구를 받고 있다. SK㈜는 24%에 달하는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주가 부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는 불만이 주주들 사이에서 나온다. 시장에서는 SK그룹이 지배구조 개편과 맞물려 대규모 자사주 매각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10일 재계에 따르면 이채원 전 한국투자밸류운용 대표가 이끄는 라이프자산운용은 최근 SK㈜에 자사주 소각을 요구하는 주주서한을 보냈다. 라이프자산운용은 서한에서 “SK의 뛰어난 투자 성과가 시장으로부터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며 보유 자사주 중 10%에 해당하는 180만주를 소각하라고 요구했다.

앞서 지난달 7일 미국 투자회사 돌턴인베스트먼트도 SK㈜에 자사주 소각을 요구하는 서신을 보냈다. 돌턴은 서신에서 “밸류에이션(평가 가치) 할인 폭이 큰 만큼 배당보다는 자사주 매입에 집중하고, 자사주 소각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돌턴은 행동주의 펀드로 분류된다. 2019년 국내 사모펀드와 손잡고 현대홈쇼핑(057050)에 자사주 매입과 배당을 요구하고,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와 감사위원 재선임 안건에 반대표를 던지기도 했다. 2020년에는 국내 1위 안경렌즈 전문업체 삼영무역(002810)의 주주총회에서 감사위원 후보자를 직접 추천하기도 했다.

두 투자사의 SK㈜ 지분율은 1% 미만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돌턴의 경우 국내 사모펀드와 연합해 주주행동에 나선 전례가 있어 다른 SK㈜ 주주와 손잡을 가능성도 있다.

SK㈜는 이런 주주 제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성형 SK㈜ 재무부문장(CFO)은 지난 3월 주총에서 “자사주 소각도 주주환원의 한 옵션으로 고려할 예정”이라고 했다. 다만 구체적인 자사주 소각 방식과 시기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래픽=이은현

SK㈜가 자사주 소각 요구를 받는 것은 올해 주가가 지지부진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월 29일 36만원이었던 SK㈜ 주가는 24만원대까지 빠졌다. SK㈜는 지난해 말 기준 24.35%(1805만8562주)의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다. 이날 종가 기준 4조3900억원에 달한다. SK㈜는 대기업 지주사 가운데 가장 많은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다.

자사주 매입과 소각은 최고의 주주환원정책으로 꼽힌다. 기업이 자사주 매각해 소각하면 발행 주식 수가 줄어 주당 가치가 상승한다. SK㈜는 꾸준히 자사주 매입에 나서면서도 소각을 하지 않고 있어 주주들의 반감을 사고 있다.

재계와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SK㈜가 지배구조 개편을 염두에 두고 자사주를 계속 보유만 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SK는 부인하고 있지만, IB업계에서는 SK와 SK스퀘어(402340)의 합병 가능성이 꾸준히 거론된다. SK텔레콤(017670)은 지난해 11월 인적분할을 통해 통신회사와 투자회사로 분할됐다. 통신사업은 SK텔레콤이 영위하고, 반도체·정보통신기술(ICT) 투자는 SK스퀘어가 맡는 구조다. SK스퀘어는 SK텔레콤이 보유하던 핵심 계열사 SK하이닉스(000660)도 넘겨받았다.

SK㈜는 그룹에서 덩치가 가장 큰 SK하이닉스를 손자회사로 간접지배하고 있다. 지주사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SK스퀘어와 합병해 SK하이닉스를 자회사로 두는 것이 유리하다. SK㈜가 2025년까지 시가총액을 140조원 규모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세웠기 때문에 시장에서는 두 회사의 합병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시장에서는 합병 진행으로 SK하이닉스의 주가가 하락할 경우 주주 반발이 우려되는데, 이때 SK㈜가 자사주를 대량 소각해 주주 달래기에 나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SK가 계열사 합병 때 자주 활용한 방식이다. SK는 2015년 SK C&C와 합병할 때 앞서 보유하고 있던 자사주를 전량 소각했다. SK텔레콤도 인적분할에 앞서 지난해 5월 2조60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했다.

자사주 소각은 최태원 회장을 비롯한 특수관계인의 SK㈜ 지배력 강화 효과도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최 회장과 특수관계인은 SK㈜ 지분을 26.69%를 보유하고 있는데, 자사주를 전량 소각한다고 가정하면 지분은 35% 수준까지 오른다. IB업계는 라이프자산운용과 돌턴의 자사주 소각 요구도 이런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당분간 자사주를 보유할 수밖에 없는 SK㈜에 소각을 압박해서 배당 등 다른 주주환원정책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IB 업계 관계자는 “SK㈜와 SK스퀘어의 합병 비율을 유리하게 가져가기 위해 다른 자회사들과의 선제적 합병도 예상된다”며 “자사주 소각 요구에도 당분간 SK㈜는 자사주 매입에만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