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정책을 추진한 한국수력원자력의 경영진을 비판한 뒤 직위해제됐던 강창호 한수원 새울원자력본부 새울1발전소 노조 지부위원장이 부당직위해제 취소 소송에서 이겼다. 강 지부장은 국민권익위원회로부터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의 부패행위 신고자(공익제보자)로 인정받은 인물이다.

4일 재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부장판사 이상훈)는 강 지부장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직위해제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신청 사건'에서 원고(강 지부장)의 일부 승소 판결을 지난달 28일 선고했다. 재판부는 "(강 지부장의) 의견 표명이 직위해제의 근거 규정인 '회사의 명예를 크게 손상시킨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직위해제가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없을 정도로 장기간 이뤄져 부당하다"고 했다.

경북 경주의 월성 원자력 본부. /월성 원자력본부 제공

판결문에 따르면 강 지부장은 2020년 1월 한수원 감사실에 월성1호기 경제성 평가조작으로 회사에 손해를 발생시킨 당사자에 대한 조사를 요청하는 신고를 했다. 이어 정재훈 한수원 사장 등을 월성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관련 업무상배임 혐의의 공범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강 지부장은 또 정 사장 취임 이후 5개 원자력본부 순환 마일리지 신설 등 '4직급 직원 이동기준(순환근무제)'을 "전문성을 고려하지 않은 조처"라며 반발했다.

강 지부장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정 사장 등 경영진을 비판하는 글을 썼고, 기자회견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무시하는 사장은 해임돼야 한다" 등의 주장을 했다. 그는 동료 직원들에게 "부당한 업무지시, 위법한 업무지시에 대해 거부하셔야 됩니다. 그래야 우리 회사를 지키고 자신을 지킬 수 있다" 등의 내용이 담긴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한수원은 강 지부장의 이 같은 활동이 인사관리규정 제22조 제1항 제4호에서 정한 '회사의 명예를 크게 손상시킨 자'에 해당한다고 판단, "2020년 2월 28일부터 별도 명령 시까지 직위를 해제한다"는 내용의 인사명령을 내렸다. 강 지부장은 울산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으나, 회사의 명예를 크게 손상시킨 행위에 해당한다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수원은 직위해제 후 1년여 만인 지난해 5월 제1발전소 안전부 안전평가파트로 발령냈다.

강창호 새울원자력본부 새울1발전소 노조 지부위원장. /조선DB

법원은 이 같은 직위해제 조처가 부당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강 지부장이 문제제기를 하는 취지가 사익 추구에 있다기보다 자신의 주장이 공익에 부합한다는 신념에서 비롯한 것임을 고려할 때 표현의 자유의 범주를 벗어났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어 "기간의 상한이 없는 직위해제를 한 뒤 소명의 기회를 부여하거나 구체적인 사유를 제시하지 않고 막연히 '직위해제의 사유가 소멸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직위해제를 연장한 것은 인사재량권의 남용에 해당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다만 이번 사건이 부당노동행위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강 지부장의 의견표명이 조합 내부의 의결을 거쳤다거나 조합원들의 의사가 반영된 것이라고 볼 만한 아무런 자료가 없는 사정을 고려해보면 조합의 업무를 위한 행위라고 보기 어렵다"며 "강 지부장 외에 다른 조합원들에 대해 불이익 조치를 하지 않아 직위해제가 부당노동행위 의사에 기인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권익위도 지난해 1월 강 위원장을 공익제보자로 인정해 직위해제를 취소하고 직위해제 기간에 차별지급된 보수를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권익위는 "강 위원장의 발표나 의견 등의 공익성 등으로 보아 표현의 자유를 지나쳐 피신청인(한수원, 정 사장)에 대한 명예를 훼손했다고 평가될 수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공익제보자 신분 보장 등을 취소해달라며 국민권익위를 상대로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한수원이 항소하면서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강 지부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한수원 경영진을 공개 비판했다는 이유로 직위해제 됐지만, 국민권익위가 부패행위신고자로 인정해 준 데 이어 서울행정법원도 직위해제 취소 판결을 내린 것"이라며 "정상 회복에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중노위는 이번 부당직위해제 취소 소송과 관련해 판결문을 송달받아 항소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노위가 항소하지 않아 판결이 확정되면, 강 지부장에 대한 한수원의 직위해제 결정이 취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