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독일, 일본 등 주요국 중심으로 자율주행자동차 시장 선점을 위한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주요국의 법제도 정비 속도에 비해 한국의 제도 개선은 더딘 것으로 나타났다. 자율주행 상용화를 위해 기술 발전 단계에 맞는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24일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은 KPMG를 인용해 자율주행자동차 세계 시장규모가 2020년 71억달러(약 약 8조8289억원)에서 2035년 1조달러(약 1244조원)로 연평균 41% 성장할 전망이라고 전했다.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2030년 신차 판매의 절반 이상이 레벨3 이상의 자율주행기술을 탑재할 것으로 전망된다. 자율주행 발전단계 레벨0~레벨5 중 레벨3은 자율주행시스템의 요청이 있을 경우에만 운전자 개입이 필요한 수준이다.

세계 주요 완성차 기업은 레벨3 자율주행차 상용화 경쟁에 한창이다. 미국 테슬라는 사람이 타지 않고도 움직이는 기술을 공개하며 완전자율주행모드(Full Self-Driving·FSD)를 홍보하고 있는데, 이는 레벨 2.5~3으로 평가된다. 일본 혼다 역시 작년 3월 레벨3 기능을 갖춘 자율주행차인 레전드를 출시했고, 독일 메르세데스-벤츠도 작년 말 레벨3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승인 규정을 충족하는 S클래스를 출시했다.

국내에서는 현대차(005380)가 올해 말까지 레벨3 기술로 평가받는 고속도로 자율주행인 ‘HDP(Highway Driving Pilot)’를 개발해 제네시스 G90에 탑재할 예정이다. HDP는 손을 떼고도 시속 60km 범위에서 자율주행이 가능하며, 교차로에 진출입할 때 시스템이 스스로 가감속을 해준다.

그래픽=손민균

한경연은 레벨3 이상의 자율주행차 상용화를 위해서 세계 각국이 법·규제 정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주요국들은 관련법 개정 후에도 기술 발전 단계에 맞춰 법률을 지속적으로 보완하고 있다.

미국, 독일, 일본 등은 자율주행 관련 법·제도를 정비하고 레벨3 차량이 실제 주행할 수 있는 법률적 요건을 이미 구축했다. 독일은 작년년 레벨4 완전자율주행차의 운행을 허용하는 법률 제정해 올해 중 연내 상시 운행을 가능하게 한다는 방침이다. 일본은 2019년 도로운송차량법을 개정해 레벨3 자율주행차의 운행을 허용하기 위한 제도를 정비하고, 혼다의 레벨3 자율주행 시스템의 시판을 승인한 상태다.

한국은 레벨3 자율주행 기반 마련을 위한 운전주체, 차량장치, 운행, 인프라 등 자율주행차 4대 영역에 대한 규제 정비를 추진했지만 아직까지 임시운행만 가능하다. 한경연은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자율주행차 상용화 촉진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자율주행차 안전운행 요건 및 시험운행 등에 관한 규정’,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의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 ‘자동차 관리법 규정’,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등을 마련했지만, 레벨3 이상의 자율주행차 상용화를 위한 추가적인 법·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경연은 한국의 자율주행 시범서비스 주행거리와 데이터 축적 규모가 미국 등 주요국에 비해 부족해 레벨3 이상의 자율주행차 상용화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고 봤다. 미국은 무인 시범운행을 통해 자율주행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지만, 한국은 대부분의 시범운행에서 보조운전자가 탑승하고 있고, 주행하는 도로도 시범구역 지역 내 특정 노선으로 제한돼 있다. 미국은 시범구역으로 지정된 지역 내에서 자유롭게 운행 경로를 설정할 수 있다.

자율주행자동차 대수 역시 미국은 1400대 이상이지만, 한국은 220여대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미국 구글의 자율주행차 계열사인 웨이모는 2020년 이미 3200만km의 누적 주행거리를 축적했지만, 한국은 올해 1월 기준 72만km에 불과하다.

그래픽=손민균

한경연은 한국의 레벨3 이상 자율주행 상용화를 위한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며 기술 발전 속도에 발맞춰 관련법 정비가 빠른 속도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구체적으로는 국내 레벨3 자율주행 상용화를 위해 자율주행 모드별 운전자 주의의무 완화, 군집 주행 관련 요건 및 예외 규정 신설, 통신망에 연결된 자율주행차 통신 표준 마련, 자율주행 시스템 보안 대책 마련, 자율주행차와 비(非)자율주행차의 혼합 운행을 위한 도로구간 표시 기준을 마련 등 관련법 정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한경연은 “레벨4 자율주행 상용화를 위해 자율주행용 간소면허 신설, 운전금지 및 결격사유 신설, 구조 등 변경 인증체계 마련, 좌석배치 등 장치 기준 개정, 원격주차 대비한 주차장 안전기준 마련 등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도로와 통신 인프라 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