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096770)의 배터리 자회사 SK온이 헝가리와 중국 신규 배터리 공장에 중국 업체 설비를 설치한다. SK온은 그동안 한국의 중소·중견기업 설비를 주로 사용했다. 업계에서는 가격 경쟁력과 기술력에서 중국 업체가 한국 업체를 앞서면서 SK온의 선택을 받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21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SK온은 최근 구매시스템 입찰을 통해 중국 항커(杭可)테크놀로지를 헝가리 이반차 공장과 중국 옌청 2공장 배터리 후공정설비 공급사로 선정했다. 항커는 지난 12일 공시를 통해 전날 SK온과 이런 내용의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설비 계약 규모는 이반차 약 760억원, 옌청약 650억원 등 총 1410억원 수준이다. 항커는 SK온이 건설 중인 헝가리 이반차 공장과와 중국 장쑤성 옌청 2공장에 각각 전지를 셀에 공급하는 장치와 충방전 장비를 공급한다.
중국 배터리 업계에서는 SK온이 추가로 발주하는 미국, 유럽 등의 후공정 장비 입찰에서도 항커의 추가 수주가 기대된다고 전망했다.
항커는 글로벌 리튬배터리 후공정 장비 선두업체다. 국내에선 LG에너지솔루션(373220)과 삼성SDI(006400)가 항커 설비를 사용하고 있다. 중국 CATL과 일본 무라타(소니 배터리 부문) 등 주요 배터리 업체도 항커 고객사다. 특히 후공정 중 하나인 충방전 장비에 매출 74%가 집중돼있다.
전기차 배터리의 후공정 작업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충방전 장비는 수많은 배터리를 충방전하며 배터리의 이상 유무 등을 검사하는 공정이다. 배터리 수명이나 성능을 검사하는 내부저항 테스트기도 주력 기술이다. 항커의 최대 고객은 LG(003550)로 알려져 있다. LG의 배터리 사업 후공정 설비의 70%를 항커가 수주했다.
그동안 국내 기업의 후공정 설비를 주로 사용했던 SK온이 신규 공장에 중국 업체 장비를 도입하는 데 대해 업계에선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배터리 후공정은 폭발 위험이 있기 때문에 설비의 안정성이 요구되고, 배터리 공장과 후공정 설비 간 오랜 협업도 필요하다. 배터리 업체는 안정성을 이유로 후공정 설비 교체를 잘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항커는 최근 연구개발(R&D)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해 3분기까지 17억6000만위안(약 3387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는데, 이 중 7~8%를 R&D에 재투자하고 있다. SK온이 항커를 선택하면서 국내 중소·중견기업과 항커 간 기술력 격차가 벌어지고 가격 경쟁력도 떨어진 것 아니냐는 반응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전체 배터리 공장 라인에서 후공정 비중은 높지 않지만 상당히 중요한 설비라 거래처를 잘 바꾸진 않는다”며 “최근 항커가 CATL과 대규모 공급 거래를 체결했다가 무산됐다는 현지 보도가 있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공격적인 영업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