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을 제때 올리지 못한 한국전력(015760)의 주가가 20년 전보다 낮은 수준까지 떨어지면서 주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눈덩이처럼 커지는 적자에 배당마저도 어려운 상황이다. 한전은 향후 전기요금 인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입장이지만, 시장에서는 한전이 시장형 공기업으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3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전은 2019년 4월 4일(3만150원) 이후 3년 가까이 2만원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주가는 20년 전인 2002년 3월 30일(2만4750원)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한전 주가의 역대 최고가는 2016년 5월 30일 기록한 6만3000원이다. 당시 한전의 시가총액은 40조원에 달해 현대차(005380)를 제치고 코스피 시장 2위까지 올라선 바 있다. 지금은 14조원대로 20위권이다.
한전 주가가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은 연료비 급등분이 전기요금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탓이 크다. 지난 29일 정부는 한전에 2분기 실적연료비를 동결한다고 통보했다. 킬로와트시(kWh)당 33.8원의 인상 요인이 발생했지만 전기요금의 또다른 항목인 기준연료비와 기후환경요금이 4월부터 인상을 앞두고 있는 만큼 실적연료비까지 오를 경우 국민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이유였다. 박광래 신한금융투자 연구위원은 "연료비 조정단가 동결로 향후 실적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고, 작년부터 시작된 연료비 연동제 시스템은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고 평가했다. 이날 한전 주가는 2.8% 하락했다.
전기요금 동결 발표가 있던 날 50여명의 주주들은 전남 나주 한전 본사에서 열린 제61기 정기 주주총회를 찾아가 정승일 한전 사장에게 강력하게 항의했다. 20년 전부터 한전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는 주주는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했으면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서 주주에게 배당금을 지급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작년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할 때 전기요금을 인하하면서 시작한 것도 문제였는데, 이후 연료비가 올랐음에도 이를 요금에 반영하지 않아 주주들의 피해가 막심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다른 주주는 "현재 적립돼 있는 이익잉여금을 활용해 주주들에게 배당을 지급해야 한다"며 "대규모 적자를 내는 것은 경영진의 배임"이라고 주장했다. "한전이 적자를 탈출하기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노력했어야 했다", "주가가 반토막이 됐는데도 계속 주주들의 희생만 강요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정 사장은 주총 시작에 앞서 "경영성과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외부적 위기요인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해 한전을 믿고 투자해주신 주주님들께 올해 배당을 지급하지 못하게 된 점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사과했지만, 주총 내내 제기된 주주들의 항의에 거듭 고개를 숙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 사장은 전기요금이 제때 조정되지 못한 점에 대해 사과하는 한편, "정부와 긴밀히 협의해 전기요금이 향후 조정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주총은 주주들의 항의로 두 시간 가까이 소요됐다.
정 사장의 약속이 지켜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번 2분기에도 한전은 정부에 분기별 최대 한도인 kWh당 3원이 인상돼야 한다고 의견을 제출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한전은 정부 외에도 소액 주주와 외국인 주주가 투자하고 있는 엄연한 상장기업이지만, 핵심 경영 수단인 전기요금은 정부가 사실상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있다"며 "독립적인 전기요금 결정 시스템을 구축하고 재무건전성을 개선해 기업가치 제고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