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경남 하동군 악양면. 지리산 형제봉 옆으로 섬진강이 흘렀고, 그 사이 드넓은 평사리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박경리 작가의 소설 '토지'의 배경인 동네다. 지리산 자락을 따라 오르면 해발고도 500m 지점에 농업법인 '에코맘의 산골이유식(에코맘)'의 공장이 있다. 에코맘은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이곳에서 이유식을 만들고 있다. 전국 백화점 18곳과 마트 100여곳으로 옮겨져 판매되고 있다. 온라인 주문도 받아 하루 5000개의 택배가 배송된다. 이날도 공장 1층에선 택배 배송을 위한 포장 작업이 한창이었다.

에코맘은 설립 10년 만에 연 매출이 36배 늘었다. 아기용 이유식이 주력 제품이다. 간식류와 건강식품 등도 만들어 팔고 있다. 에코맘은 앞으로 고령자용 식료품으로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오천호(40) 에코맘 대표는 "사람이 태어나서 제일 처음 먹는 음식이자 생애 마지막에 먹는 음식이 이유식과 죽"이라며 "이들을 위해 좋은 국산 농수산물로 만든 음식을 제공하는데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경남 하동군 에코맘의 산골이유식 공장에서 오천호 대표가 제품을 설명하고 있다. /권오은 기자

오 대표는 서울에서 화장품 수입업과 죽집을 운영하다가, 사업을 접고 2012년 고향 하동군으로 돌아와 에코맘을 설립했다. 창업 자금이 부족해 7000만원을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에서 빌릴 정도로 출발이 쉽지 않았지만, 입소문을 타고 매출액이 2013년 3억6000만원에서 지난해 130억원으로 급성장했다. 같은 기간 직원 수도 7명에서 55명으로 늘어 지역의 대표 중소기업이 됐다.

오 대표는 지역 농수축산물로 만드는 제품이라는 점을 성장 비결로 꼽았다. 에코맘은 지리산 자락에 자연 방사해 키운 닭이 낳은 유정란부터 정상회담 만찬에도 오른 남해안 특산품 달고기 등을 재료로 사용하고 있다. 계약재배 농가는 300곳으로 늘었다. 이유식에 들어가는 쌀을 재배하는 하동군 양보면 농지 면적도 9만9000㎡(약 3만평)에서 40만㎡(약 12만평)로 커졌다. 지역 농수축산물 구입액은 지난해 기준 누적 130억원이 넘어섰다.

지역과의 동반 선장은 에코맘의 핵심 가치다. 농수산물 구입 외에도 평사리 들판에 1억원을 지원해 유기화 사업을 진행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하동군과 함께 동네에 29가구 규모의 청년 마을도 조성하고 있다. 오 대표는 "처음에 고향으로 돌아와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 중 하나가 '지역 소멸' 문제였다"며 "지역 농수축산 농가와 함께 성장하면 양질의 재료를 공급받고, 고향도 지킨다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남 하동군 에코맘의 산골이유식 공장에 설치된 자동 충진 시스템. /에코맘의 산골 이유식 제공
경남 하동군 에코맘의 산골이유식에 있는 수비드 시스템. /권오은 기자

이유식은 크게 7단계에 걸쳐 만들어진다. 원재료를 들여온 뒤 세척하고 분쇄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후 재료를 섞어 조리하고, 용기에 담아 배송을 위한 포장까지 마친다. 에코맘은 이 과정에 자동화 시스템과 로봇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2020년 약 80억원을 투자해 이유식을 섞는 경사식 니더와 물건을 옮기는 로봇암, 용기에 이유식을 채우는 자동 충진 시스템을 구축했다. 하루 생산량이 이유식 기준 1만개에서 5만개로 5배 이상 늘었다.

특히 '수비드' 시스템이 눈에 띈다. 에코맘 공장 2층에는 30m 길이의 수조가 있었다. 수조에는 물이 차 있고 아래에 컨베이어 벨트가 있다. 물 속에 밀봉된 이유식을 넣으면 자동으로 움직이며 저온·장시간 조리가 된다. 90℃ 물에서 45분, 10℃ 물에서 25분 정도다. 오 대표는 "영양소를 최대한 보존할 수 있는 조리법을 고민한 끝에 수비드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경남 하동군 에코맘의 산골이유식 공장에서 직원이 작업하고 있다. /에코맘의 산골이유식 제공

에코맘은 고령층을 위한 실버푸드로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이에 맞춰 '1915M'으로 사명 변경도 추진하고 있다. 지리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천왕봉의 해발고도에서 따왔다. 오 대표는 "기존 사명이자 이유식 브랜드인 '에코맘의 산골이유식'으로는 앞으로 늘어날 사업 내용을 모두 담기가 어렵다고 생각해서 올해 하반기 중으로 사명을 바꿀 계획"이라고 말했다.

연 매출 목표도 2023년 300억원으로 높여 잡았다. 간편 이유식 등 제품 종류를 확대하고, 매출 가운데 수출 비중도 기존 10%에서 30%까지 늘려 성장을 이어가겠다는 게 에코맘의 설명이다. 스마트 물류시스템을 갖춘 신규 공장도 추진하고 있다. 두유와 마요네즈 등 새로운 제품군도 이곳에서 생산할 계획이다.

식료품 사업을 넘어 지역 특색에 맞는 사업도 구상하고 있다. 농업인 전문 요양병원과 팜핑(Farmping·농장+캠핑) 등이다. 오 대표는 "지리산을 타고 평사리 들판으로 흐르는 개천 주변으로 팜핑장이나, 카페 등도 조성하려고 한다"며 "지역 어르신들이 농사를 잘 지어줘야 좋은 제품이 나오는 만큼 농민을 위한 요양병원도 꼭 짓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