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30대’, ‘여성’, ‘원자력 전문가’라는 이력을 가진 위원이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인수위는 서울대·남성·50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 위원은 윤 당선인의 첫 대선 후보 민생행보에서 인연을 맺어 인수위까지 합류했다. 당시 윤 당선인에게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의 저서를 건내며 읽어볼 것을 권한 당찬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지난 6년 간 원자력 설계 전문가로 일했던 그는 문재인 정부가 국내 원전 전문가들을 ‘원전 마피아’로 몰아 적폐 취급하는 등 탈원전을 밀어붙이는 데 분노해 윤 당선인 지지를 결심하게 됐다고 한다. 바로 인수위 청년 실무위원으로 발탁된 김지희 원자력연구원 선임연구원이다.

23일 인수위와 원자력 업계에 따르면 김 연구원은 지난 18일 청년 실무위원으로 인수위에 합류했다. 윤 당선인이 탈원전 폐기를 공약한 만큼 인수위 내 원전 전문가들이 다수 포진해있다. 그 중에서도 김 연구원은 원자력연구원 현역 연구원 최초로 대통령 인수위에 합류해 주목받고 있다.

지난 5일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통령 선거 후보의 찬조연설자로 나선 김지희 한국원자력연구원 선임연구원./국민의힘 유튜브 캡쳐

김 연구원과 윤 당선인의 인연은 지난해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자력연구원 연구원으로 근무하며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그는 윤 후보의 첫 민생행보 일정이었던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전공생들과의 간담회’에서 박사과정 학생 대표로 참석했다. 김 연구원은 이 과에서 학·석사도 마쳤다.

김 연구원은 당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탈원전 정책은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견·중소기업까지 피해를 주고 있다”며 “설계를 아무리 잘 해도 만들어지지 않으면 그것은 없는 원자로와 다름이 없다”고 지적했다. “가동 원전이 옛날에 그 원전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업그레이드를 해야 하는데, 가동 원전 업그레이드를 못 하고 안전성을 보장하지 못 하는 상황이라 심각하다”고도 했다. 탈원전 정책이 현재 가동 중인 원전의 안전성도 해친다는 지적에 윤 당선인도 크게 공감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김 연구원은 간담회가 끝나고 윤 당선인에게 빌 게이츠의 저서 ‘빌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을 전달했고, 윤 당선인은 “꼭 읽어보겠다”고 화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2월 출간한 이 책에서 게이츠는 “그 어떤 청정에너지원도 원자력 에너지와 비교할 수 없다”며 원전을 통해 기후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게이츠는 “우리가 더 많은 원자력발전소를 사용하지 않는 이상 가까운 미래에 저렴한 비용으로 전력망을 탈탄소화할 수 있는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며 “원자력 같은 에너지원이 없다면 제로탄소 전기는 훨씬 더 비쌀 것”이라고 적었다. 게이츠는 원전 사고 위험성에 대해 사망 위험이 자동차나 화석연료보다 낮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원은 이 인연으로 윤 후보 대선캠프의 장예찬 청년특보가 운영하던 청년 싱크탱크 ‘상상23′에 참여했다. 원자력연구원 소속 연구원들은 국책연구원이라는 특성상 정치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 김 연구원이 현역 연구원으로서 특정 정당에서 활동한 첫 인물이다.

2021년 2월 발간된 빌 게이츠의 저서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 김지희 한국원자력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지난해 7월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간담회를 진행한 뒤 이 책을 선물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이츠는 이 책에서 원전은 현존하는 가장 청정하고 강력한 에너지원이며 원전 없이는 탄소중립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김영사 제공

김 연구원이 처음부터 정치 활동을 했던 것은 아니다. 그를 윤석열 지지자로 이끈 것은 문재인 정부의 강압적인 탈원전 정책이었다. 김 연구원은 지난 5일 윤 당선인 찬조연설자로 나서 문재인 정권과 환경단체들이 원전 음모론을 퍼트릴 때도 연구자로서 묵묵히 현장을 지켰다며 “그것이 국민을 위하는 길이라고 믿었다”고 했다.

그러나 “민주당 정권은 눈과 귀를 틀어막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듣지 않았다”며 “순식간에 행정명령에 기반한 탈원전이 시작됐다. 수많은 인재들이 피와 땀으로 이뤄낸 원자력 국산화가 무너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열심히 일해 온 연구자들은 마피아가 됐고 월성 1호기는 경제성이 없다는 누명을 쓴 채 멈춰섰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 때 저희들에게 누구보다 큰 감명을 주셨던 분이 바로 윤석열 후보”라며 “당시 검찰총장으로 월성 1호기 경제성 축소를 수사하면서 전방위적 압박에 굴하지 않았다. 용감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수사를 통해 많은 범죄 사실들을 밝혀냈다”고 했다. 윤 당선인도 대선 출마 선언을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를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 수사의 외압을 꼽았다. 현 정권의 탈원전 정책이 윤 당선인과 김 연구원의 운명을 바꿔놓은 셈이다.

김 연구원의 인수위 합류로 원전 업계는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윤 당선인과 인연이 있고, 원전 전문성도 갖춘 인사이기 때문이다. 그가 인수위에서 원전과 관련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김 연구원이 상상23을 통해 윤 당선인 후보 시절부터 원전과 관련한 여러 제언을 한 것으로 안다”며 “특히 윤 당선인이 소형모듈원자로(SMR)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에 대한 정책 제언을 계속 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