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들은 '한국전력은 파산 수준에 와있다'고 불만을 토로합니다. 이렇게 되면 주주도 피해를 입지만 결국 고객인 전기 소비자, 즉 국민이 가장 큰 피해자입니다. 정부는 전기요금을 조정하지 않는다며 생색내지만, 언젠가는 국민이 요금에 더해 차입 원리금까지 갚아야 합니다. 작년 요금에 반영하지 못한 이자 부담만 2조원이고, 그 이자에 또 이자가 붙어 복리로 국민 부담이 늘어나고 있어요. 연말까지 차입 총액 100조원에 이자 부담은 2조5000억원 정도로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2018년 4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한국전력(015760) 사장을 지낸 김종갑 한양대 특훈교수는 18일 조선비즈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2020년까지만 해도 4조원의 영업이익을 냈던 한전은 지난해 6조원 규모의 사상 최대 적자를 냈다. 탈원전 정책 이행을 위한 비용 부담에 액화천연가스(LNG) 등 연료비까지 급등했지만, 이를 전기요금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탓이다. 올해 1분기 전기요금을 동결한 한전은 오는 21일 2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를 발표한다.

김종갑 한국전력 사장./조선DB

◇ "전기요금 동결 효과 크지 않아… 독립규제위 설치해야"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국민 생활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국민이 체감하는 효과는 그리 크지 않고, 오히려 전기요금은 '저렴하다'는 인식 때문에 수요 관리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 김 교수의 진단이다.

그는 "2인 이상 가구의 월 평균 전기요금 부담은 4만4000원, 이동통신 요금은 15만5000원이라고 한다"며 "전기요금을 조금 인상해도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요금이 너무 싸서 낭비가 많다보니, 인구 8400만명의 독일보다 인구 5100만명의 우리가 (전기를) 더 쓰고 있다"며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서도 수요 관리가 필요하고, 그러려면 원가를 반영한 적정 요금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기요금이 연료비, 즉 원가 기반으로 운영되지 않는 것은 정부의 개입 때문이다. 김 교수는 전기요금도 '수익자 부담원칙'에 따라 운영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최근 에너지 가격 상승에도 대부분의 나라에서 원가를 반영한 요금제도를 운영하고 있고, 거의 유일한 정부 개입 사례인 일본도 지난해 18.5%를 인상했다"며 "이동통신 요금이 각자의 선택으로 부담하고 있는데, 전기요금도 다를 수 없다"고 말했다. 전기가 통신보다 '공공성'이 더 높다고 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공공재'는 아니라는 뜻이다.

결국 전기요금에 정부의 개입 여부를 원천 차단하는 구조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 김 교수는 "요금으로 물가를 잡는 개발연대식 통제는 그만두고 다른 선진국처럼 독립규제위원회를 설치·운영해야 한다"며 "정치나 정책적 요인의 영향을 받지 않고 전력산업 관점에서 요금을 결정하는 제도가 아니면 전기요금의 정치화를 막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전기요금에 개입할 길이 사라지면 오히려 국회나 정부의 정치적 부담이 줄어들 수도 있다. 그는 "가격이 왜곡되면 한전 경영 뿐만 아니라 전체 전기 산업, 나아가 에너지 산업이 시장지향적으로 발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올해에만 20~40%가량 전기요금 상승 요인이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진단이다. 다만 이를 한꺼번에 반영하기보다는, 최대한 반영하되 나머지는 한전의 미수금으로 처리해 경영 지표에는 나타나도록 해야한다고 했다. 그는 "독립규제위원회를 설치하기 전까지는 현행 연동제를 원칙대로 운영해야 하고, 작년 운영 경험을 반영해 분기 조정폭 또는 연간 조정폭을 확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연료비 연동제는 분기별로 1kWh당 3원, 연간 1kWh당 5원까지만 조정할 수 있다.

서울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관리인이 전기 계량기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뉴욕증시에서 가장 허접한 주식 됐다… 이사회 경영으로 전환해야"

정부의 전기요금 개입은 한전의 자율경영도 위협하고 있다. 한전은 공기업이긴 하지만 유가증권시장은 물론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도 상장돼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정부가 18.2%, 한국산업은행이 32.9%를 보유하고 있지만 외국인 지분이 14.2%, 소액주주 등 기타 지분이 34.7%에 달한다. 전기요금 현실화가 미뤄질수록 한전의 경영 성적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김 교수는 "지난 16일 기준 한전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23%로 세계 주요 전력 유틸리티 중 최하위"라며 "전력 계통운영 효율면에서 한전에 많이 뒤지는 이탈리아의 최대 에너지 기업 에넬(ENEL)은 주가가 순자산의 300%나 된다"고 말했다.

한전은 무늬만 주식회사일 뿐, 국회와 정부의 원칙 없는 개입으로 정부기구처럼 변질됐다는 것이 김 교수의 시각이다. 그는 "책임경영은 정부의 구호일 뿐, 경영성과를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천수답 경영'을 하고 있다"며 "누가 이런 회사에 투자하겠나"라고 반문했다. "한전처럼 배당을 못하는 전력 유틸리티는 없다"며 "뉴욕 증시에도 상장시키면서 외국인 투자자에게 적정 배당을 예고했지만 이루어지지 못했다. 뉴욕증시에서 가장 허접한 주식으로 천덕꾸러기가 됐다"고도 했다.

김 교수는 한전이 상장기업인만큼 민간 기업처럼 상법의 적용을 받고 이사회 중심의 경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자격 요건을 갖춘 사외이사를 추천하면 된다. 그는 "현실은 많은 정부기관들이 무원칙하게 공기업 경영에 개입한다"며 "정부가 51%의 지분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상 100%의 주주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차기 정부가 연금 개혁 추진을 검토하고 있는데, 같은 선상에서 전력의 정상화도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사용자가 제 때에 적정 부담을 하도록 제도를 만드는 것이 정상화이고, 그런 점에서 연금과 전기요금은 분야만 다를 뿐 같은 성격의 과제"라고 했다.

한전을 비롯한 전력그룹의 전반적인 구조조정도 과제로 제시했다. 원가를 최소화해야 국민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개편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새 정부에서 해묵은 숙제를 해결해 에너지가 단순히 인프라에 그치지 않고 산업으로 발전해 나가는 기틀을 마련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