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20대 대통령 당선인이 인사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지난달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공공기관장을 대거 연임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기관장은 모두 1년의 임기를 보장받았기 때문에 차기 정부와의 ‘불편한 동거’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1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는 지난달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이인호 한국무역보험공사 사장, 석영철 한국산업기술진흥원 원장 등 공공기관장 연임을 결정했다. 이인호 사장의 임기는 지난 1월까지였고, 정재훈 사장은 4월, 석영철 원장은 5월에 임기가 각각 끝난다. 이인호 사장은 지난해 12월 말 연임이 확정됐다.

이들 기관은 이사회, 주주총회 등을 거쳐 기관장 연임을 확정한다. 문재인 정부는 별도의 최고경영자(CEO) 공모 절차 없이 이들 기관장의 연임을 일괄 확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기관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재가를 거쳐 내년까지 1년의 임기를 연장하게 된다. 윤석열 당선인이 오는 5월10일 취임하기 때문에 문재인 정권에서 연임을 결정한 공공기관장은 차기 정부와 1년 간 ‘불편한 동거’를 하게 됐다. 관가에서는 정권 말기에 공공기관장 연임을 무더기로 결정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한 공기업 인사는 “정권 말기에 친정부 인사를 공공기관 감사 등으로 보내는 경우는 많이 봤지만, 기관장을 줄줄이 연임하는 건 일반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산업기술진흥원 측은 원장 연임과 관련해 어떤 절차도 진행하지 않고 산자부에서도 통보받은 바 없다고 밝혔다.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조선DB

관가와 에너지업계에서는 특히 정재훈 사장의 연임에 대해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 사장은 2018년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반대했던 이관섭 전 사장이 사임한 뒤 취임했다. 이후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앞장서 적극 옹호했고, 한국수력원자력이라는 사명에서 ‘원자력’을 빼려는 시도도 했다.

정 사장은 현재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사건’에 연루돼 재판을 받고 있다. 당초 월성 1호기는 설계수명이 다해 2012년 11월 가동을 멈춘 원전이다. 한수원은 7000억원을 들인 전면 개보수 작업을 통해 2015년 2월 원자력안전위원회로부터 2022년까지 수명 연장을 승인받았다. 그러다 정 사장이 취임한 뒤 한수원 이사회는 부족한 경제성을 이유로 월성 1호기의 조기 폐쇄를 결정했다.

이후 월성1호기 조기 폐쇄를 결정한 한수원의 경제성 평가가 조작됐다는 의혹이 불거졌고, 감사원 감사에서 이는 사실로 드러났다. 원전 판매단가와 이용률, 인건비, 수선비 등 경제성 평가에 필요한 변수를 조기 폐쇄에 유리한 방향으로 조정했다는 것이 감사원의 판단이다.

감사원 감사 결과를 바탕으로 국민의힘은 정 사장과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현 한국가스공사 사장) 등 월성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연루자들을 배임·업무방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업무방해 혐의로 고발했다. 검찰은 이들을 기소해 재판이 진행 중이다.

에너지 업계에서는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을 주도했던 정 사장이 탈원전 폐기를 공약한 윤 당선인과 손발을 맞춰 일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