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기관차에서 친환경차(수소·전기차)로 전환이 빨라지면서 철강업계도 맞춤형 제품을 내놓고 있다. 배터리 효율을 높이기 위해 더 가벼우면서 더 강한 철강재를 생산하기 위한 기술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6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포스코(POSCO)와 현대제철(004020) 모두 친환경차에 맞춰 기가파스칼(㎬)급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1㎬는 가로 세로 1㎜ 크기의 재료가 100㎏의 무게를 버틸 수 있는 강도다. 10원짜리 동전으로 치면 11톤(t)의 무게를 버틸 수 있어 기존 자동차에 적용하던 외부 판재보다 2배 이상 강하다. 강도가 높은만큼 철강재를 덜 써도 돼 기존 제품보다 무게가 약 10% 가볍다. 자동차 업계에선 전기차 무게를 내연기관차 수준으로 낮추면 주행거리가 10~20%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어 전기차 시대엔 가벼우면서도 단단한 제품이 필요하다.
포스코는 2017년부터 5000억원을 투자해 연간 100만톤(t) 규모의 ㎬급 제품 '기가스틸' 생산체제를 갖췄다. 'TRIP' 'MART', 'HPF' 등이 주력 강종이다. 포스코는 이 같은 기가스틸을 활용한 전기차 차체 솔루션인 PBC-EV도 개발했다. PBC-EV는 기가스틸을 차체에 45%이상 적용해 기존 동일 크기의 내연기관차보다 약 30%가량 무게를 줄이는 것이 핵심이다. 지난해 친환경차 제품·솔루션 브랜드인 '이 오토포스(e Autopos)'도 선보였다.
현대제철도 신제품을 잇달아 출시하고 있다. '1.8㎬ 프리미엄 핫스탬핑강'이 대표적이다. 기존 1.5㎬ 핫스탬핑강보다 인장강도(재료가 절단되도록 끌어당겼을 때 견뎌내는 최대 하중을 재료의 단면적으로 나눈 것)는 20% 높으면서, 부품 제작 시 무게는 약 10% 줄일 수 있다. 현대제철은 1.8㎬ 프리미엄 핫스탬핑강을 연간 14.5만장(전기차 약 3만대분) 현대차(005380)에 공급할 계획이다. 현재 제네시스 eG80(G80EV)과 G90에 적용 중이다.
친환경차의 엔진이나 내부에 적용할 철강제품 개발·생산도 늘고 있다. 포스코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무방향성 전기강판 'Hyper No'를 생산하고 있다. 균일한 자기특성을 보이고, 특수 코팅으로 전력 손실도 막아 줘 전기차의 엔진인 구동모터에 쓰이고 있다. 포스코는 무방향성 전기강판 수요가 2026년 185만t으로 예상 공급량(162만t)을 웃돌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연간 생산량을 10만t에서 2025년 40만t(전기차 800만대분)까지 키울 계획이다.
현대제철 역시 친환경차 이차전지 케이스 등으로 활용할 수 있는 '프리미엄 1.5㎬ MS(Martensitic)강판'을 최근 개발했다. 강도는 유지하면서 기존에 균열이 생기고 고르지 못했던 문제를 해결해 자동차 소재로 쓰일 수 있게 됐다. 현대제철은 또 '센터 필러(차체와 지붕을 연결하는 기둥)'에 쓰이는 'TWB 핫스탬핑 차체 부품용 1㎬ 소재' 역시 개발했다. 기존 제품보다 무게를 10%가량 줄였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친환경차 제품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성장성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전 세계적으로 판매되는 친환경차가 2020년 299만대에서 2030년 2243만대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현대차와 기아(000270)도 2030년까지 전기차로 중심축을 옮기겠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흐름에 맞춰나가지 않으면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꼽히는 자동차용 철강재 시장을 놓칠 수밖에 없다. 포스코의 경우 지난해 친환경차용 제품 판매량이 2020년보다 2배 늘기도 했다.
확장성 측면도 있다. 산업 전환기와 맞물려 전 세계적으로 자동차용 철강재 수요가 커지면서, 포스코와 현대제철 모두 신규 시장과 고객사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있다. 포스코는 중국 하북강철집단과 합작회사를 설립해 탕산시(唐山市)에 자동차 강판 공장을 짓고 있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11월부터 체코 오스트라바시 핫스탬핑 공장을 운영하면서 연간 340만장(차량 20만대분) 규모의 고강도 차량부품소재를 생산하고 있다.
철강사 관계자는 "자동차 강판은 단단하면서 가벼워야 하고, 또 다양한 디자인에 적용할 수 있도록 유연하면서 대량으로 양산해도 균질해야 한다"며 "친환경차 제품은 놓칠 수 없는 시장인 만큼 기술 개발에 더 속도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