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면서 액화천연가스(LNG), 유류 등 주요 발전원료의 연료비 단가가 급등하는 가운데 원자력은 비교적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원자력 발전의 원료인 우라늄 가격이 다소 오르긴 했지만, 발전 단가에서 원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10%도 되지 않는 데다 10년 단위의 장기계약을 통해 수급이 안정돼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안보 위기가 불거진 상황에서 원전이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4일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원자력의 연료비 단가는 킬로와트시(kWh)당 6.36원으로 지난해 12월 이후 3개월 연속 동일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관련 통계 집계를 시작한 200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긴 하지만 단가 상승 폭은 크지 않다. 지난해 2월의 경우 kWh당 6.11원으로 현재까지 1년간 4.1% 오르는 데 그쳤다.
다른 발전원료의 연료비 단가 추이를 보면, LNG의 경우 연료비 단가가 지난달 kWh당 203.32원으로 집계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한 달 전(158.08원)보다는 28.6%, 1년 전(76원)보다는 167.5% 급등한 수치다. 유류의 연료비 단가 역시 지난달 303.10원으로 전월(236.45원) 대비 28.2% 상승하며 처음으로 300원대를 넘어섰다. 전년(149.17원) 대비로는 103.2% 올랐다. 석탄 중 발전에 주로 쓰이는 유연탄은 지난달에 87.06원으로 집계됐는데 전월(79.32원) 대비 9.8%, 전년(45.39원) 대비 91.8% 상승했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KOMIS)에 따르면 원자력 원료인 우라늄 가격은 지난달 파운드(lb)당 44.14달러를 기록했다. 전월(45.69원) 대비 소폭 하락하긴 했지만, 1년 전(29.36원)과 비교하면 50.3% 오른 수준이다. 사용처가 원자력 발전에 한정된 우라늄은 가격 변동이 비교적 작은 편인데, 최근 탄소중립 중요성이 확대되면서 유럽과 중국을 중심으로 원전 수요가 늘어날 조짐이 나타난 데다 우라늄 주요 생산국인 카자흐스탄에서 최근 반정부 시위가 발생하면서 우라늄 생산 차질 우려가 발생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그럼에도 원전 연료비 단가가 안정적 흐름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수급 구조 덕분이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우라늄은 원석을 가공한 정광과 농축 등 두 형태로 수입해 오는데, 평균 10년 단위로 계약이 이뤄진다. 장기 계약을 통해 우라늄을 받아오기 때문에 고정 단가로 봐도 무방할 만큼 변동성이 낮다. 수급 다변화도 이뤄져 있다. 현재 한수원은 러시아와 영국, 프랑스 3곳에서 3분의 1씩 우라늄을 공급받고 있는데, 각국 수입량을 늘리는 것도 가능하다. 한수원 관계자는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가 발생했지만, 현재 재고량이 충분한 데다 러시아 물량 공급에 차질이 생긴다 해도 영국과 프랑스 물량을 늘릴 수 있어 크게 우려하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원전의 경우 전기 1kwh를 생산하는 비용 중 우라늄 비중이 10%가 안된다는 점도 연료비 단가가 낮은 흐름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다. 나머지 90%는 발전 설비 구축 비용과 인건비 등이다. 반면 LNG는 발전단가 중 연료 비중이 75%, 석탄은 50%에 달한다. 또 원전 1기를 5년간 가동하는데 필요한 연료 저장공간은 20㎡(약 6평)에 불과해 LNG, 석탄 등에 비해 보관이 용이하다. 필요한 공간이 적은 만큼 재고를 충분히 쌓아둘 수 있다. 원전은 건설 비용이 높고 기술이 까다롭긴 하지만 지어두면 저렴한 비용에 유지가 가능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불거진 에너지 위기에서 원전의 가치가 극대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은 직접 에너지원을 생산하지는 않지만, 그 에너지원을 활용하는 기술 수준이 월등히 높은 나라로, 기술 덕분에 에너지를 역수출하며 에너지 단가를 낮춰왔다"며 "지금과 같은 에너지 위기에선 저렴한 가격에 깨끗한 에너지를 생산하는 원전이 중요한 만큼, 관련 기술을 지켜내는 것이 에너지 안보인 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