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그룹이 올해 주주총회에서 여성 사외이사를 대거 선임한다. 그동안 현대중공업그룹은 보수적인 기업 문화 탓에 남성 중심으로 이사회를 꾸려왔지만, 오는 8월 개정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이 시행되면서 더이상 이사회를 특정 성(性)으로만 구성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이번 여성 사외이사 선임을 통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한층 더 강화할 계획이다.

2일 재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지주, 한국조선해양,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현대일렉트릭 등 현대중공업그룹 상장사 5곳은 올해 주주총회에서 여성 사외이사를 각각 1명씩 선임하는 안건을 상정할 계획이다. 이번 주총에서 이들의 선임안이 통과될 경우, 각사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여성 사외이사를 두게 된다.

(왼쪽부터) 이지수 변호사(현대중공업지주), 조영희 변호사(한국조선해양), 박현정 교수(현대중공업), 김성은 교수(현대미포조선), 전순옥 전 의원(현대일렉트릭). /조선DB·한양대

현대중공업그룹이 선임하는 5명의 여성 사외이사 후보자 가운데 3명은 법조인 출신이다. 현대중공업지주는 이지수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를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으로 선임할 계획이다. 법률 전문가로서 충분한 지식과 경험을 갖추고 있어 경영 감독을 충실히 수행할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이 회사의 설명이다. 한국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은 각각 조영희 엘에이비파트너스 파트너 변호사와 판사 출신의 박현정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으로 선임할 예정이다.

현대미포조선은 김성은 경희대 회계·세무학과 교수를, 현대일렉트릭은 전순옥 전 국회의원을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으로 선임할 계획이다. 김성은 교수는 2010~2015년 한국씨티은행 사외이사직을 수행했었다. 제19대 국회의원 출신의 전순욱 전 의원의 경우 노동사회학 전문가로 전태일 열사의 동생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이 여성 사외이사들을 대거 선임하는 배경엔 ESG 경영을 강화하겠다는 정기선 사장의 의지가 담겨있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인 정 사장은 지난해 10월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현대중공업지주와 한국조선해양의 대표이사까지 맡고 있다. 정 사장 입장에선 해외 연기금 등 국내외 투자자들의 ESG 경영 강화 요구에 부응하려면 지배구조 개선에 신경을 쏟아야 하는 상황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1972년 그룹 모태가 된 현대중공업 설립 후 50년간 줄곧 남성들이 이사회를 차지해왔다. 올해 8월부터 새 자본시장법이 시행됨에 따라 자산 2조원 이상 상장 법인은 이사회를 특정 성으로만 구성할 수가 없게 됐다. 그동안 남성으로만 이사진이 꾸려졌다면, 최소 1명 이상의 여성 이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현재 현대중공업그룹 내 여성 사외이사는 지난해 현대건설기계에서 선임한 박순애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가 유일하다.

정 사장은 제조업 중심의 그룹 이미지 탈피도 추진하고 있다. 그룹 컨트롤타워인 현대중공업지주의 사명도 올해 주총에서 'HD현대'로 바꿀 계획이다. 제조업을 넘어 미래 신성장 사업을 육성·발굴하는 데 힘을 쏟겠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전 세대 오너들과 달리 정 사장은 20~30대 젊은 직원들을 직접 불러모아 미래위원회를 구성할 정도로 수평적인 기업 문화를 중시한다"며 "이번 이사회 내 변화 역시 유연한 조직으로 탈바꿈하겠다는 포부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