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10곳 중 7곳은 국민연금이 주주총회(주총) 안건에 반대 의사를 사전에 공시해도 주총 당일 안건 통과가 가능하다고 본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다만 매출 1조원 이상 기업으로 범위를 좁혀보면 국민연금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의견이 절반 가까이에 달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국민연금 주주대표소송 도입 계획을 논의하는 등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강화하고 있다.

27일 전국경제인연합회는 3월 기업들의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시장조사 전문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매출 500대 기업 주주총회 애로사항 조사'를 실시했다. 만약 국민연금이 주총 안건에 반대의사를 사전에 공시할 경우, 주총 당일 해당 안건의 통과가 어려울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전체 응답기업의 31.4%는 '그렇다'고 답했다. 국민연금 반대에도 주총에서 안건이 통과될 것이라고 보는 기업은 68.8%였다.

그러나 매출 1조원 이상으로 비교적 규모가 큰 기업들 중에선 '국민연금이 사전에 반대의견을 공시하면 안건 통과가 어려울 것'이라는 답변이 43.5%로 전체 기업 대비 12.3%포인트(p) 높았다. 국민연금 반대에도 주총 안건 통과가 가능하다는 답변은 56.5%였다. 전경련은 "규모가 큰 기업들이 국민연금의 영향력을 더 크게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이은현

주총을 앞두고 누구의 주주제안에 가장 큰 부담을 느끼냐는 질문에는 '국민연금'(24.7%), '기관투자자'(24.0%), '해외기관투자자'(15.6%), '소액주주연대'(15.6%) 등의 순으로 답했다. 이 질문의 답변에서 경영권 분쟁 직접 당사자는 제외했다. 또한 국민연금의 자료요구나 질의 등이 예년보다 '더 많아졌다'고 답변한 기업이 24.0%로, '줄었다'(3.9%) 보다 6배 이상 높았다.

최근 정부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강화하는 제도를 꾸준히 도입하고 있다. 작년 12월 발표된 국민연금 주주대표소송 도입 계획이 대표적이다. 노동계·시민단체 등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에 국내 기업에 대한 주주제안 권한과 대표 소송 권한을 맡기는 것이 골자다. 현재 주주제안은 기금운용위원회가, 대표소송은 기금운용본부가 맡고 있는데 이를 모두 수탁위에 넘기는 것이다. 다만 지난 25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 회의에서 해당 안건에 대한 의결이 보류되면서 통과 가능성은 줄어든 상태다.

기업들은 주총 전 준비 과정에서 발생하는 애로사항으로 '주총 전 사업보고서 확정 및 각종 사전 공시'(49.4%), '의사정족수 확보 및 의결권수 확인'(31.2%) 등을 꼽았다. 또 올해 주총 주요 안건으로는 '배당 확대나 자사주 매입 등 주주환원 정책'(23.1%)이 1위를 차지했고, 이 외에는 '정관변경 승인'(19.9%), '(사외)이사 선임·해임'(18.6%), '감사·감사위원 분리선출'(12.7%)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지난해까지 증시 호황으로 일반인의 주식시장 참여가 늘고 주주가치 실현에 대한 기대가 높아진 영향으로 보인다.

기업들은 주총의 원활한 개최를 위해 어떤 제도개선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상법·공정거래법·자본시장법 등에 산재한 각종 공시사항이나 공시절차 간소화'(44.8%)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의결권 3% 제한을 없애거나 섀도보팅의 부활'을 택한 기업도 35.1%였다. 섀도보팅은 정족수 미달로 주총이 무산되지 않도록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불참 주주들의 투표권을 행사하는 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