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사상 최대폭으로 유류세를 인하하며 억눌러온 휘발유 가격이 빠르게 치솟고 있다. 정유업계는 국제유가가 오른 영향이라고 설명하지만, 지난 7개월간 원화로 환산한 국제유가와 국내 휘발유 가격의 변동률을 분석한 결과 국제유가가 오를 때 휘발유 가격은 더 많이 올랐고, 국제유가가 내릴 때 휘발유 가격은 덜 내려간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유가가 떨어져도 휘발유 가격은 천천히 내리고, 오를 땐 빨리 오른다"는 소비자들의 해묵은 불만이 어느 정도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23일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원화로 환산한 배럴당 두바이유 가격은 작년 8월 첫째 주 8만1723원(배럴당 71.2달러 × 당시 환율 1147.8원)에서 10월 넷째 주 9만8262원(배럴당 83.3달러 당시 환율 × 1179.62원)으로 20.2% 올랐다. 국제유가가 국내 휘발유 가격에 반영되기까지는 약 3주가 소요된다. 이를 고려하면 8월 넷째 주부터 11월 셋째 주까지 휘발유 가격도 20% 안팎 올라야 하는데, 실제로는 26.2% 인상됐다.
국제유가 하락기에는 반대 상황이 벌어졌다. 10월 넷째 주부터 12월 넷째 주까지 원화 환산 국제유가는 13.5% 하락했다. 반면 3주간의 시차를 둔 11월 셋째 주부터 올해 1월 둘째 주까지의 휘발유 가격은 8.3% 떨어지는 데 그쳤다.
국제유가와 국내 휘발유 가격의 변동률 차이는 주유소의 가격 책정 방식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정유사가 국제유가 하락을 시시각각 반영해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공급해도, 주유소들이 눈치보기를 하며 덜 내리는 경향이 있다"며 "국제유가 상승기엔 정유사가 비싸게 제품을 공급해도 쉽게 가격을 올리지 못하다 보니 유가 하락기에 이익을 얻으려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정유업계는 국제유가와 국내 휘발유 가격이 완벽하게 연동하지 않지만, 불일치 기간이 크지 않다고 주장한다. 길게 보면 움직임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조선비즈 분석에서도 원화 환산 국제유가와 국내 휘발유 가격의 변동률이 작년에는 비교적 큰 차이를 보였으나 올해 들어서는 거의 일치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주유소가 국제유가 하락기에 가격을 덜 내려 돈을 번다해도 주유소 간 경쟁이 치열해 큰 이익은 벌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정유업계는 국내 휘발유 가격이 '내릴 땐 천천히, 오를 땐 빨리'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소비자가 가격 하락보다 상승에 보다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국제유가와 3주의 시차를 두고 움직이는 휘발유 가격이 늦게 내려가는 것은 부담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늦게 올라가는 것은 유리한 부분이라 소비자가 제때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유류세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현재 유류세는 리터당 745원89전으로, 이는 전체 휘발유 가격에서 50~60%를 차지한다. 국제유가 변동과 무관하게 정액으로 부과된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국제유가가 10% 하락했을 때 휘발유 가격 하락폭은 세금을 제외했을 때 4%에 불과해 소비자들은 기름값이 천천히 내려가는 것으로 인지하게 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