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뿐 아니라 패션·뷰티·자동차 등 전통 업종의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개발자 쇼티지(Developer Shortge) 현상이 전세계적으로 일고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 수요가 폭발적으로 급증했지만, 개발자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서다. 개발자를 육성하는 코딩 학원 열풍이 불고, 자체 부트캠프(bootcamp·신병훈련소)를 통한 기업들의 선교육 후채용이 증가하고, 개발자를 위한 연봉이나 스톡옵션 같은 우대 조치 릴레이가 확대된 배경이다. 개발자 부족은 국가별 격차, 대기업과 중소기업⋅스타트업 간 격차, 기존 IT업체와 비IT업체와의 격차 확대로도 심화되고 있다. ‘이코노미조선’이 글로벌 이슈인 개발자 쇼티지의 배경과 기업들의 대응 방안을 짚어본 이유다. [편집자주]

일러스트=이코노미조선 디자인팀.

“유능한 개발자, 연봉 최대 10억엔(약 100억원)에 모십니다.” 글로벌 패션 브랜드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일본 패스트리테일링의 야나이 다다시 회장은 올해 1월, 디지털 인재 확보를 위해 경력직 개발직군 채용 직원의 연봉 상한액을 자신의 연봉(4억엔⋅약 40억원)보다 2.5배 많은 금액으로 올리겠다고 선언했다. 세계 최대 스포츠웨어 업체 나이키는 2021년 12월 가상 패션전문 NFT(Non Fungible Token·대체 불가 토큰) 스튜디오인 ‘RTFKT’를 인수했다.

국내에서는 게임 빅3인 넥슨이 지난해 2월 개발자 초임 연봉 5000만원 시대를 열면서 게임 업계는 물론 다른 ICT(정보통신) 업계로 연봉 인상 릴레이를 확산시키는 방아쇠 역할을 했다.

전 세계적으로 ICT 기업은 물론 패션⋅스포츠 등 전통업종 기업들까지 능력 있는 개발자 확보 전쟁에 뛰어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소프트웨어(SW) 개발자로 대표되는 개발자 확보 전쟁에는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디지털 전환(DT)이 빨라지면서 SW 엔지니어 부족이 심화된 개발자 쇼티지(Developer Shortge) 현상이 있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글로벌 SW 개발 인력 부족 규모가 2020년 12월 말 4000만 명에서 2030년 8520만 명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에서도 한국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인공지능(AI) 클라우드 빅데이터 등에서의 개발자 부족 규모가 2020년 4967명에서 2022년 세 배가 넘는 1만4514명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컴퓨터 프로그래밍 관련업 종사자가 2010년 4만4518명에서 2020년 10만7612명으로 10년 만에 2.4배로 늘었지만 부족 규모도 덩달아 커지고 있는 것이다. 개발자 부족은 국가별 격차, 대기업과 중소기업⋅스타트업 간 격차, 기존 IT 업체와 비IT 업체와 격차 확대로 심화되는 양상이다. 개발자 쇼티지는 업종 경계는 물론 국경도 없는 신(新)인재 전쟁을 격화시킨다. ‘이코노미조선’이 개발자 쇼티지를 진단하고, 기업들의 대응 방향을 모색한 이유다.

디지털 전환이 불러온 개발자 수요 급증

개발자 쇼티지 배경에는 수요 급증이 있다. 인공지능(AI) 응용 확산 등 4차 산업혁명 여건이 조성되는 가운데 ICT뿐 아니라 전통 업종들도 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어서다. 야나이 회장이 “유니클로의 미래 경쟁자는 스페인 패션 업체인 자라(ZARA)가 아니라 ‘가파(GAFA, 구글·애플·페이스북(현 메타)·아마존)’가 될 것”이라고 한 것은 디지털 전환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 세계 최대 농기계 업체인 존디어가 올 1월 세계 최대 정보기술⋅가전 박람회 CES 2022에서 완전 자율주행 트랙터를 선보인 것도 디지털 전환과 무관치 않다. 글로벌 뷰티업계 1위 로레알은 2018년 3월 가상현실(VR) 기술 기업인 모디페이스를 인수한 이후 3D 가상 메이크업 같은 맞춤형 디지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고, 팬데믹 시기 매장 방문을 꺼리는 고객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자료=이코노미조선 정리

기업들은 개발자 확보를 위해 기술기업 인수는 물론 연봉이나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 보너스 등을 경쟁적으로 높여 제시하고 있다. 경력 있는 개발자는 억대 연봉을 받고 이직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카카오커머스는 2021년 3월 채용공고를 통해 신입 개발자들에게 1억원 상당의 스톡옵션을 약속했다. 토스는 2021년 입사 1주년을 맞은 경력직 개발자들에게 각각 1억원 상당의 스톡옵션을 제공했다. 삼성전자가 2021년 12월 전무 직급을 모두 없애고, 부사장과 직급을 통합한 것도 글로벌 빅테크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유능한 개발자의 이탈을 막기 위한 인사 우대 포석이라는 분석도 있다.

무료로 진행하는 선교육 후핀셋식 채용 방식을 채택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포스코ICT는 2021년 12월부터 ‘청년 IT 전문가 아카데미’라는 6개월 교육 프로그램을 개설, 교육 수료생을 대상으로 신입사원을 채용하기로 했다. 우아한형제들은 2019년 5월 개설한 개발자 양성 교육프로그램인 ‘우아한테크코스’ 웹 백엔드 과정을 통해 작년까지 146명의 수료생을 배출했고, 이 중 총 62명의 개발자를 신규 채용했다. 무료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개발자 교육을 먼저 실시하고, 원하는 인재를 나중에 선발하는 방식이라는 점이 공통점이다. 정보기

술(IT) 분야 커리어 컨설팅 기업 커리어컵(CareerCup)의 게일 라크만 맥도웰 CEO는 “기업이 필요로 하는 역량을 갖춘 개발자가 많지 않은 이른바 미스매치 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일고 있다”며 “기본적으로 기업 스스로 개발 인력 양성에 나서야 한다는 건 분명하다”고 했다.

개발자 생태계를 두껍게 하기 위해 기업들이 순수하게 사회공헌 차원에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삼성이 2017년부터 운영 중인 무료 개발자 양성 프로그램인 ‘삼성청년SW아카데미(SSAFY)’가 대표적이다. 삼성은 입학생 전원에게 매달 100만원을 지급하고, 1년간 실무자 중심 SW 교육을 제공한다. 현재까지 약 2700명의 수료생이 배출돼 삼성전자를 포함해 카카오, 네이버, LG CNS, 현대모비스 등 643개 기업에 취업했다.

SW 교육 의무화, 중심대학 지정 나섰지만

정부도 공교육을 통한 개발자 공급 역량 확충에 노력하고 있으나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15년부터 SW중심대학을 지정해 지원해오고 있으며 2021년 기준 해당 41개 대학 관련 학과 입학정원이 8217명으로 6년 새 8배 수준으로 늘었다.

하지만 초·중·고교에서 한국의 SW·AI 교육 의무 시간은 총 51시간에 그쳐 영국 374시간, 중국 212시간에 비해 크게 부족하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짜는 코딩과 신병훈련소를 뜻하는 부트캠프(boot camp)를 합친 민간 ‘코딩 부트캠프’가 성행하는 배경이다. 업계에서는 서울 강남 일대 등에 있는 코딩 학원 10여 곳의 연간 수강생이 1만 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 4개월 수강료가 1300만원에 달하는 코딩 학원에 취준생부터 퇴직자까지 신청자가 몰리고 있다.

자료=디랩

초등학생 대상 조기 코딩 교육도 인기다. 코딩 교육 스타트업 코드스테이츠와 엘리스는 2021년 매출이 각각 전년 대비 475%, 270% 급증한 95억원, 110억원을 기록했다. 코딩 교육 업체 디랩에 따르면 2019년 1500억원에 달했던 국내 코딩 교육 시장은 2030년 1조5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개발자 쇼티지를 극복하기 위해선 인재 수요자인 기업과 공급자인 대학의 협업은 물론 규제완화도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이찬 서울대 산업인력개발학 교수는 “빠르게 변하는 산업 현장의 기술 수준에 맞춘 개발자 양성 교육이 현행 대학 커리큘럼상 불가능하다”며 “SW 관련학과를 나와도 기업이 재교육해야 하고, 단순한 학부 정원 확대로는 양질의 기초 개발자 숫자가 늘기는 어려운 딜레마적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plus point

Interview 이진석 정보통신기획평가원 수석연구원

“AI 개발자 육성 정부·대학 노력만으로는 역부족…민간 투자 중요”

심민관 기자

이진석 정보통신기획평가원 수석연구원. /이진석

“AI대학원은 석·박사급 고급 인력 배출이 목표이지만, 연간 정부 지원금 200억원만으로는 역부족이다. 기업 등 민간 투자가 늘어야 한다.”

이진석 정보통신기획평가원 수석연구원은 2월 9일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기관인 정보통신기획평가원은 국내 AI대학원 설립 및 운영 등에 대한 정책 지원을 수행하며 AI대학원 관련 사업을 전담하는 곳이다. 이 수석연구원은 “전국 10개 AI대학원 한 곳당 연간 20억원의 정부 지원금이 투입되고 있지만 교수진 확보와 정원 확대를 위해선 민간 투자 확대가 절실하다”고 했다. 그는 “2019년 고려대, 카이스트 등 5개 대학을 시작으로 AI대학원을 출범한 직후 한 학교당 교수 수는 평균 10명이었지만, 2년여 만에 평균 15명으로 늘었다”며 “앞으로 좋은 교수진을 충분히 더 확보해야 정원을 더 늘릴 수 있는데 정부 지원금과 대학 자체 재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이 수석연구원은 AI대학원이 개발자 쇼티지 해결의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현재까지 입학생 수는 988명으로 이 중 90% 이상이 석·박사 통합과정 또는 박사과정으로 아직 졸업생을 많이 배출하진 못했지만, 2~3년 뒤부터 AI대학원 졸업생들이 본격적으로 취업을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김보영 인턴기자, 서상희 디자이너
김보영 인턴기자, 서상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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