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르면 이달 중 에너지저장장치(ESS) 관련 규제 강화 방안을 발표할 것으로 전해지면서 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잇단 ESS 화재와 정부 규제 강화로 시장이 침체됐는데, 추가 규제가 나오면 시장 위축은 물론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에도 악영향을 줄 전망이다.

22일 정부와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르면 이달 중 ESS 안전기준 개정안을 발표한다. 산업부는 최근 발생한 ESS 화재 사고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안전기준을 마련하기로 하고, 전문가와 업계 관계자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있다.

올 들어 ESS 화재가 2건 발생하면서 정부가 안전 규제를 대폭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지난 달 12일 SK에너지 울산공장에 이어 같은 달 17일 경북 군위 태양광 발전시설에서도 ESS 화재가 발생했다. 2017년 8월부터 지금까지 발생한 화재 건수는 34건에 달한다. 정부는 ESS 화재가 발생할 때마다 안전기준을 개정해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 달에는 ‘전기안전관리자 직무에 관한 고시’를 개정하고 ESS 전용 점검 서식을 마련해 사업자가 매월 1회 이상 사업장을 점검하도록 했다.

ESS 업계는 정부가 곧 발표할 3차 ESS 화재 원인 조사 결과를 주목하고 있다. 조사 결과에 따라 ESS 산업과 정책 기조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발생한 ESS 화재 4건에 대해 3차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정부는 앞서 2019년 1월 1차 조사에서 배터리 운영·관리 미흡을 화재 원인으로 지목했으나, 같은 해 10월 2차 조사에서는 배터리 결함을 원인으로 꼽았다. 정부는 2차 조사 결과를 토대로 ESS 가동률을 옥내는 80%, 옥외는 90%로 제한했다. ESS 사업자에게 제공했던 전기요금 할인 특례,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 가중치 혜택 등도 대폭 축소했다.

지난 1월 12일 오전 6시께 울산시 남구 SK에너지 내부에 있는 에너지저장장치(ESS)에서 화재가 발생해 소방당국이 화재진압을 하고 있다. / 울산소방본부 제공

계속되는 화재와 정부의 규제 강화로 ESS 산업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이 떨어지면서 시장은 이미 침체기를 겪고 있다. 2016년까지 263개였던 ESS 설비는 2018년 1495개로 늘었다. 그러나 지난해 신설된 ESS 설비는 100여개에 불과해 2018년 대비 10% 수준까지 떨어졌다. ESS 설비는 신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할 필수적인 장치다. 정부가 ESS 규제를 강화할 경우 탄소중립을 위한 신재생에너지 보급에도 차질을 빚게 된다.

LG에너지솔루션(373220), SK이노베이션(096770), 삼성SDI(006400) 등 국내 배터리 업체도 정부의 규제 강화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들 업체는 올해 ESS 사업에 적극 나설 계획이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17일 ESS 시스템 통합(SI) 전문기업인 ‘NEC에너지솔루션’의 지분 100%를 인수했다. NEC사는 자체 ESS 관리 소프트웨어를 통해 사후관리·운영까지 하는 시스템 통합(SI) 전문 기업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번 인수를 토대로 ‘LG에너지솔루션 버테크’라는 자회사를 설립하고 ESS 사업을 확대하기로 했다.

SK이노베이션도 지난해 ESS 시장 재진출을 선언했다. SK이노베이션은 2014년 ESS 시장에 진출했다가 실적 부진으로 2년여 만에 철수한 바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사용후배터리를 활용한 ESS 사업에 주목하고 있다. 삼성SDI는 이미 글로벌 ESS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ESS 시장 점유율(추정치)에서 삼성SDI가 31%(6.2GWh)로 1위를 차지했다. 삼성SDI는 안전성, 품질 강화를 통해 ESS 공급을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이들 업체는 주로 해외 ESS 시장 공략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문제는 계속되는 화재와 규제로 국내 시장이 침체되면 해외 사업 수주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한국에서 화재로 ESS 규제가 강화된다는 점이 알려지면 당연히 해외 사업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며 “배터리 결함이 화재 원인으로 발표되면 당연히 품질 이슈가 발생한다. ESS 시장에서 국내 업체들이 선전하고 있는데, 국내 규제에 발목 잡힐까 우려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