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경기 안양시에 있는 노루페인트(090350) 기술연구소 1층 소형 파일럿(pilot) 설비에서는 도료를 실제 생산하기 전에 공정에 문제가 없을지를 살펴보는 테스트가 진행 중이었다. 반대편에선 도막(도료를 도포해 형성된 피막)을 확대해 깨지거나 틈이 생기진 않는지 등을 확인하고 있었다. 노루페인트 기술연구소에 연구 전담 직원 121명은 연간 기술개발 과제만 150건가량 수행하고 있다. 송준서 노루페인트 기술연구소장은 "영원한 제품은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새로운 제품과 기술이 나와야 회사의 성장으로 이어진다"며 "특히 친환경 제품과 고부가가치 화학제품 개발을 확대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루페인트가 식물을 활용한 바이오매스 도료 등 친환경 제품 개발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 바람과 탄소감축 목표에 따라 친환경 제품 수요가 갈수록 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서다. 노루페인트는 도료에 쓰이는 기술을 활용해 이차전지 음극재 소재 등 고부가가치 화학제품으로 보폭을 넓힐 계획이다.
노루페인트의 제품은 색상과 기능에 따라 분류하면 3만여종이 넘는다. 이 가운데 매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건축용 도료다. 약 43% 수준이다. 노루페인트는 대기 오염물질로 꼽히는 휘발성유기화학물(VOCs) 관련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친환경 건축용 도료 비중을 늘려왔다. 현재 용제(도료의 점도를 결정하는 화학물질)를 기준으로 유성이 31%이고 친환경 도료인 수성이 45%, 무용제가 24%다. 노루페인트는 2025년까지 수성 60%, 무용제 26% 등 친환경 도료의 비중을 86%까지 높일 계획이다.
바이오매스 기반의 바이오 도료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바이오매스는 유기성 생명체를 총칭하는 말이다. 노루페인트는 옥수수, 콩기름, 목재에서 바이오 원료를 추출해 기존의 석유화학 원료를 대체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현재까지 건축용 3종의 바이오 도료 개발을 마무리했다. 특히 '팬톤 우드&메탈'과 '에코 바이오 우레탄 라이닝' 2종은 국내 최초로 미국 농무부의 바이오 소재 기반 인증(USDA)도 받았다. 팬톤 우드&메탈은 아마씨유 기반의 원료가 43%, 에코 바이오 우레탄 라이닝은 옥수수유에서 추출한 원료가 48% 포함돼 있다.
바이오 도료의 적용 범위도 다양하다. 현대차(005380) 남양연구소는 자동차 내장재에 쓸 노루페인트의 바이오 도료에 대한 신뢰성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가전제품이나 가구, 휴대전화에 적용할 바이오 도료 11종도 연내 개발과 인증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친환경 도료는 일반 도료보다 20~40%가량 비싼 가격 때문에 시장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시장의 변화가 생길 것으로 노루페인트는 내다봤다. 박덕민 노루페인트 연구기획팀 수석부장은 "여전히 가격이 저렴한 제품을 선호하는 분위기이지만, 앞으로 탄소중립기본법과 같은 정책적 변화와 주요 기업의 ESG경영 강화에 따라 친환경 제품을 찾는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며 "2030년쯤부터 시장이 활성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술력에 힘입어 노루페인트의 매출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연결기준 매출은 2017년 5514억원 → 2018년 6147억원 → 2019년 6475억원 → 2020년 6429억원 등으로 상승 추세다. 작년에는 7000억원 안팎의 매출을 올렸을 것으로 추산된다. 1945년 창사 이래 최대치다. 다만 영업이익은 300억원 안팎에서 제자리걸음하고 있다. 페인트 시장의 경쟁이 치열한 탓에 원재료 비용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노루페인트는 페인트에 적용되는 기술을 활용해 '스페셜티(specialty·전문)' 화학 분야를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스페셜티 분야 제품으로는 반도체 회로 패키징(후공정)에 쓰이는 코팅제나 휴대전화에 들어가는 방수 접착제 등이 대표적이다.
이차전지 음극재에 쓰이는 '바인더(binder)'도 미래 먹거리다. 바인더는 이차전지에서 활물질과 도전재가 잘 접합해 안정적으로 밀도나 부피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그만큼 이차전지 수명도 길어진다. 노루페인트는 지난해 대주전자재료(078600)와 함께 도료 수지(resin·주성분) 관련 기술을 활용해 실리콘음극재 바인더 관련 특허기술을 등록했다.
올해 신사업 부문 매출이 전체의 15%가량을 차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송준서 기술연구소장은 "페인트 시장만으로는 성장성에 한계가 있다"며 "전기차 대형 업체들이 있는 중국 시장에 진출하거나, 고객사와 연구협력을 강화하는 등 스페셜티 부문이 커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