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남 여수 국가산업단지 여천NCC의 폭발사고를 두고 중대재해법 적용 여부를 수사하고 있는 가운데, 5대5 합작사라는 이 회사의 지분구조 때문에 향후 책임 소재를 가리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업계에서 나온다. 관련 업계는 여천NCC 사례가 합작법인 또는 공동대표 체제 회사의 중대재해법 처벌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지난 11일 여천NCC 3공장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를 조사 중이다. 노동부는 안전보건관리책임자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와 경영책임자의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당시 사고로 노동자 4명이 숨졌고, 4명은 부상을 입어 치료를 받고 있다.
중대재해법을 적용해 처벌할 때는 최고 경영책임자가 안전과 보건 확보 의무를 이행했는지 살펴본다. 안전과 보건 확보 의무는 ▲재해예방에 필요한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이행 ▲재해 발생 시 재발 방지 대책의 수립 및 이행 ▲중앙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가 관계 법령에 따라 개선 시정 등을 명한 사항의 이행 ▲안전 보건 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이행에 필요한 관리상 조치 등이다. 최고 경영자가 법률에 따라 안전·보건 관리 체계를 만들고 현장에서 제대로 이행되는지를 주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는 의미다.
여천NCC는 사고 당시 중대재해법 대응을 위한 안전·보건 관리 체계를 정비 중이었다. 안전을 담당하는 임원은 있었지만, 안전과 보건 확보 의무에 대한 전권을 위임받은 안전관리임원(CSO)은 두지 않았다. 중대재해법 상 안전·보건 업무의 전권을 위임받은 CSO가 있다면, 최고 책임자는 처벌을 받지 않을 수 있다. CSO가 있더라도 안전·보건 업무의 최종 의사결정을 회사 대표가 했다면 대표는 중대재해법을, CSO는 산업안전보건법을 적용받는다.
합작사라는 이 회사의 지배구조상 최종 책임자를 가리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업계에서 나온다. 여천NCC는 한화솔루션(009830)과 DL케미칼이 각각 지분을 50%씩 소유한 합작법인이다. 대표이사는 최금암 전 한화(000880)그룹 경영기획실장(사장)과 김재율 전 DL케미칼(옛 대림산업) 사장(부사장)이 공동으로 맡고 있다. 최 대표의 직급이 높지만, 경영에 관한 모든 사안은 두 대표의 공동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사회 의장도 두 대표가 공동으로 맡고 있다.
이사진도 한화솔루션과 DL(000210)에서 각각 2명씩 배치해 의결권을 정확히 반반씩 행사했다. 일각에서는 여천NCC의 중대재해법 대응이 늦어진 것도 이런 의사결정 구조가 작용했다는 분석이 있다.
정부의 지침에 따르면 공동대표가 있는 사업장은 직무, 책임, 권한,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해당 사업의 실질적인 최종 경영책임자가 누구인지를 판단해 처벌하도록 돼있다. 그러나 여천NCC처럼 안전을 책임지는 임원이 없고, 의사결정도 정확히 절반씩 행사했다면 최종 경영책임자 1인을 판단하기 어렵다.
업계에서는 이런 지배구조 때문에 두 대표 모두 처벌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경영계는 중대재해법 시행 전부터 공동대표 회사나 합작사의 경우 누구를 처벌할지 모호하다는 의견을 정부에 여러 차례 건의했다. 이에 정부는 최종 경영책임자 1인을 판단해 처벌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그런데 공동대표 체제의 첫 중대재해가 5대5 경영 체제의 여천NCC에서 발생한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여천NCC의 두 대표가 모두 처벌을 받는다면 앞으로 대표이사가 여러 명이고 공동으로 경영권을 행사하는 회사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모든 대표를 처벌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경영계는 여천NCC 사례가 향후 중대재해처벌법이 어떻게 적용될지 파악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대표 모두가 처벌 대상이 된다면 향후 공동대표 회사나 합작사의 중대재해처벌법 대응이 달라질 수 있어서다. 공동대표 체제에서는 대표 중 한 사람이 CSO를 겸직하거나, 별도의 CSO를 두고 전권을 위임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합작사의 경우 상황이 복잡해진다. 출자회사 중 한 곳이 안전·보건을 담당할 경우 중대재해 발생시 그 회사가 모든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향후 합작사를 설립할 때 안전·보건 의무를 어느 쪽에서 담당할지가 핵심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