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들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해 미래 성장 전략을 마련하고 투자를 확대하고 있지만, 한국 기업은 규제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기업 경쟁력은 곧 국가 경쟁력이다. 기업 활동이 위축되면 국가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기업 규제에 대한 문제점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이에 대한 해법을 살펴본다.[편집자주]

국내 최대 외국인 투자 기업인 한국GM은 노사 관계에 발목이 잡혀 좀처럼 생산 규모를 확대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미래차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본사인 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혁신을 거듭하고 있지만, 한국GM은 극심한 노사 갈등으로 공장을 충분히 가동할 일감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본사는 추가 일감 배정을 위한 조건으로 공급 안정성 확보를 요구하고 있지만, 올해도 강경파가 새로운 노동조합을 구성하면서 노사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을 가능성이 크다. GM본사가 강성 노조가 있는 한국에 일감 배정을 꺼리면서 한국GM은 올해도 안정적인 일감을 받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한국GM의 비정규직 노조가 지난 5일 대법원 앞에서 불법 파견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신속한 판결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GM 비정규직지회 제공

강경한 노조가 공장을 멈춰 세워도 사측이 손을 쓸 수 없는 이유는 국내 노동법이 대체 근로를 금지하고 정리해고 규정이 엄격한 영향이 크다.

경직된 노동시장은 결국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국내 기업 관계자는 "세계적인 기업 GM조차도 노사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는데 어느 기업이 국내에 투자하려고 하겠느냐"며 "투자가 늘어나야 일자리도 늘어나는데 기득권을 가진 노조가 몽니를 부리면서 한국은 세계 일자리 경쟁에서 완전히 밀리는 상황이 됐다"라고 말했다.

세계 각국은 치열하게 일자리 확보 경쟁을 벌이고 있다. 로봇이 노동력의 상당 부분을 대체하면서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든 가운데 세계 물류가 시스템화되면서 대규모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들은 비용이 낮은 곳에서 공장을 짓고 있다. 주요국 정부는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세금을 깎아주거나 현금을 지원하기도 하는데, 우리 정부 역시 국내에 공장을 지을 경우 다양한 인센티브를 지원한다.

하지만 기업이 인식하는 비용은 세금과 공장 건설에 드는 돈만이 아니다. 노사 갈등에 따라 생산 차질이 빚어지는 경우 기업은 막대한 비용을 떠안아야 하는데, 해마다 노조 파업이 이어지는 우리나라는 노사 갈등 비용이 압도적으로 높은 국가로 평가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싱크탱크 한국경제연구원이 2017~2020년 언론에 보도된 파업 사례를 파악해 파업으로 인한 기업의 생산 손실 피해액을 추정한 결과 4조원 이상으로 집계됐다. 기업별로 보면 현대차(005380)가 1조7100억원으로 피해액이 가장 컸다.

르노삼성 부산공장 조립 공정에 배치된 생산 실적 모니터. 노동자들의 파업 참여로 생산 차질이 이어지는 모습./조선비즈 DB

막대한 노동 비용 때문에 매년 수만개의 일자리가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경제연구원은 국내 제조업체의 해외직접투자와 국내로 유입되는 외국인직접투자를 바탕으로 일자리 유발효과를 추정한 결과, 2020년 한 해에만 제조업 일자리 약 7만2000개가 해외로 유출됐다고 밝혔다. 외국인 직접투자는 줄고, 한국 기업의 해외투자는 늘면서 국내 일자리가 그만큼 줄었다는 것이다.

노조 파업이 상시 이뤄지고 있는 르노삼성의 경우 지난 2019년 노사 갈등을 이유로 부사장이 자리에서 물러났는데, 해당 부사장은 당시 임직원들에게 "우리는 현대차와 같이 국내에 본사를 둔 업체가 아니라 외국계 기업에 소속된 자회사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노사 갈등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외국계 기업은 국내에서 떠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추세가 장기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경연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국내 기업의 해외투자가 외국 기업의 국내투자보다 훨씬 많다. 2011∼2020년 우리 기업의 해외직접투자는 연평균 12조4000억원이었는데, 외국 기업의 한국 직접투자는 4조9000억원에 그쳤다. 한경연은 이에 따라 직간접 일자리가 매년 평균 4만9000개씩 유출됐다고 봤는데, 국내 기업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해외 기업이 국내 투자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로 노동 경직성을 꼽았다.

씨티은행의 소비자금융 부문 매각 결정을 반대하며 노조가 쟁의 행위를 벌이는 모습./조선비즈 DB

IT 업계도 노사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감축을 추진하고 있는 글로벌 IT 기업 오라클은 노사 갈등이 극심한 한국 사업 규모를 대폭 축소하고 나섰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한국HPE도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재계 관계자는 "한국처럼 회사가 노조 시설·비품 등을 포함해 관리유지비 등 경비까지 지원해주는 경우는 외국에선 찾아보기 어렵다"며 "노조에 친화적인 문화가 해외 기업에게는 투자를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 된다"라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사들도 노사 갈등에서 자유롭지 않다. 최근 소비자금융 부문 매각을 결정한 씨티은행의 경우 매각 중단을 주장하는 노조의 대규모 쟁의 행위가 이어지면서 매각 불발 가능성이 제기됐다. 씨티은행이 매각을 결정한 다른 아시아 지역의 경우 인수 경쟁이 치열하지만, 한국씨티은행은 외국계 금융사의 인수 시도가 한 건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