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에 이어 유럽연합(EU)도 원자력발전을 녹색산업 분류체계인 '택소노미(Taxonomy)'에 포함했다. 또 한국보다 기술력이 낮다고 평가됐던 중국이 신흥국을 중심으로 원전 세일즈에 나서면서 글로벌 원전 시장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도 탈원전을 중지하고 원전을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에 포함해 산업을 적극 육성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4일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EU는 내년 1월부터 원자력과 천연가스 발전을 친환경 녹색 분류 체계인 '택소노미'에 포함하는 규정을 확정해 발의했다. EU가 원자력과 천연가스를 사실상 친환경에너지로 인정했다는 의미다. 규정에 따르면 신규 원전에 대한 투자가 녹색 경제활동으로 인정받으려면 2045년 이전에 건설 허가를 발급받아야 한다. 원전을 지으려는 국가는 방사성 폐기물 관리 방안, 원전 폐기를 위한 기금 등을 마련해야 한다. 2050년까지 방사성 폐기물의 처분 시설을 운영하기 위한 단계별 계획도 보유해야 한다.
해당 규정은 27개 EU 회원국의 승인을 거쳐 내년 1월부터 시행한다. EU의 이번 결정은 독일 등 일부 회원국의 반대 의견에도 탄소감축 목표 달성을 위해 원전 활용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EU는 지난해 여름 풍력에너지 공급 부족으로 에너지 대란을 겪었다. 지난해 유럽 북해의 바람이 잦아들면서 풍력발전 가동이 멈췄고 전력 수급에 문제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지난해 9월 EU 회원국의 평균 전기요금은 연초 대비 20% 상승했다. 특히 전체 전력 생산의 25%를 풍력에 의존하는 영국은 전년 대비 전기요금이 7배 오르기도 했다. 이번 겨울에는 러시아가 천연가스 공급을 줄이면서 2차 에너지 대란을 겪었다. EU는 천연가스의 40%를 러시아로부터 공급받고 있다.
티에리 브르통 EU 내부시장 담당 집행위원은 "2050년까지 원자력 발전에 5000억유로(680조원)를 투자해야 탄소배출 감축과 전력 수요 충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원전 수주전도 치열해지고 있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 등에 따르면 전날 중국 국유기업 핵공업그룹(CNNC)은 아르헨티나에 자체 개발한 원자로 화룽1호를 수출하기로 했다. CNNC는 아르헨티나 원전업체와 함께 부에노스아이레스 지역에 1200메가와트(㎿) 규모의 원전을 건설한다.
이 매체는 이 원전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민 100만명에게 전력을 공급할 수 있으며, 탄소배출 감축에도 도움될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은 최근 신흥국을 중심으로 원전 수출에 나서고 있다. CNNC가 2015년에 착공한 파키스탄 카라치 신규 원전에도 화룽1호 기술이 적용됐다.
한국은 지난해 12월 녹색 분류체계 지침서(K-택소노미)에서 원자력발전을 제외하고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은 조건부로 포함시켰다. 미국, EU, 중국이 모두 원전을 그린에너지로 채택하고 탄소중립의 핵심 수단으로 인정했는데, 한국만 반대로 가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중단하고 K-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은 "정부가 지난해 12월 K-택소노미를 발표하면서 원자력 발전을 제외했고, 이로 인해 신규 원전 건설, 차세대 원전 기술 투자의 동력이 상실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며 "차기 정부는 K-택소노미를 재검토해 원전을 녹색기술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