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원자력 공학계 교수진 10명이 최근 '대통령을 위한 원자력 이슈 문답 10선'이라는 책을 펴내고 문재인 대통령의 탈원전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 책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윤석열 국민의힘,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에게 전달됐다.
문주현 단국대 에너지공학과, 윤종일·이정익·정용훈·최성민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이현철·정재준 부산대 기계공학부,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정범진·황주호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가 필진으로 참여했다. 저자들은 이 책을 '대통령과 국민이 궁금해할 원전 이슈를 정리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사실상 차기 대선 주자에게 전달하는 원자력 정책 제언집의 성격이 짙다.
책은 국내 원자력 이슈 10가지를 선정해 필자들이 답변하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저자들은 책에서 원전을 에너지 안보의 주역이라며 에너지원 중에서 가장 안전하고 청정하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와 환경단체가 주장하는 원자력발전소 사고 가능성이 지나치게 부풀려졌다며 "한국에서 사용하는 원전 기술은 세계적으로 누적 가동 시간이 1만1500년에 달하지만 사망자가 발생한 사고가 없었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탄소중립을 실현하려면 원전 비중이 40%는 돼야 한다며 탈원전과 탄소중립을 동시에 추진하는 독일의 경우 이미 전기요금이 3배 올랐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을 위한 원자력 이슈 문답 10선'을 질문과 답변 형식으로 정리해봤다.
한국은 에너지 자원 빈국이지만 세계 10위의 에너지 사용 국가이며, 1인당 에너지 사용량은 세계 3위다. 이 막대한 에너지의 93% 이상을 수입에 의존한다.
원자력은 에너지 자급도를 높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에너지다. 물론 원전 연료인 우라늄도 수입해야 한다. 그러나 원자력 발전단가 중 우라늄 비용이 약 8%로 아주 낮고, 나머지 92%는 국내에서 우리 기술로 공급하기 때문에 원자력은 준(準)국산 에너지다.
원전은 건설비가 비싸지만 한번 건설하면 60년 이상 쓸 수 있는 장기 이용 발전 시설이다. 발전 단가도 여러 발전원 중 월등히 싸다. 키로와트시(kWh)당 발전단가는 원자력이 약 60원, 액화천연가스(LNG)는 약 120원, 태양광은 약 150원이다.
한국은 수력과 풍력 자원이 매우 빈약해 사실상 가용한 청정 에너지원은 태양광과 원자력뿐이다. 한국은 세계 최고의 원자력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반면 태양광은 간헐성과 변동성 극복을 위해 고가의 에너지 저장장치(ESS)와 꼭 짝을 이뤄 운용해야 한다. 원자력이 한국에 가장 적합한 청정 에너지원이다.
한국 원전은 모두 견고한 원자로 격납건물을 갖춘 가압수형 원전이다. 전 세계 가압수형 원전의 누적가동 기간은 1만1500년에 이르는데 사망자가 발생한 사고가 없었다. 이런 유형의 원전에서는 설사 원자로가 녹는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원자로 격납건물이 방사성 물질 누출을 잘 차단해 대규모 방사성 물질 누출과 인명 사상이 발생하지 않는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한국에 적용될 수 없다. 우리 원전 격납건물은 부피가 5배 크고 강건해 후쿠시마와 같은 사고가 나더라도 대량의 외부 누출은 일어나지 않는다. 자동차 바퀴가 펑크가 나기 때문에 기차 바퀴도 펑크가 날 것이라고 하면 안 되는 것과 같다.
전 세계 원전이 약 1만9000여년의 누적 가동년을 기록하는 동안에 발생한 원전 사고의 치명률은 1조kWh당 0.5명으로 극도로 낮다. 특히 우리나라 원전은 지난 43년간 약 3조9000kWh의 전력을 생산했지만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었다.
핀란드와 스웨덴에서는 지하 500m에 사용후핵연료 처분장을 건설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처분장 부지를 선정한 후 건설인허가를 추진 중이다. 이는 사용후핵연료 심지층 처분의 안전성이 기술적으로 입증됐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우리나라도 일부 기술만 개발하면 언제든 적용할 수 있다.
사용후핵연료는 5cm 두께, 직경 약 70cm 정도의 커다란 구리용기에 여러 다발을 넣고 밀봉해 처분한다. 구리용기는 지하 암반에 구멍을 파고 묻는데 ,그 주위는 벤토나이트라는 점토질 물질로 채운다. 벤토나이트는 물을 머금으면 단단해져 방수재 역할을 하면서 설사 방사성 물질이 용기를 빠져나오더라도 이동을 잘 못하게 잡아둔다. 방사성 물질이 구리용기와 점토질을 뚫고 나와 지하수를 통해 지상으로 올라와 위해를 끼치기는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한국은 좁은 국토에 인구와 산업시설이 밀집돼 발전시설도 밀집될 수밖에 없다. 원전이 밀집된 사례는 우리뿐만 아니라 캐나다의 브루스 8기와 피커링 8기, 일본의 카시와자키 카리와 7기, 중국의 진산지역 9기, 프랑스 그라벨랭 6기 등 해외에도 다수 있다.
원전 1기에 사고가 나더라도 주변 원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러시아 체르노빌 원전사고에서도 주변에 원전 4기가 있었지만 1기에서만 사고가 나고 나머지 3기에는 사고가 나지 않았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도 인근 원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
부산, 울산, 경남이 고리에 인접해 있다는 것만으로 위험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원자력 발전을 시작하려는 나라들에게 우리 원전들은 도시 인근에 위치할 수 있을 정도로 안전하다는 것을 자랑한다"고 말한 바 있다. 부·울·경 지역 소비 전력의 70% 정도를 지역 내 원전이 공급하고 있다. 이를 원전 대비 100배 이상의 면적을 차지하면서 간헐성을 피할 수 없는 태양광으로 대체할 방법은 없다.
한국 원전 각각은 지진과 쓰나미뿐만 아니라 홍수와 정전 등의 자연재해나 외부 사건에 잘 대비돼있다. 여러 원전이 한 부지에 있어도 각각 자연재해에 대비돼 있어 밀집이 문제가 안된다. 이런 자연재해로 인해 동시다발적 원전 사고가 일어날 확률은 영(Zero)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2021년도 세계에너지전망(World Energy Outlook) 보고서에 따르면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실현되려면 2050년까지 신흥개발국에는 400GW(1GW 원전 기준 400기)의 원전이 새로 필요하고 기존 원전 운영국에도 200GW이상의 신규 원전이 노령 원전을 대체하게 된다. 세계 원자력협회 자료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건설 계획이 추진 중인 원전은 101기이고, 검토 중인 원전은 325기다. 미국 정부는 미국 원자력 경쟁력 회복 전략 보고서를 통해 2030년까지 세계 원전 시장을 5000억~7400억달러(570조~840조원)로 추산했다.
한국은 세계 최고의 원전 기술력과 공급을 갖추고 아랍에미레이트(UAE) 원전 4기의 성공적인 건설을 통해 세계적으로 이를 입증한 바 있다. 이렇기에 미국은 지난해 상반기 한국과 원전 동맹을 결성해 해외 원전 시장 공동 진출에 합의한 것이다. 우수한 가격 및 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제치고 후속 원전 수출을 성사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육상풍력 부지는 거의 포화돼 해상풍력 위주로 풍력발전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 연안 해상 풍속은 유럽 북해의 75% 수준에 불과해 발전량이 같은 발전기를 갖다 놔도 발전량이 반 정도밖에 안 된다. 한국 해상풍력 발전단가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나마 한국에 유리한 재생에너지원은 태양광이다. 태양광 시설은 낮에만 발전하기 때문에 밤에도 전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에너지저장장치(ESS)가 필요하다.
ESS의 용량과 비용이 막대하다. 2050년에 140GW 전력의 50%를 태양광으로 충당한다는 시나리오에 따르면 반나절치 태양광 발전량 저장에 1160GWh의 ESS가 필요하다. ESS 비용을 1GWh에 4000억원으로 계산하면 464조원이 든다. 그런데 궂은 날씨를 대비해야 해서 반나절치 저장만으로는 안된다. 이틀치 저장에만 2000조원 정도가 든다. 향후 ESS 가격이 절반으로 떨어지더라도 이틀치 저장에 1000조원 정도가 든다. 배터리 수명을 고려하면 10년마다 교체해야 한다.
현재 kWh당 ESS 운용 비용은 원자력 발전단가보다 비싸다. 향후 태양광 발전 비용이 더 크게 하락한다고 해도 ESS 운용 비용은 발전 비용 자체보다 더 들게 된다. 태양광 발전 시설 운용 원가는 최소한 원자력의 두 배 이상이 된다.
한국의 원전 건설 비용은 미국의 3분의 1, 프랑스의 2분의 1 수준이며, 러시아와 중국보다도 낮다. 이는 근래 지어진 원전의 실제 건설 비용과 불룸버그가 예상한 사우디 원전 건설 단가에서 확인된 사실이다. 꾸준히 원전을 건설해 온 덕분에 건설비를 낮출 수 있는 원전 공급망과 기술력이 확보돼있기 때문이다.
원자력 발전 단가 중 연료비 비중은 약 10%(우라늄 비용은 8% 수준)에 불과하므로 원전의 경제성은 건설비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흔한 오해 중 하나가 사용후핵연료 처분 비용과 폐로 비용 등 원전 사후처리비용이 빠져 있어 원자력이 경제적인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사후처리비용는 이미 발전원가의 15% 정도인 kWh당 8원 정도로 충분한 액수가 포함돼있다. 1GW급 원전을 1년 가동할 때 사후처리비로 1년에 600억원, 40년이면 원금만 2조4000억원이 적립된다. 사후처리에 충분한 비용이다.
2025년에 건설될 각종 발전소의 경제성을 비교한 국제에너지기구(IEA)의 2020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원전은 태양광, 풍력 대비 2배 이상의 경제성을 가지고 있다. 한국은 세계 최고의 원전 기술력을 바탕으로 원자력 발전 단가가 세계 최저 수준인 반면, 재생에너지는 늘어날수록 막대한 저장 비용 및 송전 비용이 추가돼 향후 발전 단가 차이가 더 벌어질 수 있다.
SMR은 용량이 적기 때문에 여러 방식으로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전기를 필요로 하는 펌프가 없기 때문에 정전이 발생하더라도 원자로를 안전하게 냉각할 수 있다. SMR은 큰 풀(Pool·물탱크)에 담가 가동하도록 돼있어 비상시에도 원자로 온도가 아주 높게 올라가는 것을 방지해 줄 수 있다. 원자로 노심 자체가 대형 원전의 15분의 1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방사성 물질 함유량도 훨씬 적어 사고로 인한 방사성 물질 외부 유출 가능성과 양이 기존 원전의 100분의 1 이하로 적다.
한국은 사실상 SMR 개발의 선두주자였다. 1997년에 SMART라는 열출력 330MW짜리 일체형 SMR 개발에 착수해 2012년에 세계 최초로 상용 SMR의 표준설계인가를 받았다. SMART는 해수담수화와 지역 전력 공급용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 건설해 그 성능과 유용성을 실증하기 위한 사업을 추진하다가 정부의 탈원전 기조에 의해 흐지부지됐다. 우리는 속히 SMR 실증로를 건설해 SMR 선도국 위상을 확보하고 세계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
2020년 평균 발전 전력이 63GW인 한국에서 발전 비중은 석탄 36%, 원자력 29%, LNG 26%, 재생에너지 7%였다.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현재 62%를 차지하고 있는 화력 발전 비중을 대폭 줄여야 한다. 줄어든 화력 발전량은 원자력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해 충당해야 한다.
산업과 수송 분야에서 화석에너지의 직접 사용을 줄이고 이를 무탄소 전력으로 대체해야 한다. 이에 따라 총에너지 사용량 중 전력의 비중은 현 20% 정도에서 약 45% 이상으로 늘어나게 된다.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따르면 2050년 전력 사용량은 2020년의 2.2배 수준인 약 140GW로 늘어난다. 안전한 전력 공급을 위한 적정 원자력 비중은 40% 정도 돼야 한다.
향후 탈원전 정책이 폐기돼 가동원전의 계속운전이 추진되고 신한울 1~4호기, 신고리 5~6호기의 건설이 완료돼 8.4GW의 용량이 추가되면 10년 후 우리나라 원전 용량은 약 31GW가 된다. 만약 원전 예정부지 지정고시가 취소됐던 영덕의 천지원전 부지와 삼척의 대진원전 부지를 다시 확보해 1.5GW의 원전을 각 4기씩 총 8기를 건설한다고 하면 향후 20년에 12GW가 추가돼 총 43GW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한국의 전력 증가가 이렇게 급격하게 진행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현실적으로 증설 가능한 원전 용량까지 다 고려하더라도 원자력 발전비중은 30%선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원자력 비중은 최소 30%를 목표로 하되 향후 필요에 따라 신규 원전 부지를 더 확보하거나 더욱 안전해질 SMR을 추가하는 방안을 통해 40% 이상까지 달성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탄소중립으로 가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전기로 사용해야 한다. 또한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도 온실가스 배출이 없어야 한다. 그래야 최종적으로 전기를 사용해 조리하고, 난방하고, 자동차를 굴리고, 공장을 가동하는 것이 온실가스 배출 없이 가능하게 된다.
현재 원자력의 발전단가는 kWh당 60원 수준이며, 석탄은 90원 수준,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150원을 넘어간다. 따라서 석탄발전과 가스발전을 없애는 동시에 원자력까지 없애면서 태양광 풍력을 늘리는 경우 발전단가는 상승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태양광과 풍력의 경우 간헐성 보완에 보조발전, ESS, 대규모 송전선로 증설 등의 시스템 비용도 막대하게 소요된다. 발전단가가 현재보다 다소 감소하더라도 시스템 비용은 증가하게 된다.
탄소중립 전력사용량 수준의 50% 정도인 현재 전력사용량 수준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을 80% 정도로 늘린다고 가정했을 때 수반될 발전 및 송전 비용 상승폭은 100%를 넘어 소비자는 현재 요금의 2배 이상을 지불해야 한다. 독일의 경우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확충에 의한 요금 상승분을 산업용이 아닌 가정용 전기료에 부과하고 있어 결과적으로 가정용 전기요금은 2000년 대비 3배 정도 올랐다. 자국의 산업 경쟁력은 보호하면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다. 독일이 2022년말까지 현재 가동 중인 원전 6기를 모두 정지하면 전기요금은 더욱 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