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7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산업계가 막바지 준비에 분주한 모습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보건 조치를 위반해 사업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안전조치를 소홀히 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내용이 골자다. 최고경영자(CEO)가 구속될 가능성도 있어, 기업들은 현장 안전 점검과 함께 최고안전책임자(CSO) 직책을 신설하는 등 준비에 나서고 있다.

26일 재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오는 2월 6일까지 특별 안전 점검을 실시하기로 했다. 지난 24일 울산 조선소에서 근로자 1명이 작업 도중 사망한 데 따른 조치다. 한영석 현대중공업 부회장은 “안전조치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안전 관련 조직도 대대적으로 재편 중인데, 최근 기존 안전부문장이었던 최헌 전무를 CSO로 선임하고 안전 관련 인력을 20% 증원했다.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전경. /현대중공업 제공

건설업계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는 27일부터 휴무에 들어가거나 주말 공사를 한시적으로 중단할 계획이다. 현대건설(000720)은 동절기 주말에 안전사고가 많다는 이유로 다음달까지 주말과 공휴일 작업을 전면 금지하고 설 연휴가 끝나는 시점도 기존 2월 2일에서 4일로 이틀 연장했다. 대우건설(047040)은 공사 현장에 한해 설 연휴 시작 시점을 27일로 이틀 앞당겼으며 또 현장의 자체 판단에 따라 다음달 3∼4일까지 휴무를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포스코건설도 ‘27∼28일 휴무 권장’ 지침을 전국 현장에 내려보냈다.

안전 관리를 책임질 CSO 임명과 조직 개편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삼성중공업(010140)은 최근 윤종현 부사장을 CSO로 임명하고 안전보건 관련 조직·인력·예산과 관련해 최종 의사 결정권과 권한을 부여했다. 대우조선해양도 지난 21일 CSO직을 새로 만들고 박두선 조선소장을 CSO로 임명했다. 케이조선은 박경원 조선소장에게 생산 현장 인사권과 통제권을 부여해 사실상 CSO의 역할을 맡겼다.

현대차(005380)는 이동석 부사장을, 기아(000270)는 대표이사인 최준영 부사장을 각각 CSO로 선임했다. 현대오일뱅크도 지난해 CSO 직책을 새로 만들고 안전생산본부장인 고영규 부사장을 선임했으며 GS칼텍스는 기존 CSO인 이두희 부사장으로 각자 대표이사로 승진시키며 권한과 책임을 강화했다. 대한항공(003490)은 이수근 부사장을 CSO로 임명했다.

철강업계도 안전 부문에 고삐를 조이고 있다. 포스코(POSCO)는 ‘보건기획실’이란 이름의 조직을 출범시키고 정기 인사에서 상무보급 전체 승진 인원의 40%를 현장 출신으로 구성했다. 현장 생산과 안전의 중요성을 고려했다는 게 포스코의 설명이다. 현대제철(004020)도 사장 직속의 안전보건총괄이란 조직을 만들었으며, 동국제강(460860)은 CEO 직속의 ‘동반협력실’을 신설하고 산하에 조직 전사 안전총괄조직인 ‘안전환경기획팀’을 구성했다.

포스코 광양제철소 이물질 제거 로봇. /포스코 제공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업무 환경의 변화도 빨라질 전망이다. 중대 재해 발생 가능성이 높은 현장 업무에 사람 대신 로봇과 자동화 설비가 더 빨리 투입될 수 있는 것이다. 포스코는 지난해 광양제철소에 설비 내 이물질을 찾아 제거하는 AI 로봇을 도입했다. 철판을 코팅하는 과정에서 이물질이 발생하면 직원이 직접 제거했는데, 로봇을 대신 투입해 위험 요인을 대폭 줄였다. 택배 기사 과로사 문제로 논란을 빚은 택배업계는 무인 분류 시스템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CJ대한통운(000120)은 최근 택배 포장부터 분류 작업 모두 로봇이 하는 물류 센터 가동을 시작했다.

조선업계는 ‘스마트 조선소’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빅데이터 플랫폼을 바탕으로 선박 건조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게 특징인데, 공정 효율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공기에 쫓기지 않는 작업이 가능해 현장에서 안전 수칙을 더 잘 지킬 수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3사 모두 스마트 조선소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업종 특성상 사람의 손을 거치는 작업이 많아 사고를 원천 차단할 수는 없다”며 “사고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낮추기 위한 노력”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