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2위 양극재 제조업체인 에코프로비엠(247540)에서 발생한 공장 화재로 사상자가 발생한 가운데 배터리 업계가 사고 여파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잇달아 발생한 산업재해에 정부가 주목하고 있는 만큼, 공장의 작업중지 기간이 단기간에 해제되지 않을 경우 생산 차질이 불가피하다. 고용노동부가 대표이사와 법인을 입건해 국내외 생산시설 확대 전략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
24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충북경찰청, 충북소방본부, 고용노동부 등 유관기관은 이날 10시부터 충북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에 있는 에코프로비엠 공장에서 화재 합동 감식을 실시했다. 이 공장은 총 2개 동으로 분리돼 있는데, 이중 CAM4-N라인에서 지난 21일 화재가 발생해 1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을 입었다. 고용노동부는 화재가 발생한 동 전체에 무기한 작업중지를 명령한 상황이다. 안전보건관리책임자를 맡고 있는 대표이사 A씨와 법인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2016년 설립된 에코프로비엠은 2차전지 핵심 소재인 양극재를 생산하는 기업으로, 국내 시장점유율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각형, 원통형, 파우치형 등 모든 배터리 타입에 대응할 수 있고 현재 국내 주 고객사는 삼성SDI(006400)와 SK온이 있다. 에코프로비엠은 전 세계 시장 점유율 27.6%로 일본 스미토모금속광산에 이어 2위를 기록 중이다. 에코프로비엠의 국내 양극재 생산 능력은 지난해 기준 총 7만7000톤(t)으로, 청주 공장이 2만9000t, 포항공장이 4만8000t이다. 이번에 작업이 중지된 동은 연간 1만7000t의 양극재와 그 원료인 전구체를 생산하고 있다.
배터리 업계는 양극재 재고를 약 3개월치 보유하고 있어 만큼 당장 수급에 큰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사태가 길어지면 수급 상황을 안심할 수 없다. 청주공장에서는 주로 소형가전에 들어가는 양극재를, 포항공장에서는 전기차용 양극재를 생산한다. 청주공장과 포항공장은 제품의 혼용 생산이 가능해 청주공장의 작업 중지 기간이 길어지면 포항공장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전기차용 양극재 공급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양극재는 각 배터리 기업이 원하는 조건에 따라 생산되기 때문에 재고를 쌓아두기 어렵다. 에코프로비엠은 분기보고서 등에서 "당사 제품은 통상 30일 내외의 단기 발주형식으로, 수요업체와 기본 거래계약을 체결하고 1개월 전에 예상 사용량을 통보 받은 후 생산 납품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아직 에코프로비엠 측으로부터 피해 규모 등에 대해서는 공유받지 못했다"며 "정확한 상황 파악이 돼야 향후 대책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에코프로비엠 외에 포스코케미칼, 엘앤에프(066970), 코스모신소재(005070) 등도 양극재를 생산하고 있다. 배터리 소재 업계 관계자는 "양극재는 각 사의 배터리 스펙에 맞춰 주문이 들어가기 때문에 다른 회사가 에코프로비엠 제품을 바로 생산하긴 어렵고, 각 소재사의 물량 여유가 있는지도 봐야 한다"면서도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간다면 새 제품 주문이 들어올 수 있는 만큼 각 사 마케팅팀에서 이미 검토에 들어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표와 법인이 입건된 상황에서 에코프로비엠의 생산능력 확대 계획이 예정대로 진행되긴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앞서 에코프로비엠은 유럽·미국에 생산 거점을 마련하고 기존 6만t가량인 양극재 생산 규모를 2026년에 48만t까지 늘리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산업재해가 연달아 발생해 정부가 그 어느 때보다 강도 높게 조치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피해 복구와 수사 등이 장기화될 경우 경영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