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용 점착 테이프를 생산하는 A사는 지난해 중국 원자재 수급에 차질을 빚으면서 큰 곤란을 겪었다. 생산이 지연되며 유럽 수출 물량 납기가 3개월 이상 늦어진 것이다. 다행히 유럽 바이어를 설득해 납기일을 미뤘지만 올해도 생산 차질이 반복될 것이라는 불안이 크다.

와이어링 하네스 제조업체 B사는 유럽에서 수입하는 자재 가격이 최근 30% 이상 급등했다. 제품 생산 단가가 올랐지만 제품 가격에는 이를 반영하지 못해 부담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적자는 겨우 면했지만 수익은 계속 악화될 전망이다.

원자재 수입기업 10곳 중 9곳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글로벌 공급망 불안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런데 구체적인 공급망 대책을 세운 기업은 10%도 채 되지 않았다.

부산 신선대 수출항 모습./조선비즈 DB

대한상공회의소가 원자재·부품을 해외에서 조달하는 기업 300개사를 상대로 지난 12~14일, 전화·팩스·이메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조사 대상 기업의 88.4%가 올해도 '지난해의 공급망 불안이 계속되거나 더 악화될 것'이라고 답했다. 완화될 것으로 내다보는 응답은 11.6%에 그쳤다.

글로벌 공급망 불안이 계속되거나 더 악화될 것으로 보는 가장 큰 이유로 '코로나19 지속'(57.0%)이 꼽혔다. 지난 2년간 코로나19로 해외 공장들이 가동을 멈추며 글로벌 공급망을 위협했고 올해에도 기업의 불안감이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미․중 패권 경쟁'(23.3%)도 공급망 불안 요인이다. 우리 교역의 40% 정도가 양국에 집중돼 있어 두 국가 간 갈등이 악화되면 국내 기업도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불안이 크지만 기업의 대책 마련은 여전히 미흡하다. 공급망 리스크에 대한 대책을 세웠는지를 묻는 질문에 '세웠다'고 답한 기업은 9.4%에 불과했다. '대책 없다'라고 응답한 기업이 절반 이상(53.0%)이었고, '검토중'이라는 기업이 36.1%였다. 기업 10곳 중 9곳은 현재 뚜렷한 대책이 없다는 의미다.

대책을 세웠거나 검토 중인 기업은 구체적인 대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수급 다변화'(45.7%)를 우선 꼽았다. 뒤이어 '재고 확대'(23.9%), '국내 조달 확대'(12.0%) 순으로 답했다.

한편 설문에 응한 기업의 67.0%는 지난해 글로벌 공급망 불안으로 실제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28.3%가 '피해 컸음'이라고 답했고, 38.7%가 '일부 피해 있었음'이라고 했다. '피해가 없었다'고 답한 기업은 33.0%에 불과했다.

구체적인 피해로는 '원자재 조달 지연으로 인한 생산 차질'이 59.2%였고, '원자재 가격상승으로 인한 비용 증가'(40.8%)가 뒤를 이었다.

전인식 대한상의 산업정책팀장은 "디지털전환과 탄소중립 등으로 산업 패러다임이 급변하는 시기에 팬데믹, 패권경쟁이 겹쳐 글로벌 공급망의 불확실성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며 "정부와 기업이 협력해 공급망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하고 수급처를 다변화하는 등의 노력을 추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